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남 시인, 소나무5길 문학회.

해찰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이나 쓸데없는 짓을 하다’라고 설명되어 있고 ‘해찰’ ‘해찰하다’ ‘해찰부리다’라 쓰여 있다.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많이 들어 뜻풀이를 찾아보지 않고도 말뜻을 잘 아는 낱말이다.

어려서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밭에 가다 앙증맞게 핀 작은 제비꽃을 돌아보며 넘어져 무르팍을 깬 일이 있었다. 또 들에 나가신 아버지께 술 주전자를 가져다 드리러 논둑길을 걷다가 도랑에서 꾸물거리던 올챙이에 홀려 꼬꾸라지며 술을 쏟아 지청구를 크게 들은 일들도 다 해찰 탓이었다.

세상을 바쁘게 살았던 젊은 시절에는 한눈 팔 여유조차 없어 무릎이나 이마 깰 일이 별로 없었다. 더러 열정이 지나쳐 바삐 달리다 넘어지거나 자전거로 과속을 하다 돌부리에 걸려 병원신세를 졌던 일들은 해찰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 나이가 고희(古稀)를 지나 희수(喜壽) 즈음이 되니 해찰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새나온다. 서랍을 뒤지다 평소 관심 밖으로 멀어져 기억조차 없던 옛 물건을 찾아내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듯 사람이 나이를 많이 먹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을 실감하겠다.

요즘 노후건강을 위해 운동을 많이 하라는 주변인들의 권고를 잔소리처럼 듣는다. 의사들도 한결같이 상담 끝판에 “운동하세요”를 덧붙인다. 노화로 척추관협착증 진단을 받은 지 꽤 오래 되었다, 짧은 거리조차 걷기가 매우 불편했다. 신경이 눌려 다리통증이 심하고 발바닥 감각이 둔화되었다.

그에 따른 치료가 약물, 침술, 물리치료, 추나요법, 운동치료 등 여러 방법을 권고 받고 실제 병원을 다녀봤지만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시술이나 수술방법이 있지만 대다수 경험했던 이들은 쉽게 권하지 않았고 운동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1년간 꾸준히 공원과 숲길을 걸었더니 요즘은 제법 장거리까지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산책하며 사색을 즐기는 여유로운 풍경이 아니지만, 건강을 위해 빠르게 걷다보면 계절의 변화가 몸에 스며든다. 허리와 다리통증이 사라지고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며 해찰이 스멀스멀 나를 유혹한다. 이른 봄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들면 주변 숲속 산수유, 생강나무, 개나리, 진달래꽃들이 어느새 시선을 붙잡아 이끈다. 공원주변으로는 목련, 철쭉, 조팝나무, 황매화, 이팝나무, 장미들이 차례로 피어나고 이어서 신록이 무르녹는 여름과 가을 단풍과 코스모스가 들길에서 일 년 내내 해찰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 철없이 지내며 어른들께 해찰하지 말라고 지청구 들으며 무릎과 이마가 하루가 멀다하지 않고 깨졌던 추억이 70여년 지났다. 돌부리와 나뭇등걸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밝을 때 들어오라는 그네 재촉에 ‘해찰 좀 하고 들어갈게요’가 요즘 즐겨하는 내 대답이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