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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림에 관한 소고(小考)
임윤교 수필가.

문을 두드린다. 두드린다는 것은, 소통하려는 표현이다.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다가 두드리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절실해서 탈출구를 찾는 것이다. 누구나 낯선 문 앞에 서면 두렵다. 문 뒤의 반응을 모르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두드린다면 찾고자 하는 답에 가까이 가지 않을까. 한 줄기 빛을 찾아가는 일은 희망의 첫걸음을 떼는 일이다. 그 시점이 바로 구원의 두드림일 수 있다.

누구나 굴곡은 있게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참 많은 문을 드나들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기도 했고 광야 같은 세월, 모진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기도 했다. 한마디로 실패와 도전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삶의 궤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힘든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 인생은 결단과 부단한 노력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짓궂은 개구쟁이들이 자라면 사회 적응력이 높다고 한다. 어른이 되어도 호기심과 왕성한 의욕으로 자기 역할을 잘해 간다는 이야기다. 개구쟁이인 자녀를 부디 꾸짖지 마시길….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기에 언젠가 응답처럼 문이 열릴 수밖에 없다. 꿈꾸는 사람은 열정이 있기에 그럴 수 있다. 누구나 지치지 않고 자신이 행복해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꿈을 꾸는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일찍 발견해 그 길을 간다. 또 가족이나 누군가에 의해 재능이 발견되어 소질을 살려가면 더할 나위 없다. 늦도록 재주나 감흥이 생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 널려있는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렸으면 한다. 선택조차 지금은 실력이 되는 세상이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을 듣는다. 1악장 첫머리 음은 두드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베토벤은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라고 했다. 이는 타고난 운명일 수도 있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운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의 문 앞에서 최선의 경주를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

생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인간은 안간힘을 다한다. 애증과 거짓이, 성공과 실패가 난무하는 질펀한 이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

탄생과 죽음까지가 한 생애이지만, 어쩌면 날마다 죽고 날마다 태어나는 부활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이 질긴 삶의 문을 두드리고 열며 간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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