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 산청문학회, 필봉문학회 회원.

‘영혼의 바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비 갠 후의 산자락에 걸려 머뭇거리는 모습일까, 솔솔 부는 봄바람이 데리고 오는 꽃향기일까, 저무는 노을을 업고 집으로 향하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에서 묻어나는 애잔한 숨소리일까, 늦은 가을 서걱거리는 억새풀들의 울음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자 이내 가슴에 스며드는 삶이란 무게가 두 어깨에 내린다.

지인의 부음이 날아왔다. 내가 속해 있는 단체의 회장을 맡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거만, 아직은 너무 젊은 나이였다. 어려움에 처한 주변사람들을 배려해주시던 마음 씀씀이며, 함께했던 순간 하나하나가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되었기에 부음이 믿어지지 않아 다시금 확인해야 했다. 지난해 출판기념회에서 만나 너무나 반가워했었는데, 아니야 잘못 전달됐을 거야. 머리를 가로저어봤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숨 쉬는 동안에는 걸어야 하고 마음이 상해 울적할 때도 살아있기에 발버둥을 친다. 때론 나를 내려놓지 못해 시린 가슴 안고 울기도 하고, 상처 입은 마음 다독이며 서럽게 흐느낄 때도 있다. 봄날 새싹 같은 앙증맞은 세월이 지나면 무성한 수풀이 천하를 휘두를 것 같았는데 어느새 이 나무 저 가지 잎들이 조락하고 있다. 외마디도 내지 못하고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에 젖는다.

자연의 섭리는 참 묘하다. 강변을 걷다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강물 위에 구름이 떠다니며 춤이라도 추는 듯 물결과 부딪친다. 강으로 마실 나온 것일까. 구름이 강물 위에 떠 있으니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마냥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기에 지나는 사람을 불러 세운다.

“여기 좀 보셔요. 구름이 소풍 왔나 봐요.”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마치 환상인양 착각을 일으킨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노을에 두 발을 담그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해진다. 내가 좋아하던 이웃들이 스쳐간다. 텃밭에 심은 갖가지 채소들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 다정히 내려놓으며, “야야, 이거 내가 농사지은 거다. 한번 먹어봐라.” 하시던 할머니 모습이 어저께 같은데 요양원 생활도 마지막 점을 찍으셨단다. 한 평 땅을 내어주기 싫어 원수가 된 이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미워하는 가족들, 산마루에 걸린 노을을 바라보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 텐데 말이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백발이 되어 휘날리는 갈대를 보며 손 내밀어본다. 서걱거리는 내 가슴처럼 손끝이 시리다. 저기 서면 끝인데 우리는 무얼 얻고자 그토록 아파하며 가슴이 미어지도록 통곡해야 하는가. 한 발자국만 물러서면 다 보이는데 말이다. 이른 새벽 내 것이라며 내어주지 못해 가슴을 찧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어쩌자고 그토록 미워하며 꾸역꾸역 토해내야만 했단 말인가. 창틈으로 들려오는 절규와 비명소리를 듣는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생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축복도 좌절도 영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왕성하던 풀잎에도 서리가 내리고 화려한 꽃들도 머잖아 시들어 뚝뚝 떨어져 내릴 날이 온다. 조용히 소리 내어 본다.

“우리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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