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에게는 질 높은 봉사를
본인에게는 행복한 삶을
모두에게는 안전한 삶이
보장되는 미래를 만들어보자

정용규 전 군수 야간대학 개설
구자종 전 면장 가르침 고마워

식량증산에 힘쓰던 모습에서
문화·복지 집중으로 넘어와
국민과 공직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 함께 노력한 결과

지난 2018년 12월 창원에서 개최한 전국부부테니스대회에 사돈부부와 함께 출전한 모습. 사진 왼쪽부터 하성수 전 함양읍장, 양미숙 안사돈(또래어린이집 원장), 박갑숙(전 함양읍장 배우자), 우승주 사돈(전 서상우체국장).

이글은 나의 이야기지만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동시대 지방공무원들이 살아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공직에 혼(魂)을 쏟았다. 퇴직한 지금 평생을 몸 바쳐 일해 온 공직생활을 되돌아보면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삶이었지만 공직자로서 후회 없는 삶이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고픈 욕망이 있었다. 그러나 병곡면 연덕리 512번지에서 가난한 집안 4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대학진학보다 하루 빨리 직장을 가져 살림에 보탬을 주었으면 하는 부모님의 바램을 외면할 수 없었다.

1977년도에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고향인 함양군 병곡면사무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첫 업무는 사회복지업무였다. 당시에는 힘든 세상이라 어렵고 배고픈 생활을 하는 주민들이 너무도 많았다. 어려운 가정에 밀가루와 보리쌀 배급을 나눠주고, 취로사업을 위해 오지마을까지 1시간 이상을 걸어서 출장을 가야했다. 담당마을에 볼일을 보고 늦어서 마을 이장 집에서 자고 다음날 내려오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직생활을 시작한 나는 너무도 철이 없었던 것 같다. 공무원은 사무실에 앉아서 주민등록 등·초본이나 발급해주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상급기관에서 하달되는 지시사항도 많고, 주민들의 욕구는 끝이 없었다. 업무의 영역도 한계도 없었다. 앞이 막막하고 힘들고 자신이 없어 사표를 쓴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아버지께서 군대 갈 때까지만 근무해보고, 제대 후에 사표를 내도 늦지 않다고 하시는 말씀에 용기를 얻어 인내와 끈기로 버텨냈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직하여 결혼도 하고 점차 공무원 생활에 적응하게 되었다. 연륜이 쌓이면서 공직자의 직분이 무엇인가에 대해 하나 둘 알아가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크고 작은 일에는 행정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야말로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처럼 해야 하는 것이다. 업무의 영역이 없는 조장행정의 중요성에 대해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하성수 전 함양읍장이 퇴직 후 산림을 가꾸며 농사일을 하고 있다.

당시는 어려운 시절이라 마을 진입로 포장이 전혀 되지 않았고, 행정의 대부분은 식량증산에 집중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포장사업은 시멘트와 골재를 구입하고 마을 주민들이 인력으로 건설하였다. 식량증산을 위해 통일벼 전면재배를 위해 주민과 마찰도 많았다. 각종 마을 일들은 노임을 지불하지 않는 부역으로 해결했고, 가뭄이 심할 때는 양수기로 논에 물을 퍼 올리느라 밤샘을 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아침에는 마을앰프에서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지고, 너도나도 지붕개량, 담장개량사업을 하는 주민들의 모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정부양곡이 부족하여 추곡수매 목표량을 하달 받고 수매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일일이 주민들을 찾아다니면서 수매독려를 하고 다녔다.

4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 구름이 모이면 틀림없이 비가 되듯, 잘살아 보려는 주민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해가 거듭될수록 변해가는 지역발전의 모습에서 가슴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마을마다 포장 안 된 곳이 없고, 식량이 남아 소비할 곳이 없고, 양보다는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려 애를 쓰고 있다.

추곡수매량을 늘려달라고 대정부 투쟁을 하는 농민이 늘어나고, 마을 경·노모당에는 냉·난방시설이 되어있으며 연로한 노인들이 전액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식량까지 무료제공 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점심을 해주는 인력까지 행정에서 지원하고 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요구르트 배달 사업 등을 통해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혹시라도 발생될 위험에 대비하여 정기적인 방문 관리를 하고 있다.

배고픔 탈피를 위한 식량증산을 위해 한해대책, 통일벼 전면재배 등에 비상근무를 해야 했던 옛날 공무원시절에서, 오늘날은 산불예방, 문화관광, 사회복지, 재난예방 등 환경과 문화, 복지 그리고 안전한 삶에 대해 행정을 집중하는 시대로 변화되었다.

