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 합의서를 군이 지키지 않아
재판서 불리할 것이란 관측 예상

민간행사를 관 주도로 바꾸려는
시대착오적 태도가 문제의 핵심

법원의 판결은 연극제 집행부의
기여도를 15% 정도 인정한 것
이 금액이 17억3558만원 판결

시민단체는 군과 의회 무능 질타
연극제 대해선 상표권 철회 요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민사부는 13일 거창군은 거창국제연극제 상표권에 대해 17억3558만원을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회 측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진: 거창군>

거창국제연극제 상표권 보상금액을 놓고 빚은 거창군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회의 법정 공방은 내용적으로 보면 거창군의 완패다.

양측이 상표권 금액을 놓고 산술평균을 낸 금액이 18억원이었고, 법원이 인정한 건 17억원으로 1억원 정도 줄었으나, 평가 항목 중 2010년 ‘1인 평균 소비지출액’의 오류를 법원이 정정한 것으로 사실상 거창연극제의 주장이 전부 받아들여진 것과 다름없어서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거창군은 지난 15년간 나온 평가보고서 내용 중에 오류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일축했다. 재판부는 “산정방식에 관한 것으로서 보고서 작성 주체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에 해당하므로, 원고 측 및 피고 측 각 평가팀의 감정평가액을 새롭게 수정하여야 하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거창군의 이의제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각기 평가 기준이 다를 수 있음을 계약서에 명시한 후 도장까지 찍어놓고 딴소리하는 것을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양측이 작성한 합의서를 거창군 뒤늦게 이의 제기한 것이어서 거창군이 불리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았다. 특히 법원은 두 차례에 걸쳐 강제조정과 화해권고를 통해 원만한 합의를 주문했다. 강제조정금액으로 14억8473만원을 제시했고, 화해권고를 결정하면서는 금액 11억261만원을 제시했다. 거창연극제의 요구에 부합한 내용이었다.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거창연극제와는 다르게 거창군이 거부하면서 판결로 이어지게 됐다.

여기서 드러난 것은 거창군의 무능이었다. 거창군의회 역시 거창군과 똑같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표면적으로는 거창군의 책임이지만 조정과 화해권고를 거부한 것은 거창군의회가 부정적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군민 혈세를 운운하지만, 판단은 어리석은 것이었다. 법원의 조정과 화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책 없는 거부가 이어지면서 1심 판결로 이어졌다.

지난 4월 법원의 화해권고에 따라 거창군과 집행위가 합의한 내용은 △상표권 이전에 대한 보상금 8억원 △군수 현 임기동안 집행위원장·예술감독 임기보장 △거창겨울연극제 등 삭감된 6개 사업 연극제 예산 원상회복(연 1억5000만원~2억원) △거창문화재단 문화사업2단 수승내 축제극장 사무실로 배치요구 4가지였다.

그러나 거창군의회는 “상표권 이전에 대한 보상금 8억원 이외 나머지 3가지 요구사항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의원들은 “거창연극체 측의 일방적인 요구에 끌려갈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거창군의회 총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재경 군의원은 “군에서 대응을 잘못한 것인지 의회에서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난 5월에도 집행부와 연극제 측의 중재를 위해 의회가 나서기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대조건은 제외하고 상표권 보삼금액만 전해듣다보니 중재 자체가 와해된 것으로 이점은 의회가 오해받고 있는 부분이다”고 해명했다.

자세한 사항을 모르는 일부 의원들은 양측 합의사항이 아닌 거창연극제의 독자적인 안으로 파악한 것으로, 이는 사전에 협상 내용을 의장 등 일부에게만 제공하고 나머지 의원들에게는 정확히 공지하지 않은 거창군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거창군의회가 원만한 합의를 위해 애쓴 흔적은 뚜렷하지 않다. 권재경 군의원은 1심 판결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할 수밖에 없다”며 “거창군과 연극제 측이 어떻게 합의를 할지 지켜보고 의회가 대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거창국제연극제를 살릴 것인지, 사장시킬 것인지는 앞으로 합의과정을 보고 판단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입장을 밝혔다.

거창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19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무책임한 군 행정, 대안 없는 군의회라며 양측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 같은 논란이 생긴 것은 계약 당시 작성한 계약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으로 계약을 추진한 관련 공무원에 대해서는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군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보상금은 혈세를 낭비하는 일이며, 의회 또한 이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거창연극제를 향해서도 상표권 소유주장을 철회해야 한다”며 “30년 세월 동안 거창과 거창 주민의 자랑거리로, 모두의 소중한 자산으로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의 소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거창연극제 문제에서 시민단체 역시 거창군과 거창군의회를 비난하는 논리가 꼬일 만큼 우왕좌왕하는 태도를 엿보이고 있다. 시민사업위원회는 “차후 군민 정서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밝혔으나, 거창군의 판단은 법원의 판결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라는 요구로 해석될 수도 있다.

