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소설가.

내 생애 가장 쓸쓸한 연말연시를 보냈다.

매일매일 뜨는 안전안내문자를 확인하면서 집안에 갇힌 채 조금씩 지쳐가는 중이었다. 자유로웠던 지난 일상이 새삼 그리워지면서 고질병 같은 우울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수도권에 사는 아이들은 집에 내려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팔순이 가까운 친정엄마 생신을 전화와 용돈으로 대신해야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크리스마스 특선영화 ‘코코’를 보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영화라서 별 기대 없이 보는데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고 말았다. 뮤지션을 꿈꾸는 멕시코 소년 미구엘이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의 기타에 손을 댔다가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멕시코에서는 ‘망자의 날(Dia de Muertos)’을 지킨다고 한다. 일 년에 한번 죽은 이들의 영혼이 찾아온다고 믿으며 거리 곳곳에는 주황빛 금잔화 꽃잎을 흩뿌려지고 해골로 분장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집집마다 촛불을 밝히고 세상을 떠난 가족을 위해 음식을 차리는 의식은 우리나라 제사와 비슷하다.

영화 ‘코코’에서는 ‘죽은 자의 세상’이 존재한다. 죽은 자의 세상에서는 이승의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만큼 죽은 자들이 부와 명성을 누린다. 죽고 난 후 모두에게 잊힌다는 건 영원히 지워지는 거다. 두 번째 죽음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망자들은 이승의 가족들에게 잊히지 않으려 절절한 마음을 보낸다. 죽음을 다룬 영화여서 자칫 우울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죽음을 통해 삶을 읽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핏줄로 이어진 가족의 소중함을 발견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족이 떠올랐다. 병석에 오래 계시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 멀리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 사방천지 흩어져 사는 내 형제들과 고향에서 홀로 지내는 노모…. 바쁘다고, 때론 사는 게 녹록치 않아 잊고 지냈던 그들이 어둔 밤 별빛처럼 반짝이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애틋했던 정 때문이다. 푸성귀뿐인 두레밥상에 머릴 맞대고서 오순도순 밥을 먹던 그 시절이 꿈인 듯 아득하다.

긴긴 겨울밤 허기에 잠 못 이루던 어린 것들을 지그시 내려다보던 아버지는 눈밭을 헤쳐 무를 뽑아와 돌돌 깎아주셨다. 눈밭에서 갓 뽑아온 무는 이가 시리도록 차면서도 달았다. 지금은 그때의 무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또, 바다에서 전어가 올라오는 철에는 우리 집 밥상에도 전어구이가 올라왔다. 아버지는 전어대가리를 떼 내어 몸통은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대가리는 당신 앞에 쌓아두고 하나씩 드셨다. 전어대가리가 별 맛이 없다는 걸 내가 부모가 되어서야 알았다. 지금도 전어구이를 보면 아버지 앞에 수북하던 전어대가리가 떠오른다. 핏줄이란 이런 소소한 추억조차도 아름답게 기억하는 관계가 아닐까.

지금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힘들고 막막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끝이 쉬이 보이지 않은 터널 속에 갇힌 듯 절망감에 몸을 떠는 이들도 있다. 이런 때일수록 가족이 의지고 위안이며 희망이다. 이혼과 별거, 핵가족화로 가족해체현상이 증가하는 우리사회에 ‘코코’는 한겨울 모닥불처럼 따뜻한 영화였다. 몸과 마음이 아프고 삶이 절망적일 때 떠오르는 얼굴은 핏줄이다. 비록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할 가족이 있다는 건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다.

영화 마지막에서 주인공 소년 미구엘과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마마코코가 함께 부르는 ‘날 기억해줘(Remember Me)’ 노랫말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음정도 정확치 않은 채 자꾸만 흥얼거리게 된다.

날 기억해줘/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넌 내 마음 속에 있으니까/ 우리의 노래는 끝나지 않을 거야 / 날 기억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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