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산청 석대마을.

‘우웅~우우~우웅~’

바람소리가 심상치 않다. 한겨울에나 들을 수 있는 드센 소리다. 집이 바람골에 위치해서 바람 심한 날은 자주 잠을 깨곤 한다.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바람소리는 덩치 큰 야생동물의 울부짖음을 닮았다. 겨울이 제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가을을 억지로 쫓아내는 소리처럼 매서웠다.

빼꼼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찬기에 못 이겨 눈을 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가 밖을 둘러보았다. 아직 어스름한 새벽이었다. 지붕보다 높이 가지를 뻗은 집 앞 호두나무가 매서운 바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마당을 둘러싼 벚나무들은 지난여름 긴긴 장마에 지쳤는지 일찌감치 많은 잎들을 떨어냈다. 그나마 남은 몇 잎은 안간힘을 써가며 휘청거리는 나뭇가지에 애처로이 매달려 있다. 짐승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바람, 떨고 있는 나뭇가지, 채 걷히지 않은 어스름에 싸인 바깥을 내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겨울도 빨리 오나 보다.’

2020년은 코로나19에 발목을 잡혀 옴짝달싹 못한 채 살았다. 기분 좋은 기억보다는 한숨 쉴 일이 더 많았던 한 해가 지나고 있다.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절망하고 있다.

나는 올 여름 간신히 버티던 카페를 결국 정리했다. 산청 원지의 1호점 카페라는 자부심에 목에 힘주던 시절도 있었다. 허나 몇 년 사이 급속히 늘어난 대형 카페에 치어 동네 한 귀퉁이 작은 카페는 그 존재감을 잃어갔다. 물론 내 게으름도 한 몫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모든 책임을 코로나19에게 떠넘겼다. 바닥을 드러낸 통장잔고도 코로나 탓이요,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도 코로나 탓이었다. 2층 노래방 주인이 짜증을 내는 것도, 밥상 메뉴가 부실한 것도, 심지어 텃밭에 작물이 시들어도 코로나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사사건건 코로나19는 모두에게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주었다.

한낮이 되니 바람 잠잠해지고 햇볕이 따뜻했다. 햇살에 이끌려 마당으로 나가봤다.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시인의 시처럼 하늘은 가을로 가득 차 있었다. 골바람에 맞서던 벚나무는 평정을 되찾고 명상에 잠겼다. 곱게 단풍 든 이파리들이 벚나무 아래에 잠들었다. 그 옆 화단 귀퉁이엔 올봄 옮겨 심은 구절초가 새하얀 꽃을 피워 눈이 부시고,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 꽃을 피운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렸다. 색색의 소국이 화단을 꿰차고 앉아 가을볕을 받고 있었다. 바람은 적당히 차고 맑았다. 한없이 평온한 가을 한낮에 내가 서 있었다. 누구를, 무엇을 탓하기에는 너무나 맑은 날이었다.

우리가 현재를 살지 못하는 이유가 대부분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모르게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기지개를 활짝 켜 본다.

그래, 다시 시작해보자. 바로 지금,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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