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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는 영원한 금수저’최광정 전 함양군 백전면장

딸·딸·딸·아들·딸 1남4녀 중 셋째
남동생 터를 팔았다고 사랑 받아

부유하고 가난한건 문제 안 된다
좌절과 고난을 털고 일어나면 돼

출산휴가 한 달도 다 사용 못해
1995년 세무직 신설하면서 전직

2015년 5급 승진 백전면장 발령
38년 세월 동안 최선 다해 소임

세상의 풍경 보는 계획 세웠지만
혼자서 떠나는 여행 공허함 느껴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노라 다짐

최광정 전 함양군 백전면장은 38년 공직생활 동안 “부유하고 가난한 건 문제가 안 된다. 좌절과 고난이 흙을 좀 묻히는 일이라면 털면 된다”며 민원 일선에서 군민을 위한 행정을 펼쳤다.

“인간은 유전자 뿐 아니라 스토리를 남긴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말이다. 이 글은 나의 스토리이면서 동시대 지방공무원 특히 여성공무원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소중했던 시절이 ‘있으나마나 한 시대’로 격하되지 않도록 기록하는 용기를 내었다.

1970~1980년대 지방공무원 중에는 흙수저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금수저라고 자부한다. 부모님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녀이다. 딸·딸·딸·아들·딸의 1남4녀 중 셋째다. 아들 낳으려 연달아 딸을 낳다가 내가 남동생에게 터를 팔았다고 부모님께 무척 사랑을 받았다. 부유하고 가난한 건 문제가 안 된다. 좌절과 고난이 흙을 좀 묻히는 일이라면 털면 되니까.

가정예절을 중요시하는 가문 장손의 셋째로 태어난 나는 바로 밑에 남동생이 있어 대학을 진학하지 못하고 1977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 서울 KBS방송국에 사회 첫 발을 디뎠다. 1979년 부친의 갑작스런 작고로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 품이 그리워져 1980년 3월 경남지방공무원 공개경쟁시험에 합격하여 그 해 8월 합천군 야로면에 첫 발령을 받아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고향 거창군을 거쳐 후에는 남편의 고향인 함양군으로 옮겨왔다.

2015년 11월 선진시책벤치마킹으로 떠난 오스트리아 할슈타드호수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처음에는 모든 업무가 새로웠지만 점차 선배들의 관심과 격려에 공무원의 자질을 갖추어 갔다. 그때는 모든 민원서류들은 수기로 작성하여 발급하였고, 신청 부수가 많을 때는 먹지를 넣어 손목이 아프도록 눌러써야 했다. 난방은 톱밥난로여서 연기와 먼지가 날려 사무실환경 관리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새마을 대청소날이면 집에서 사무실까지 자전거로 4㎞를 달려서 시내 대청소하고 돌아와 출근하기도 했던 일들이 추억으로 떠오른다.

1990년 거창읍사무소에서 주민등록전산화 기초 작업 입력 시에는 둘째 아이 임신 중에 함양에서 거창으로 출퇴근하면서 저녁 9시까지 입력하고 막차를 타고 퇴근하는 어려움을 견뎌냈다. 지금은 인구증가정책으로 출산휴가, 육아휴직 다양한 제도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그 시절에는 산아제한정책으로 아들 딸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슬로건으로 셋째 아이는 의료보험카드에 등재 할 수 없었다. 출산 휴가는 한 달 이었는데 사무실 형편상 출근하지 않으면 다른 직원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의례적으로 일주일 전에 출근하는 것으로 되어있어 출산 휴가를 자진 반납하기도 했다. 그 시절 산아제한정책을 조금만 유연하게 추진했더라면 지금의 인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1995년 법무사 등록세 횡령 사건이 전국에 발생하여 세무직을 신설하였고 군청에서 직접 업무를 시작하였다. 나는 세무직으로 전직(轉職)하여 군청으로 발령 받아 처음으로 시작되는 등록세 업무를 처리하였다. 지금은 전산프로그램으로 처리하지만 당시에는 수기고지서를 작성하였는데 법무사에서 등기서류를 하루에 수십 건씩 가져오면 밤을 새우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지금은 시간외근무수당도 있지만 그때는 시간외근무수당도 없었다.

1995년부터 세무업무 전산화작업이 시작되어 2007년 표준지방시스템을 운영하기까지 몇 년에 걸쳐 많은 고생은 하였지만 완성된 전산화 작업에 자부심을 느낀다. 세무업무를 맡으면서 연말의 도 세정평가에 세수증대, 체납세징수 등 직원들의 많은 노력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국·내외 밴치마킹을 얻은 큰 보람도 있었다.

2016년 6월 백전면 신청사 준공식에서 축하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2015년 5급으로 승진하여 다음 해에 백전면장으로 발령받아 면사무소 신청사 이전 준공식을 했다. 면민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청사 준공식 날 군수님을 비롯한 내외 귀빈 출향인들이 참석하여 면민들과 함께 축제 분위기로 흥이 났고, 민원서비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가슴 뿌듯했다.

이외에도 구(舊) 88고속도로 지방도 이전, 소재지권 개발사업, 벚꽃축제, 오미자축제 등을 추진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면민들의 협조로 무사히 수행하였다.

특히 백전50리 벚꽃 길은 1987년 이 고향출신인 고 박병헌 제일거류민단장이 벚꽃나무를 기증하여 수동에서 병곡·백전에 이르기까지 조성되었다. 코로나가 오기 전 2019년 제17회 축제까지 개최된 50리 벚꽃길 축제는 소문난 하동 쌍계사나 구례 벚꽃 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자랑하고 싶다. 다른 지역과 날씨차이로 하동·구례 벚꽃이 지면 백전은 바로 따라 피는데 날씨가 추워 꽃이 피지 않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꽃봉오리 상태를 점검하면서 가슴 조이던 일도 생각난다.

함양군의 고소득 작물로 백전면은 곶감을 많이 생산하는데 기상상태가 좋지 않은 해는 농가들이 잠도 자지 않고 시간별로 관리해서 일등 곶감을 생산하는 농가들의 열정에 감동하였다. 서울 청계천 곶감축제 시 신동진 향우회장님이 우리 면에서 출시한 곶감을 전량구매해서 곶감농가에게 큰 도움을 준 고마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2017년 10월 함양문화예술회관 가을콘서트 공연 후 출연진과 기념촬영.

공직직생활의 마지막 근무지는 문화시설사업소이다. 공연 입장권 예매하러 추운 겨울 날씨에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열정적인 문화수준에 감동을 받았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공연하는 천원의 행복음악회는 천원으로 각 장르의 공연을 관람 할 수 있어 군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였다. 군민들의 복지관프로그램 참여로 수준 높은 작품 전시회와 발표회 등으로 어느 시군에 뒤지지 않는 문화생활을 즐겼다. 박물관에는 애향심을 갖고 귀중한 각종 유물을 기증해주는 분들이 많아 함양의 역사보존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38년이란 긴 세월 동안 최선을 다하여 일했고, 협조해주신 군민들과 동료 직원들에게 감사하지만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다시 돌아 갈수 없음이다. 퇴직자가 꿈꾸는 세상의 여러 풍경을 보기 위해 여행계획을 세웠지만 남편이 혼자 먼저 돌아올 수 없는 긴 여행을 떠나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음을 어쩌랴.

퇴직 2년차 지난해에는 먼저 퇴직한 동서랑 고사리 밭 관리를 하여 가족들이랑 나눠먹는 재미와 야채도 가꾸어 먹거리를 준비하는 쏠쏠한 재미도 느껴 보았다. 남은 여생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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