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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강물처럼’ 고생조차 미담으로 남게 되는 것문정섭 전 함양읍장·경남도의원

37년의 시간을 공직자로 살아
3개 과장, 4개 읍면장 역임
회고하면 배시시 웃음 날 때도
그랬으면 좋았다 아쉬움도 남아

군정 전체의 입장을 고려하여
업무 추진한 것이 보람된 일
공익을 위해 일한 것이 자랑

문정섭 전 함양읍장.

우리의 기억들은 과거를 끔찍했다고 기억하기보다는 아름다웠다고 기억하는 편향적 속성을 갖고 있다. ‘추억’이라는 말만큼 우리 가슴을 아련하게 과거의 회상으로 돌려놓는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

이는 인간의 착각이다.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은 인간의 기억편향 혹은 실로 고통스러웠던 과거에 대해서는 적당한 선에서 잊고 산다. 그래서 고생조차 미담으로 남게 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나는 37년의 긴 시간을 공직자로 살았다. 71년 12월에 공무원에 임용되어 9개 담당주사 3개과장 4개 읍면장을 역임하였다.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공무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임용 7년만에 받은 근정포장, 청백봉사상 외에도 수차례의 대통령, 장관 등 기관표창을 받도록 도왔다. 공직본연의 업무 외에 환경정화 및 등산로 개발 및 홍보 경노효친과 불우이웃돕기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지난날을 회고할 때면 배시시 웃음을 흘릴 때도, 그때 그랬으면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내가 일반 시민들 보다 공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공무원이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문정섭·박성순 부부.

37년의 공직생활을 대충 헤아려볼 때면 생각나는 일들이 많다. 다만 50년 전의 일이라 독자 및 후배 공직자들에게 제 자랑이라 오해가 없길 바란다.

1977년 지방세수증대, 1980년 내무행정 역점시책 전국1위, 1988년 성화봉송로 정비 전국 1위, 1992년 사정업무수범기관 1위, 2003년 소도읍 가꾸기 및 관공서 담장 없애기 사업으로 대통령 기장을 수여받았다. 1995년 깊이갈이, 휴경지 생산화, 꽃길조성 등 3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 별정직 공무원 공채는 전국수범사례가 되기도 하였다.

1979년 산림내 불법건축물 담당 시에는 마천의 영원사, 상무주, 삼불주 정비로 등산객이 전무했던 시기에 산에 대한 매력을 느껴 오봉산을 비롯하여 삼봉산 도로리봉·성주봉, 대봉산, 도승산, 백암산 등 관내의 주요 산에 대한 등산로를 개척하여 리본을 달고 홍보한 결과 등산객들이 함양을 많이 찾게 하였다.

또 삼봉산과 대봉산 전망대 잔해물 제거, 재경 향우회와 바르게 산악회의 교류산행, 삼봉산 오봉산 노장대독바위 등 사다리 제작설치로 위험한 등산로 줄매기와 풀베기, 길고르기를 하였고 필봉산 2.5㎞ 산책로 개설 및 읍관내 산 10개소에 최초 입간판을 설치하였다.

문정섭 전 함양읍장이 경남도의원 시절 김태호 당시 경남지사와 함께 양파농가 일손돕기를 하고 있다.

1995년 함양읍에 깨끗한 물공급을 위해 병곡면 도천과 덕평마을을 환경정화수범 마을로, 송평마을 박두순 외 30가구를 환경정화 모범가정으로 지정·운영하여 대주민 홍보를 하였다. 농지에 신축이 가능한 축사를 건축하지 못하도록 주민을 설득하였고 1999년 하천과 임야 등 불법이 성행했던 마천면민들을 위해 ‘이런 행위는 하지 맙시다’라는 입간판 30개를 마을마다 부착하였으며, 대진고속도로 준공을 앞두고 함양휴게소 및 주변 정비를 위해 농협장의 협조로 자체시상금 300만원을 마련하여 재활용품 수집 군내 1위를 하였고, 도시환경과 재직시는 미화원들이 임의로 처리하던 재활용품 판매대금 1억원을 군 세입 조치하여 청소차 현대화를 완료하였다.

