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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는 없다
김순이 수필가, 소나무5길문학회.

○○은행 현금인출기 앞은 월말이라 그런지 복잡했다. 공과금을 내기 위해 줄을 섰다가 너무 오래 기다린 탓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 짜증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다. 일을 보고 나오려는 순간 벽 쪽 몰딩 부분에 신사임당이 그려진 누런 지폐 한 장이 묘기를 부리듯 딱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순간 심장이 방망이질 해댔다. 누가 볼세라 얼른 집어 들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쩌지, 하필이면 은행 안에서 돈을 줍다니, 은행창구에 맡길까, 아니야. 맡긴다 한들 주인을 찾아준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냥 갈까 맡길까 두 마음이 파도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싸이고 있었다.

언젠가 모 식육식당에서 고기 값을 치르지 않고 고기를 배불리 구워 먹었다는 K의 말이 떠올랐다. 그 식육식당은 카운터에서 먼저 고기값을 계산하고 고기를 구워 먹는 곳이다. 그날은 무슨 마음이었는지 K는 당연히 남편이 계산했을 거라 생각하고 고기가 담긴 접시를 들고 와서 먹었다. 고기접시에 가격표가 붙어있었는데도 종업원들이 말없이 고기를 구워주었기 때문에 계산되지 않은 고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K는 집으로 돌아와서야 값을 치르지 않고 고기를 먹고 온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고기값을 지불하러 가기에는 식당과 거리가 너무 멀고 또 이미 고기를 다 먹어버린 뒤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일을 겪으면 누구라도 자신처럼 행동했을 거라며 K는 애써 그 일을 정당화해버렸다.

K는 며칠 뒤 재래시장에 갔다가 비슷한 일을 다시 겪었다. 생선을 파는 노점상 앞을 지나다가 ‘두 마리에 오천원하는 고등어가 세 마리에 오천원이요!’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고등어를 샀다. 노점상 주변은 사람들로 북새통이었고 생선 파는 아줌마는 고등어를 다듬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K가 거스름돈을 받아들었을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비를 맞으며 집까지 뛰어온 K는 집 앞에 도착해서야 손을 펴보고는 오천원이 아니라 만원짜리가 쥐어져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K는 지난번 식육식당에서와는 다르게 겁이 났다고 한다. 두 번씩이나 이런 일이 생기고 보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군에 있는 아들이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했다는 연락을 받은 터였다. 아들이 다쳤다는 연락을 받고는 혹시라도 전에 식육식당에서 고기 값을 치르지 않아 그 대가를 치르는 건 아닌지 후회를 하던 터였다. 무엇보다 K는 차가운 빗속에서 고등어를 한 마리라도 더 팔려고 허둥댈 아줌마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K는 비를 맞으며 다시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고기 상자를 치우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노점상 아줌마에게 다가가 거스름돈을 잘못 받았다며 오천원을 돌려드렸다. 온몸이 비에 흠뻑 젖은 채로 고맙다고 고개 숙여 인사하던 생선가게 아줌마의 얼굴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비록 고의로 저지른 실수는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손해를 끼친 셈이었고, 그런 사실을 모른 척 지나친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면서, K는 아들이 군복무 중에 다쳐서 힘들어하는 것이 꼭 자기의 잘못인 듯 미안하다고 했다.

불가에 인연과보(因緣果報)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말이다.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또한 세상만사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좋은 결과로 혹은 나쁜 결과로 여러 가지 방향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잠깐이나마 내적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어!’

그리고는 빳빳한 신사임당을 받쳐 들고 은행창구로 향했다.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환한 미소로 숨기고서….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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