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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마음, 모두를 살맛나게 하는 가장 훌륭한 삶이창규 전 함양군 안의면장

36년의 공직생활, 매순간 최선
동료와 긴 여정 보람되게 보내

거창 북상면으로 첫 발령 받아
2년 후 함양 서상면으로 전입해
1982년 새마을 사진첩 보면서
어려웠던 그 시절을 회상하기도

안의면 유래와 전설 조사 ‘뿌듯’
초대 이사장으로 장학기금 모금
군청사 유휴건물 36억 예산절감

이창규 전 함양군 안의면장.

나의 공직생활 36년간을 회고하면 함께 근무하였던 동료직원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긴 여정을 보람되게 보낼 수 있었다. 매순간 맡을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노력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해 놓은 것 하나 없이 떠나온 것만 같은 미안함과, 다시 시작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197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간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다가 1977년도에 군 입대를 하여 3년간 강원도 철원에서 군복무를 하였다. 1978년 3월 행정실에서 갑자기 호출이 있어 가보니 장교가 평소에 아버님께서 편찮으셨냐고 물어보며 서둘러 집을 다녀오라고 하였다. 불길한 생각과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오는데 새벽에 김천역에 도착하여 차편이 끊겨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첫차를 타고 안의면 용추계곡 입구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친척을 만났다. 오늘이 아버님 장례를 치른 지 삼일이 되는 삼오 날로 제사를 지내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살아생전 마지막 모습은 보지도 못하고 산소에서 뵈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여 남은 군복무를 하면서 바쁜 일정에도 틈틈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여 1979년 12월 제대를 하고, 1980년 3월 경상남도 공채 시험을 합격하여 그해 8월 거창군 북상면에 첫 발령을 받아 공직에 입문하였다.

거창군청에서 발령장을 받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무더운 여름날 공무원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북상면을 완행버스를 타고 비포장 길을 달려 인솔자도 없이 혼자 찾아갔다. 그 당시 병충해 방제와 퇴비증산 등 시책추진으로 직원들은 모두 출장 중이어서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면장님께서 들어오셨다. 처음 뵌 면장님과 마주 앉는 순간 바짝 긴장이 되었다. 면장님께서는 부모님처럼 편안하게 생각하라고 하시면서 어린 시절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지금도 그때 하신 말씀을 잊지 못한다.

면장님께서는 부모님을 따라 만주로 들어가서 초등학교 3년을 다니던 중 해방이 되어 귀국을 하여 이모집에서 소를 먹이고 심부름을 하면서 생활하다가 북상 소재지에 있는 이발소에서 밥도 먹여 주고 재워 줄테니 오라고 하여 이발소에 취직하게 되었다. 이발소에서 2년간 열심히 일을 하던 어느 날 북상면사무소에서 청소부를 모집하는데, 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청소부로 채용되어 열심히 일하다 보니 기회가 왔다. 임시직으로 채용되고, 그 후에 정규직으로 승진하여 면장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살아온 과거 사례를 말씀해 주시면서 열심히 하면 꼭 성공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셨다.

함양군청사 유휴건물이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전국 청사관리관리 담당공무원 워크숍에서 우수사례로 채택됐다.

업무는 산업계에서 수매, 전작 업무를 담당하였다. 발령을 받고 얼마 되지 않은 장마철에 하곡 수매를 하게 되었다. 수매를 한창 하고 있는 도중에 비가 내려 창고로 급하게 입고를 하려고 하는데 농협 참사(현 농협상무)라는 분이 와서 가마니 숫자가 틀려 입고를 못 받으니 숫자를 정확히 파악한 후에 입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입고를 지연시키는 참사가 원망스러웠다.

다시 숫자를 세어보니 한 가마니가 차이가 났다. 판정에 불만을 가진 농민이 이미 판정을 받은 가마니를 판정을 기다리는 곳으로 옮겨 다시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경험이 많고 눈치가 빠른 검사원은 알고 처음 판정을 내렸던 등급으로 판정을 내렸다고 점심을 먹으면서 알려주셨다. 화난 농민을 잘 설득하여 수매를 끝마친 경험은 나의 공직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1981년에는 거창군에서 식량증산 특수시책으로 씨감자 채종포 재배를 하였다. 씨감자 채종포 재배는 무병 우량 씨감자를 생산하여 전국 감자 생산 농가에 공급하는 사업으로 식량증산 우수공무원 표창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상이자 공직생활 첫 상장으로 아직도 그때의 기쁨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근무하는 동안 제일 오지마을인 북상면 산수리 마을을 담당하였다. 산수리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12㎞ 거리로 걸어서 출장을 가기에는 너무나 멀고 차량은 하루에 아침, 저녁 두 번 다녔다. 차 시간에 맞춰 오전 9시에 출장을 가면 내려오지도 못하고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추억들을 쌓으며 지내다가 오후 5시가 되어야만 차를 타고 내려올 수가 있었다.

