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우 본지 회장.

3일이 입춘이었고, 12일이 설날이다. 코로나19로 위축된 사람들도 입춘을 맞아 올해는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는 형통의 한 해를 기원하는 뜻에서 입춘대길(立春大吉)이란 입춘방을 내다붙인 사람이 많다.

절기는 대충 보름 간격으로 한 달에 두 번씩 든다. 2021년을 보면 1월 5일이 소한(小寒)이고 20일이 대한(大寒)이다. 2월이면 3일이 입춘이고, 12일이 설날이며, 18일이 우수(雨水)가 되며, 3월 5일이 경칩(驚蟄)이 된다. 음력은 달의 운행을 기본으로 태양력의 원리를 참작하다보니 절기가 드는데 상당히 들쭉날쭉하다.

입춘이 어떤 해는 섣달에 들고 때로는 음력 정초에 드는 것이다. 올해는 섣달에 들었다. 그 입춘이 명절로 여겨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 년 동안 해가 가장 짧기는 동지(冬至)때이지만 지열(地熱)관계가 있어 한창 추운 것은 그 다음에 오는 소한이다. ‘따뜻한 소한 없고 추운 대한 없다’ 하듯이 소한 추위를 가장 매섭다고들 하는데, 이는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어서 그렇다’고들 한다.

이렇게 추운 고비를 넘기고 나서 첫 번째 맞는 절기가 입춘이다. 봄의 밝은 기운이 온통 복을 모아다 안겨주는 것 같은 기분은 인정에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입춘이라 해서 별다른 행사는 없고, 복이 찾아들 것 같은 상서로운 글귀를 종이에 크게 쓴 입춘서를 대문에 여봐란 듯이 내다 붙이는 것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건양다경(建陽多慶) 아니면 용윤오복(龍輪五福)·호축삼재(虎逐三災) 등이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런 일이 많이 생긴다거나 용은 오복을 실어들이고, 호랑이는 삼재를 물리친다 하는 것이니 봄을 맞는 희망에 찬 심정을 알 만하다.

그런데 이 입춘서는 꼭 한창 자라는 씩씩한 어린이의 솜씨라야 된다고 한다. 제아무리 잘 썼더라도 한물간 어른이나 시들어져 가는 늙은이 글씨라면 봄을 맞아들이는 힘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제아무리 명필이라도 그리고 아버지가 한다하는 문장이라도 그것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없다면 희망에 찬 입춘 날 그의 문전은 으스스하게 찬바람이 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온갖 정성을 쏟아 일구어낸 가문이라도 그것을 이어갈 자손이 없다면 여름처럼 무성했다가 가을처럼 시든다.

반면 홀아비로 짚신장사 하던 할아버지, 등짐장사 하던 아버지가 나뭇가지로 엮은 삽짝 문을 뜯고 의젓한 사랑채에 널쭉 대문 해 달고 그 아들 손으로 입춘을 써서 덩그렇게 달았을 때, 대문이 좁게 느낄 만큼 복이 들어오는 기분이 나지 않겠는가. 아이도 그렇지, 어른들의 성원을 받으며 써낸 글씨가 나붙고, 칭찬과 기대 속에 자라게 되면 용기가 치솟아 오를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입춘 뒤로 보름이 지나면 우수, 다시 보름을 더 보내면 경칩(驚蟄)이 된다. 땅 속에 잠들었던 개구리의 입이 떨어진다는 절기다. 우수 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 사방으로 봄빛이 완연해진다.

설은 일 년 중 제일가는 명절이다. 설은 새롭다, 익숙하지 않다의 뜻으로 해가 막 바뀌어 새롭다는 뜻이다. 설날은 모두가 새 옷으로 갈아입어 기분을 새롭게 하는데 이것을 설빔이라고 한다. 설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올려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면서 새롭게 출발할 마음을 먹는다.

차례(茶禮)란 정식 식사대접은 못되고 그저 차라도 한잔 올린다는 식의 이름이요, 실제 절차도 그만큼 간소하다. 그러나 조상을 섬기려는 정성에 차등이 있을 리 없다. 세배를 하는데 이것은 ‘새해에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뜻이 된다. 왜냐하면 섣달그믐에 밤늦게라도 ‘묵은세배’를 하는 것을 ‘감사의 인사’이기 때문이다. 차례를 올린 후 부모님, 조부모님에게 세배를 올리고 복을 빌고 덕담을 듣는다. 이웃에 사는 가까운 종조부 등 어른들에게도 세배를 올린다.

세배를 통해서 집안의 위계질서가 잡히고 인성교육을 할 수 있다. 이날 특식인 떡국을 비롯한 설음식을 먹고 조상 산소에 성묘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친다. 희고 깨끗한 쌀을 쪄서 만든 떡은 우리 고유의 신성한 뜻을 지닌 음식이라, 한해의 첫날을 그만큼 소중하게 기념하려는 뜻이기도 하다. 이튿날부터 일가들과 동네 타성 어른들에게도 세배를 올렸는데 경험과 지혜가 많은 어른을 공경하는 미풍양속인데 세태 따라 지금은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쥐 죽는 듯이 경자년을 보내고 우렁찬 소울음소리가 들리는 신축년이다. 입춘과 설날이 연달아 이어지는 올 설날을 계기로 ‘부족함이 없는 밝은 새해, 질병도 없는 밝은 새해’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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