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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공무원은 군민들을 위해 일하는 손정대훈 전 함양군 주민행복실장

42년간 이란 장구한 세월을
군민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근본 원칙을 지켜내며 헌신

가장 많은 애착이 가는 곳은
9년 동안 일한 문화관광과
관광자원 정비에 열정 쏟아

최선을 다할 때 정당한 대가
받아야 하는 것이 사회 기본
정의와 순리는 다시 되돌아와

정대훈 전 함양군 주민행복실장.

지독하게 가난하고 못살았던 산업화의 시절에서 물질만능의 현재까지 장장 42년간을 군민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나”라는 나무 등걸을 바쳤다.

장구한 세월 속에서 나의 원칙과 규범은 때로는 깎이고 꺾이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근본의 원칙을 벗어나지는 아니했다고 나름대로 자부를 해 본다.

졸부들의 망동에 의해 과정이나 진실과는 상반되는 일의 발생과 낭설과 오해를 받을 때는 서글프기도 하였고, 야심차게 추진해 온 일들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에는 안타깝기도 하였다.

◇ 공무원의 시작

내가 공무원을 시작한 것은 1978년도 만 18세 때인 지금의 울주군이었다. 그해 겨울에 국민투표가 있었는데 투표연령 미달로 나는 투표권이 없었다. 투표권도 없는 사람이 공무원이랍시고, 투표사무 종사원 역할을 하였으니 지금 생각해보니 우스운 일이었다.

그 국민투표는 무슨 투표인지 알 수가 없는데 투표율 상승을 위하여 마감시간이 다 되어 가자 불참자들의 표를 참석한 것으로 처리하고 부정투표를 한 것이다. 물론 나도 지시에 따라 10여장 정도 투표를 하였다. 그 시기의 국민투표율이 높은 이유와 공무원의 선거개입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1년 반 공무원 생활을 한 나는 고향인 함양으로 오게 되었다.

◇ 문화체육관광 자원의 정비와 추진

행정직으로서 많은 부서를 돌아다녔지만 가장 많이 근무한 곳은 문화관광과였다. 계장으로서 6년 정도, 과장으로 2년 반 정도 약 9년 정도로서 애착이 많은 곳이었다.

현재 함양군의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자원의 정비에 나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상림의 주차장 조성과 관리소 건립, 세계유산인 남계서원의 정비, 문화예술회관과 박물관의 건립, 최치원기념관 건립, 사근산성의 복원과 사당건립, 현재 추진 중에 있는 체육공원의 조성, 논개묘역의 공원조성, 문화원의 이전 건립, 수많은 문화유산의 문화재지정과 상림 주변의 토지매입 등이 있고, 지리산천왕축제 개발, 연암축제 개발, 일두 정여창 선생 관련 각종 행사 등이다.

사업 하나하나를 추진하게 된 원인도 다양하다. 문화예술회관과 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경위는 도둑의 예방을 위해서 생각한 것이다. 지곡면 개평마을에는 영화촬영이 가끔 있는데 촬영이 끝나고 한 달 이내에 항상 도난 사건이 발생하였다.