물론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대군민 토론회를 열고 주민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 집행위나 법원에 전달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양측의 계약서 이행과 관련된 문제가 판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갈피는 못 잡는 인상이다.

거창YMCA 홍정희 시민사업위원장은 “1심 판결은 사법부의 판단으로,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사법부의 판단과 같지도 않고, 군민들의 눈높이도 이번 선고 결과와는 다르다”며 “군민들이 함께 만든 축제를 세금을 들여 상표권으로 다시 사들이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존 거창연극제 집행부는 알아서 손 떼고 나가면 된다는 이야긴가?’라는 질문에 “꼭 그런 점은 아니고 주민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이야기”라며 “보상금액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군민들과 상의 없이 군수 입맛대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이런 불상사가 생겼다고 보는 것이고, 공청회를 통해 연극제 집행부의 거취는 판단할 문제라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인정한 거창연극제의 보상금액은 기존 집행부의 기여도를 15%로 인정한 것이었다. 거창연극제가 산출한 보상금액은 기존 집행부의 기여도는 12%로 평가한 것이었고, 거창군은 기여도를 18%로 평가해 보상금액을 책정한 것이었다. 법원이 인정한 금액은 이를 산술평균한 것으로 30년 동안 거창국제연극제를 만들고 이끌어온 기여도를 인정한 것인데, 보상금을 혈세 낭비로 보는 시각은 주관적인 입장의 차이로 보인다.

2014년 부산영화제가 정치적 탄압을 받을 때 영화계와 문화예술계가 반발하자 당시 부산시는 “부산시민의 힘으로 성장한 영화제”라며 영화인들을 외부인사 취급하고, 부산시의 개입을 정당화하려다 거센 반발을 샀다. 당시 부산시민단체는 부산시의 논리를 비판하기도 했다.

거창시민단체의 주장이 당시 부산시 주장과 유사하는 지적에 대해 홍정희 시민사업위원장은 “그렇지 않다. 예술은 창의성과 순수성을 바탕으로 민간에서 주도해야 한다. 관에서 인문학을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축제는 시민들이 주도할 때 발전한다”면서 “거창군에서 적극적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이지, 예산을 지원한다고 관에서 연극제에 맘대로 개입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거창시민단체는 2019년 8월20일 거창국제연극제의 상표권 매매를 무효화 하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인모 군수를 향해 “연극제에 관한 모든 업무를 문화재단에 일임하고 다시는 이런 소모적인 송사에 휘말리지 않도록 법률자문을 받고 업무를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거창국제연극제의 정상화를 위해 예술감독은 매년 전국 공모를 통해 선정하고, 다양한 분야의 저명한 공연예술계 인사들로 가칭 ‘거창국제연극제 예술감독 심의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촉구했다.

예술의 민간주도를 강조했지만, 지난해 문화재단에 일임하라고 요구한 것과 비교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히 예술감독을 매년 공모하라는 주장 역시 장기적 안목으로 연극제를 준비하기 보다는 해마다 1회성 행사로 개최하라는 것과 다름없다는 문화예술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화예술계의 한 인사는 “도대체 해마다 예술감독을 공모하는 행사가 어디 있고, 그렇게 하면서 잘 되는 행사가 있기는 하냐?”며 비판했다.

거창연극제의 해법은 사실 단순하다. 굳이 상표권을 사고팔 필요 없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에 충실해 예산을 지원하고 거창군이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면 된다.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물으면 되는 일이다. 대신 연극제는 쇄신안과 세대교체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망각하고 상표권을 사고팔아 민간주도 행사를 관 주도로 바꾸겠다는 거창군의 시대착오적 태도와 문제 해결 의지가 없는 군의회의 무능이 거창연극제가 1심 판결이 드러낸 문제의 본질이다.

위천면에 거주하는 신정규 거창 신씨문중 유사는 “법원의 판결은 속 시원하게 제대로 내린 판결로 이제 거창국제연극제의 정상화 길이 열려 다행이라며 시민단체도 법원 판결에 따라야 하고, 행정에서 하는 일을 자기들 뜻과 다르다고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연극제가 열리는 위천면 주민들과 상가들은 이번 법원 판결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면서 “거창국제연극제를 만든 사람들의 공로를 인정 안 하면 누구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인가?”라고 상표권 소유주장을 철회하라는 시민단체의 입장을 반박했다.

신정규 씨는 “지금은 반대가 아니고, 연극제 정상화에 모두가 힘을 보탤 때”라며 “상표권은 거창군에서 갖고, 연극제는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회 주관으로 열렸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어 거창연극제를 향해서도 “결국 소통이 부족해 생긴 문제일 수도 있다. 거창군과 더 소통할 것”을 주문하고, “예전처럼 기존 집행부에 예산을 지원해주면서 연극제를 개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은정 기자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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