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희 수필가, 소나무5길 문학회 회원.

가로수 이파리가 꽃잎처럼 흩날리는 시월이다. 이 산 저 산 단풍구경으로 붐빌 시절이었지만 코로나19 창궐로 세상은 언제부턴가 꽁꽁 얼어붙었다. 매스컴에서는 질병관리본부의 권유 사항인 ‘외출을 삼가라’ ‘마스크를 써라’ ‘손을 자주 씻어라’는 뉴스가 하루 종일 도배를 한다. 집안에서만 보내야하는 예상치 못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친정어머니를 뵈러 부산 가는 길이다. 코로나19로 차량 통행량까지 줄어서인지 장유에서 가락 톨게이트로 가는 왕복 6차선 도로는 널찍하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지나는 길이다. 시원하게 달리며 백미러 룸미러를 번갈아 보는 어느 순간, 앞뒤 확 뚫린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다. 거짓말같이 나 혼자뿐이다. 한밤중도 아닌 백주 대낮에 이런 경우는 운전 경력 25년 만에 처음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도로 위에는 차량과 차량의 행렬을 보는 것에 익숙해서인지 다시금 앞뒤로 확인을 해본다. 어쩌면 영화 속, 텅 빈 유령의 거리를 달리는 것 같이 으스스하기도 한 바로 그때, 도로 정면에 세워진 폐쇄회로(CCTV)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그가 왈칵 반갑다.

서부산 고속도로를 통과하고 낙동로를 지나 동서고가도로로 접어드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항상 상습정체구간으로만 기억하는 도로건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차들이 시원스레 뚫려 있다. 평일 낮인데 이럴 수가… 익숙한 도로가 낯설 정도로 시야가 청청하다. 도로 위 그 많던 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코로나19로 인한 전염이 연일 매스컴의 주요 뉴스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나 지자체가 차량의 홀짝제를 요구하거나 강요한 것도 아니다. 이 모든 현상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인 것이다. 스스로 사회적 거리를 두기로 한 것은 안전이 꼭 지켜져야 한다는 묵시적인 약속이다. 그만큼 이 코로나19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식을 갖는 게 아닐까. 이렇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높은 시민의식에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진다. 정체되면 3~40여분 걸리는 거리인데 10분 만에 황령산 터널을 통과했다.

어머니가 다니시던 주야간보호센터, 노인정도 코로나19로 폐쇄되었다. 온종일 집안에서만 계셔서 적적해하셨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반가이 맞으셨다. 많이 기다렸다는 듯 와락 달려드는 눈빛을 대하니 한편으론 가슴이 찡해온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찾아뵙고 같이 식사를 하려고 한다.

유치원 다니는 외손녀는 이미 마스크 세대가 되어버렸다. 유치원도 심각해진 코로나19로 최소인원만 등원하고 있다. 요즘은 아예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한 달 가까이 함께 보내는 중이다. 손녀는 유치원에서 배운 철저한 교육으로 인해 마스크가 없으면 현관문을 나서지 않으며, 밖에서 돌아오면 세면장에 달려가 손부터 씻는다. 그런 손녀가 기특하다가도 항상 마스크 낀 모습으로 외출하는 걸 보면 짠한 마음이 든다.

코로나19는 은연중에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이 과도기를 지켜보아야겠지만 과연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적응하고 순응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고 달라질까 걱정 반 두려움 반이다. 아울러 자연환경과 기후변화에도 더 관심을 갖고 관계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와 관련한 교육이나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방법을 알아야겠다.

코로나19로 맑아진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사철 미세먼지와 황사로 뿌옇던 하늘이 요즘은 어릴 적 보았던 그 ‘하늘색’을 제대로 보여준다. 시리게 푸른 가을하늘이 요즘은 큰 위안이고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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