도난 시 흐트러진 고서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군 차원에서 이러한 물품들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사업추진을 하게 된 것이다. 사업신청서를 직접 만들어 경남도와 중앙부처를 찾아다니면서 신청경위를 설명하였다. 그 결과 한 개도 어려운 사업이 동시에 400억원이 넘는 규모로 승인이 된 것이다. 사업추진은 후임자들이 디자인을 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남계서원은 현재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 모습은 서원 앞의 마을 하나를 전부 이주시키고 만들어진 결정체이다. 세계유산의 심사를 받을 때에는 일반 민가들과 어우러진 문화유산의 모습을 필요로 했으나, 그 모습을 찾을 수가 없어 개운치 못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체육인들의 숙원사업인 각종 체육시설의 집단화를 위한 체육공원조성은 사업승인을 받기 위하여 몇 번을 경남도청의 타당성 심의위원회에 노크를 하였으나 인구 감소현상 추세에서 대규모 시설은 불필요하다면서 이유 없이 부결 당하였다. 포기생각도 들었으나 체육인들과의 협의를 통하여 규모도 약간 축소하고, 그것도 1·2차로 나누어 시행한다는 조건으로 승인을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최치원 선생은 경주사람이지만 전국적으로 그 흔적은 많이 흩어져 있다. 상림은 선생의 흔적이 남아있는 전국의 유일한 토목사업지로서 많은 사람이 즐겨 찾고 있는 관광명소이다. 그러나 최치원 선생 기념사업은 경주에서 제례를 올리는 상서장과 각지에 있는 작은 유물전시관 정도이다. 오히려 중국 양주에서 크게 조성을 하고 한국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함양군도 최치원 선생 관련 기념사업을 선점하기 위하여 상림이 바라보이는 곳에 짓기 위해 양주를 방문하는 등 야심차게 시작을 하였으나 시행과정에서 규모가 축소되었고, 지금은 관심도가 낮아져 관광 상품화 육성계획도 열정이 식은 실정이다. 다른 자치단체에서 최치원 상품을 개발하면 최치원 선생 관련 사업이 의미 없는 흉물이 되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최치원 기념관 건립을 위해 중국 양주를 방문한 함양군 견학단. 사진 앞줄 네 번째가 정대훈 문화관광과장 당시의 모습.

◇ 유난히도 많았던 문화유산의 화재사건들

문화유산 담당계장으로 근무할 때 유난히도 화재사건이 많이 발생하였다. 서하면의 아름지기 주택과 농월정이 전소되었고, 안의면 허삼둘 가옥의 안채와 사랑채는 두 번에 걸쳐 반소되는 일이 있었다.

또 상림의 물레방아 초가집도 화재를 당할 뻔 했고, 심지어는 학사루 경내에도 누군가 불을 질러 잔디와 소나무가 화마로 타버려 현재는 없다. 다행히 일찍 발견하여 화마로 소실되는 상황을 모면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정황으로 방화 흔적이 있었으나 사회안전망 부족으로 미결처리 되고 말았다.

◇ 문화유산의 문화재 지정

관내에 있는 수많은 문화유산의 보전을 위하여 자의적 판단으로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지정과정은 주민동의과정과 자문, 심의를 받아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무엇보다 당해 자산의 인접지 주민들은 사익의 침해를 받으므로 싫어하는 경향이다. 그런데도 어떤 경우는 지정이 되자마자 행정관서에 보수나 유지관련 문화재 갑질로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후임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어느 마을은 관광자원화를 위하여 한옥의 보수와 초가집의 건축을 위해 수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도 했으나 잘 되지 않았는데도 마을 전체를 민속마을 지정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문화재 지정에 대한 마을전체 주민의 미동의로 폐기처리 되었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다. 마을이 문화재가 되면 통제를 받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던 것 같다.

서부경남 시군 직원들과 함께 한 일본 견학. 함양군, 거창군 공무원들이 함께 했다.

◇ 남기고 싶은 말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자치단체의 정책이든 민원이든 간에 긍정적인 생각으로 목적달성을 이루어 나간다. 공무원의 좋지 않은 유형으로 일은 하지 않으면서 주변사 람들과 놀 생각만 하는 유형,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통하여 축재에 관심이 많은 유형, 마지못해 일을 하여 창의성 부재로 발전이 되지 않는 유형, 잿밥에만 관심이 많은 유형 등 여러 가지 유형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매사에 ‘NO’ 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고 그렇다는 논리를 개발하여 퍼즐을 맞추듯이 전개하는 유형이 많다. ‘NO’ 라는 말을 할 때에는 ‘NO’라는 벽에 막혀 그 너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안된다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할 얘기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름다운 손은 자식들을 위하여 거칠어진 엄마의 손이라고 한다. 공무원의 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군민들을 위하여 일하는 손이 가장 아름답다. 항상 최선을 다 할 때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공정성을 위배한 처사도 가끔 발생한다. 이로 인한 잡음과 억측이 난무하고 낙심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사회정의와 순리적으로 되돌아온다.

불평에 매달리면 성격도 바뀌고 사람들의 시각도 변모하니 시간의 차이를 이겨내는 공무원이 되자고 권하고 싶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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