1982년 9월 서상면으로 전입을 하여 1991년까지 근무를 하였는데 짧은 생각으로 한 지역에 오래 있으면 돈을 빨리 모아 내 집을 마련할 생각으로 10여년을 근무를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판단을 하였다는 생각과 후회가 된다.

이후 서하면, 수동면, 안의면을 비롯해 행정과, 민원과, 재무과, 농업기술센터, 경제과 등 밤 낮으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집안일과 가족들을 챙기지 못한 시간도 참 많았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한 노력의 대가로 늦었지만 사무관으로 승진되어 고향인 안의면에서 면장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보람도 느꼈다.

특히 공직생활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1982년 거창에서 함양군 서상면으로 발령을 받아 새마을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새마을 사업을 추진하면서 찍어놓은 사진 일부를 앨범에 꽂아 놓은 것이 있어 가끔 사진첩을 보면서 어려웠던 그 시절을 회상해 보곤 한다.

그리고 안의면에서 근무 할 때 있었던 일로 유원지 유래와 전설을 조사하여 안내판 추진을 한 사례가 생각이 난다. 면장실에서 직원들과 추진 방법을 협의하였으나, 아무도 업무를 맡을 사람이 없어 부득이 이 일을 추진하게 되었다. 유래와 전설을 조사하기 위해 안의, 서상, 서하, 마리, 위천, 북상면을 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많은 책을 살펴보았다. 용추계곡과 농월정 계곡, 안의 팔정팔담, 용추 곡우제에 대한 내용까지 조사를 하여 안내판을 제작 설치하였는데, 가끔 내가 설치한 안내판들을 볼 때면 뿌듯한 마음이 들곤 한다.

1996년 경상남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 함양군을 대표해 출연했다.

그때 조사한 내용 중 함양 여성들놀이 소리는 1996년(제28회), 1997년(제29회) 경상남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 함양군을 대표하여 출연하여 장려상을 수상한 바 있고, 함양군에 보존회가 생겨 우리고장 문화를 보존 계승하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하고 그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07년 2월 재산관리 담당으로 재직하면서 행정기구의 확대, 개편 등으로 업무시설 및 사무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민원이 많이 발생하였다. 부지 확보를 통해 군청사 내 심각한 주차난을 해결하였다. 가장 큰 성과는 부속청사 신축, 상하수도 신축 계획을 변경하여 매입한 부지 내 유휴건물을 증축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게 하여 36억원의 예산을 절감하였다.

업무를 추진하면서 토지 매입 보상가격에 대한 불만 등으로 보상협의가 원활히 추진되지 않아 업무 추진에 애로가 많았지만 행정안전부에 우수 모범사례로 채택되어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전국 청사관리 담당공무원 워크숍에서 우수사례로 채택되어 정부모범공무원표창(국무총리), 행정안전부장관표창, 도지사표창을 수상하였다.

이밖에도 함양군 의회청사 증축, 지곡면 한옥 청사건립, 함양토종약초시장을 건립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2015년 1월 고향인 안의면에 면장으로 부임해서는 부임 전부터 생각해오던 것들 중 안의면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안의교 다리위의 무분별한 불법주차로 안의면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어 중앙분리대를 만들어 불법주차를 근절하였다.

또한 인구 5000명의 안의면 주민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주민자치센터를 개소하였으며, 지역의 미래 인재양성을 위해 안의면 장학회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으로서 기금 모금활동을 펼쳐 7000만원을 모금하였다.

퇴임식에서 이창규 면장이 아내 정현조 여사와 나란히 앉아 있다.

2015년 12월 퇴직을 하고 자연인으로 돌아와 조그마한 텃밭을 가꾸는 소박한 농부의 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랜 세월 길들여진 공직생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속에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마음의 빚과 생각들이 고여 있는 것 같다.

고도산업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도덕성이 실추된 현대인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여 주신 공자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수기안인의 덕목(修己安人 德目)을 실천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2019년 2월 함양유교대학에 입교, 2여년의 과정을 이수하여 올 12월 수료를 앞두고 있다.

오늘날 먹고 사는 생활수준이 나아졌음에도 우리들 삶이 이전보다 점점 외롭고 쓸쓸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자신을 성찰하고 비운 다음 그 속에 감사할 마음을 채우고, 그리고 말할 때도 남의 허물은 덮어주며 착한 것을 앞장서서 칭찬하는 은악이양선(隱惡而揚善)을 실천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나와 내 가족, 우리 사회 모두를 살맛나게 하는 가장 훌륭한 삶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나의 공직생활을 포함하여 살아오는 동안 부족함이나 난망한 일이 없었는지 돌아보고 반성하며 앞으로 더욱 겸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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