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성 목사 · 지리산생명연대 상임대표님의 <논단> 입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 지리산. 지리산 정상의 능선길에 위치한 노고단 대피소에 이어 벽소령대피소에 전기가 들어갔다.  산장의 대형화로 인한 발전기 소음과 매연, 유류운반위험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국립공원관리공단측의 강력한 의지와 시민단체의 소극적 동의하에 몇 가지 약속을 전제로 이뤄진 것이다.

시민단체는 이들 대피소에 전기가 들어간 후에 달라질 생태계 변화를 검증해 긍정적인 결론이 도출될 때까진 어떤 산장에도 추가로 전기 인입공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국립공원관리공단측은 벽소령 대피소에 전기를 넣은 이후 지리산 생태역학 조사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세석 대피소에 전기인입공사를 추진 중이다.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것이 주 임무인 공단이 지리산의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엔 관심이 없고 편의주의에 빠져 있는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지리산은 우리나라의 최대의 삼림이다. 자체 생태계가 가능한 거대 생태군락지역이다. 그런 지리산이 공단의 안일한 대처로 위협받고 있다. 21세기는 생물자원의 관리가 최대의 현안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세석평전 일대는 국립공원 구역 내에서도 자연보존지구로 특히 엄정하게 보호해야 할 지역이다. 국립공원 내 자연보존지구는 생물다양성, 자연생태계의 원시성, 보호야생동식물의 서식, 뛰어난 경관 가치가 인정되어 특별한 보호를 위하여 지정된 곳으로, 복원 및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시설 이외에는 어떠한 시설의 설치도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국립공원을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관리 주체 스스로가 다른 곳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전기인입을 강력히 추진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다. 지리산은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 바뀌어야 한다.

대피소는 말 그대로 최소 시설로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지리산 주능선에 위치한 공단 직영 대피소의 시설과 서비스는 대피소라기보단 산장이나 별장에 가깝게 변화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삶의 질을 추구하면서 빚어진 것이다.

공단측은 자가 발전에 따르는 위험 등을 거론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전기를 넣는 길밖에 없다고 주민을 설득하고 시민단체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인입 공사를 할 경우 산아래부터 정상까지 50m 간격으로 무려 160개에 달하는 전신주가 줄지어 설치돼야 한다. 그 길을 따라 고압 전기선이 흐르는 등 자연훼손은 필연적인 귀결이 될 것이다.

조난자 구출을 위한 이동통신 중계기 설치를 위해서도 전기인입은 필수적이라는 논거는 왠지 억지 주장처럼 들린다. 만일 그런 논리대로라면 어디 세석대피소뿐이겠는가. 지리산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조난자들을 구조하려면 지리산 전역에 수십개의 중계탑을 설치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지리산 주능선상에서 사람이 실종되거나 사고를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로 비법정 등산로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조난은 또 준비되지 않은 등산객들에게 찾아온다. 이런 사고 사례는 등산객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 등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구조를 위한 휴대폰 중계기 설치로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단언컨대, 지리산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탐방객들은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원생지(原生地)로서의 지리산을 좋아하며, 이러한 자연 속에서 모험과 위험을 감내하면서 산을 오르는 것이라 믿는다. 지리산은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길이 되었다. 에너지 문제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대안 모색이 지리산에서 일어나길 기대한다.

자가 발전에 따르는 여러 문제와 관리상의 어려움에 대해서 모르는 바가 아니다. 발전기의 소음이 문제라면 저소음 발전기를 개발하거나 방음벽을 설치하고 매연이 문제라면 국립공원에 어울리는 청정 에너지원을 자연 속에서 찾아야 한다.

공단은 세석대피소 전기인입 공사와 관련, 시민단체와 지역주민들과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가 도출된 정책을 추진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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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단은 <부산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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