청춘을 다 바친 젊은 시절의 공무원 생활을 돌이켜 보면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변화가 하루아침에 그냥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치인, 공직자, 국민이 함께 노력한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한때는 일선에서 그것도 농촌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는 저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남들처럼 대학에 진학해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좋은 일자리와 경제적인 부를 누리는 장밋빛 인생을 꿈꾼 적도 있었다. 대학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고 올 때면 눈물로 밤을 지새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함양군청에 강의실을 만들고 진주 과학기술대학교와 협의하여 야간 대학과정을 개설하여 4년 동안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야간대학과정을 개설해주신 정용규 군수님께 특별히 감사한 마음이다.

1987년도 셀마 태풍 때에는 1개월 이상 비상근무를 하며 피해복구에 죽을 고생을 했었다. 전 직원들이 온통 본연의 업무보다는 피해조사와 복구사업에 매달렸다. 사람이 죽고, 제방은 무너지고, 다리는 떠내려가고, 농경지는 작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몰되고, 산사태로 도로는 대부분 끊어지고,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밤을 새워 일을 해도 사업의 진도는 나가지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없는, 막막한 현실 속에 넋을 놓고 실의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저 하나하나 급한 일부터 하나씩 처리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전국적으로 너무도 큰 피해라 예산지원에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최선을 다 해도 주민들의 욕구를 다 채워 줄 수 없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2~3년 정도가 지나니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2007년도는 나에게 뜻 깊은 해였다. 사무관으로 승진하여 백전면장으로 발령받고 부모님께서 너무도 좋아하시든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옛말을 그때 깨닫게 되었다. 발령받는 날, 제가 평소 존경하던 구자종 전 면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을 명심하게! 책을 보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라, 두발로 부지런히 마을을 다니면서 현장을 보고 듣고 상황 판단을 잘 해야 한다는 뜻이라네! 면장 직을 잘 수행하려면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길 바란다고 조언해 주셨다. 참으로 고마우신 선배님이시다.

백전면장을 시작으로 병곡면장, 지곡면장, 마천면장, 도시환경과장, 산림녹지과장, 농축산과장, 함양읍장을 거치면서 한 번도 선배님 말씀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모든 일은 현장 속에서 항상 주민과 함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함양읍장 재직 시에는 읍장실을 1층으로 옮겨서 읍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여 좋은 평을 받기도 했다.

산림녹지과장 재직 시에는 대봉산 개발 사업에 혼신을 다했던 것 같다. 휴양, 레저, 치유, 관광 등 산과 관련된 종합적인 개발사업인 만큼, 인력과 예산이 엄청나게 소요되는 사업이다. 예산확보를 위해 중앙부처, 국회 등을 수도 없이 방문하였다. 수많은 관계부처 공무원과 국회의원을 찾아 다녔다. 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예산지원을 부탁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재직당시 1100억원의 국비를 확보하고 얼마나 가슴 뿌듯해했는지 모른다. 물론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예산확보를 위해 5명 이상의 산림녹지과장이 바뀌었다. 세월도 10년이나 걸렸다. 산삼 엑스포의 기반을 다지게 된 셈이다. 올해에 개최 예정이었던 산삼엑스포가 코로나19 때문에 내년으로 연기 되어 너무도 아쉽다. 우리 군민 모두가 똘똘 뭉쳐서 다가올 국제행사를 성공리에 잘 마무리 하고 우리 함양군이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하성수 전 함양읍장이 퇴직 후 농사를 짓고 집을 가꾸면서 단란하면서도 즐겁게 여가를 보내고 있다.

퇴직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삼봉산 자락에 조그마한 농장을 꾸려 밤농사를 짓고 있다. 퇴직 10년 전쯤 운 좋게 땅을 구입하여 은퇴 후 마지막 인생을 보낼 터전을 만든 것이다. 하루 일과는 대부분 농장과 테니스장에서 보낸다.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농장에서 일하고 아내와 함께 테니스를 즐길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후배 공무원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공무원 한사람의 힘은 보잘것없이 미약하다. 하지만 자치단체라는 조직이 있고, 국가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뒤에서 받쳐주고 있지 않은가! 좋은 기획안과 열정이 있다면 무한대적인 예산과 인력지원이 가능한 국가가 있으니 못할 것은 없을 것 같다.

지역의 발전과 국가발전을 위해 한평생 젊음을 바쳐볼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재직 중에 틈틈이 취미생활도 가꾸고, 퇴직 후의 여생을 보낼 수 있는 터전도 미리미리 준비해 나가길 바란다. 특히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은퇴 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민원과 각종 어려움에 시달리는 후배 공무원 여러분! 힘내시기 바랍니다. 각자 어디에서 어떤 일을 담당하든 모두가 주민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절실한 일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민에게 질 높은 봉사를’, ‘본인에겐 행복한 삶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안전한 삶이 보장되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 봅시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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