1996년 병곡면 재직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현대판 효녀 심청이라 불리던 김미선 돕기 운동을 펼쳐 수술비 3000만원 확보와 1999년 벌채하다 식물인간이 된 석맹근 돕기, 함양읍 구룡 정명근 돕기, 마천 상무주에 쌀과 그릇 운반, 서하 사리암과 함양 보현암 등에 장작패기와 연료공급, 남편이 없는 권혜자 외 7명의 취업알선, 의지할 곳 없는 홍연이 외 2명을 본인의 동거인으로 등록·관리하였으며 마천면민의 주민세균등분할을 농협 환원사업으로 대납케한 일들은 꽤 잘한 일로 기억되고 있다. 퇴직 후도 불우한 이웃이 있으면 군의 도움을 알선해주고 있다.

지곡면장 등 4개 읍면장 재직 시 출향인들의 도움을 받아 경노모당에 쌀과 라면 등을 수시로 제공 하였고, 노인의 날을 비롯하여 각종 단체 행사시 집에서 식사를 제공하여 읍면 주민들과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마천·서상보건지소 및 팔령 외 5개 보건진료소를 신축해 군민 보건향상에 기여하여 1997년 성균관장 감사패, 2001년 군노인회 감사패를 받기도 하였다.

천령의 맥과 최초 함양관광책자 발간, 잊혀져간 군민가를 KBS(한국방송공사) 이봉조 악단의 협조로 테이프를 제작하여 기관·단체와 마을·학교 차량에 보급하였다. 마천의 석장승, 휴천의 김종직 선생 녹차시배지표지석, 상림의 만세운동 기념비, 병곡면 소식지, 마천면 마을유래 소책자발간 등 특수시책을 추진한 공적으로 제3회 함양상을 수상하는 등 공무원으로서 긍지를 갖게 하였다.

함양군민들의 권익을 위해 나선 모습.
지역주민들과 다정히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함양읍 주민자치센터 개소 축하 모습.

지나고 보니, 내가 맡은 업무보다 협조를 필요로 하는 동료들의 일을 우선한 것과 군정 전체의 입장을 고려하여 업무를 추진한 것이 보람된 일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필봉산을 비롯 관내 등산로 풀베기 등 정비와 상림산책로 주변에 도라지와 유채꽃을 식재하였다. 마천면장 재직시 칠선계곡과 백무동 조난자를 지게로 직접 운반하였고, 지곡면 내리막 음지에 눈이 오면 새벽부터 모래를 뿌리고 폭풍우가 지난 다음날 새벽이면 관내를 순찰하여 파손된 인도 각종표지판, 쓰레기 불법투기, 가로등 및 가로수를 점검하여 해당 실과에 연락하여 조치하여 안전사고예방에 노력하였으며, 산불발생 시 물과 간식을 준비하여 정상까지 올라가 고생한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공무원을 하기 위해 태어나 쉬지 않고 일만 한 일벌레처럼 비칠 수 있으나, 나도 평범한 소시민으로 놀 것 놀고, 즐길 것 즐기면서 살아왔다. 고스톱이 삼천만 국민의 스포츠로 여겨지던 1990년대에는 동료친구들과 주말이면 밤새우고, 다음날 아침이면 우리집에서 해장국을 먹기 일쑤였다. 서로가 감싸주고 도와가며 끝까지 함께할 것 같던 고스톱 친구 중에는 신의와 정리(情理)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가슴 아프게 한 친구도 있다.

아침이면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때로 우울한 생각이 들면 푸시킨의 시를 읊조려 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한번 공직자는 영원한 공직자란 말이 있듯이 공직자의 마음속에는 항상 끝나지 않은 마음의 빚과 생각들이 고여 있습니다. 공직생활 중 보람을 느꼈던 일, 남기고 싶은 이야기 등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게재합니다. 공직생활 중 일어난 생동감 넘치는 일화들을 글로 옮겨 적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진솔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열심히 근무한 공직생활에 대한 기념으로 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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