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새옹지마
닭장을 나온 까만닭
이진숙 소설가.

햇볕 따가운 가을날, 김장배추를 심을 요량으로 텃밭을 일구다가 풀숲에서 달걀 한 무더기를 발견했다. 세어보니 여덟 개나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까만닭 한 마리가 닭장을 뛰쳐나와서는 너른 풀밭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닭장에 넣어달라고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요런 멍청한 녀석아, 그러게 왜 자꾸 뛰쳐나오고 그러냐?” 매번 핀잔을 주며 녀석을 넣어주곤 했다. 바로 그 까만닭이 풀숲에다 몰래 달걀을 낳아 모아 놓은 것이었다. 여덟 개 달걀은 그날 저녁 맛있는 계란찜으로 식탁에 올려졌다.

다음날도 까만닭은 닭장을 나와서 풀숲 주변을 맴돌았다. 달걀을 찾는 게 분명했다. “얌마, 그거 우리가 맛있게 잘 먹었어. 거기 숨겨 놓으면 못 찾을 줄 알았지?” 녀석은 계속해서 주변을 맴돌더니 풀 뽑는 내게로 와서 치근댔다. 마치 달걀을 내놓으라고 조르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까만닭은 계속해서 닭장을 탈출했다. 풀숲 어딘가에 또 달걀을 낳는 게 분명했다. 달걀이 있을 만한 곳을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주변은 온통 억센 풀들이 무성해서 가까이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특히 도깨비바늘과 한삼덩굴이 지천이라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내 귀와 눈을 의심할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잡풀 무성한 풀밭에서 ‘삐약, 삐약’ 작은 소리가 들리고 새까만 공 같은 게 굴러다니는 게 아닌가.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새까만 공은 병아리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다섯, 여섯……, 제법 많았다. 살금살금 병아리를 따라가 보니 까만닭이 웅크리고 앉아 알을 품고 있었다. 까만닭은 알을 부화시키려고 닭장을 뛰쳐나와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알을 낳고 품었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지난번 풀숲에서 발견한 여덟 개의 알을 모조리 요리해 먹고 말았다니!

까만닭은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을 품고 있었다. 산중턱 가을날은 한낮이면 찌는 듯 따갑다가도 해지면 쌀쌀해서 추위에 약한 병아리가 자칫 얼어 죽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까만닭이 앉은 둘레로 비닐을 덮어 임시 거처를 만들어주었다.

다음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들렸다. 가을비는 어미닭과 병아리에게 치명적이다. 급한 대로 이들을 창고 안에 옮기기로 했다. 커다란 대소쿠리를 들고 다가가자 어미닭은 알을 품은 채로 ‘꼬꼬꼬’ 두려움 섞인 소리를 냈다. 우선 어미닭과 품던 알을 창고 안에 마련된 보금자리로 옮겼다. 문제는 병아리들이었다. 어미닭과 알을 옮기는 사이 놀란 병아리들이 풀숲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녀석들은 멀리 달아나지 못해서 금방 찾아냈지만 제법 날쌘 녀석들은 풀숲 여기저기 박혀서 소리만 들릴 뿐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병아리 찾기 대작전이 벌어졌다. 귀를 쫑긋 세우고 ‘삐약 삐약’ 소리를 따라 풀숲을 뒤졌다. 궁지에 몰린 녀석들은 점점 더 크게 울어댔다. 녀석들을 발견하면 두 손을 풀숲에 넣어 생포했다. 손 안에 든 녀석은 작은 몸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버둥거렸다.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보들보들한 털이 손바닥을 간질거려 웃음이 났다. 아홉 마리를 찾아내고서야 작전은 종료되었다. 모두 찾은 듯했다.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도 ‘삐약 삐약’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집둘레 둘러친 키 큰 나뭇가지에 앉아 우리의 소동을 구경하던 새들 지저귐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알을 낳는 족족 들고 가버리자 까만닭은 닭장을 뛰쳐나와 알을 품기로 했다. 그리고 풀숲에 알을 낳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인은 이마저도 찾아서 가져가 버린다. 그렇다고 포기할 까만닭이 아니었다. 더 무성하고 외진 풀숲에다 알을 품어서 마침내 열두 마리 병아리를 부화시켰다. 어미닭의 모성애가 눈물겨웠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품고 있던 알을 떠나지 못하던 모습에 새삼 경외심마저 들었다. 어미닭의 사랑으로 하루하루 커가는 병아리가족을 보면서 모정이란 본능인 동시에 하늘이 내린 성스러운 계명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부경남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