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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춰진 ‘천년고찰’… 목탁만이 불공은 아니다<산사를 찾아서> ①거창 송계사(松溪寺)

백두대간 중심부에 둘러싸여
덕유산에 자리 잡은 ‘송계사’
652년 원효·의상대사 창건한
영취사 5개 암자 중에 한 곳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전소
1969년 중창해 지금에 이르러
2년 전 비로자나 부처님 모셔

푸른산과 나무밖에 보이지 않아
삼성각 올라서면 한 눈에 전경
비로소 산중임을 실감하게 돼
앞산 수리덤 지혜로움을 상징

거창 송계사는 덕유산 남쪽기슭 수유동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산중이 어떤 곳인지 실감하게 된다. <사진: 김정중 거창군청 주무관>
서부경남 지역은 산과 사찰이 어우러져 명승지로 유명한 곳이 많다. 산사는 숲과 자연생태의 청정공간이며 전통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동시에 당대 최고의 건축과 회화과 결집하면서 하나의 미술관이고 박물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지리산·덕유산·가야산이 자리 잡은 거창·함양·산청·합천은 다른 지역보다 역사와 전통 있는 고찰이 많은 곳이다. 자연과 내가 물아일체 되는 산사를 찾아 명소들을 소개하고 의미를 담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덕유산 남쪽기슭 수유동에 자리 잡은 송계사(松溪寺)는 숲길이 아름답다. 계곡을 따라 10분 가까이 걷는 길은 산사가 가진 고즈넉함으로 저절로 명상에 이끌리게 된다. 차를 타고 절 앞까지도 갈 수 있지만, 송계사가 가진 정취를 느끼려면 덕유산국립공원 남덕유분소 앞에 주차를 하고 걷는 것이 좋다. 길을 따라 500m만 걸어가면 바로 송계사가 보인다.

송계사가 위치한 덕유산은 1975년 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 등 영호남을 아우르는 4개 군에 걸쳐있다. 동쪽의 가야산, 서쪽의 내장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계룡산과 속리산 등으로 둘러싸여 백두대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중간쯤 기슭에 송계사가 자리 잡았다.

송계사계곡은 덕유산의 무성한 숲과 절벽, 그리고 계류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그 길이만 해도 16㎞에 이른다. 골짜기가 너무 깊어 두문동계곡이라고도 한다. 곳곳에 폭포와 소(沼)가 형성되어 있다.

무애스님이 송계사의 발자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송계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이 입구에 있는 부도이다. 송계사 부도는 기단부 지석대에 강희 57년(1718)에 만들어 세웠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거창지역에 남아 있는 유일한 조선시대 부도이다. 원래는 송계사의 전신인 옛 영취사(靈鷲寺)에 따랐던 내원암 자리에 있던 부도로서, 내원암지부도라고도 불린다. 송계사 입구 개울가에 위치한 부도를 2009년 8월 반야스님이 이곳으로 옮겼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절 입구 30m앞에 있는 해우소이다. 300~4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름다리 소나무가 해우소(解憂所) 앞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들어오는 입구도 한 폭의 그림마냥 아름다워 마음마저 넉넉해진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전나무와 조용한 계곡은 고요한 적막만이 감돈다.

송계사는 원효·의상대사가 652년(진덕여왕 6) 영취사를 창건한 뒤 5개의 부속암자를 세우면서 송계암이라고 이름 지어 창건했다. 그 뒤 많은 고승들이 이 절에서 배출됐다.

임진왜란 때 영취사를 비롯하여 5개의 암자가 모두 불탄 뒤 폐허로 있다가 숙종 때 진명(眞溟)스님이 송계암만을 중건했다. 6·25전쟁 때 다시 전소된 것을 1969년 중창했다. 1995년에 원정(圓靜) 스님이 1969년 중창 때 건립한 영취루가 기울어진 것을 해체하여 다시 짓고 문각(門閣)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극락보전과 요사채. <사진: 서부경남신문>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대웅전·문각(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유물로는 아미타여래좌상·소종(小鐘)·탱화 3점이 있다.

송계사 주지스님은 반야스님이다.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한 스님은 해인사를 비롯해 진주시 소재 성전암, 연화사, 응석사 등에서 28년간의 젊은 시절을 보낸 뒤 2008년 8월 송계사의 주지로 부임했다. 이때 무애스님도 함께 송계사로 이적해 13년간 동반으로 지내고 있다.

송계사 대웅전. <사진: 서부경남신문>

송계사는 아담한 절이다. 마당에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있고 중앙에는 극락보전이 위치해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온통 산이요, 나무들뿐이다. 마치 시간이 멈춰진 듯, 정적만이 가득할 뿐이다. 깊은 덕유산 기슭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느끼는 순간이다.

극락보전에서 무애스님께 차를 공양 받았다. 스님은 “눈앞에 봉긋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수리덤으로 영취봉이라고도 한다”며 “송계사의 전신인 영취사가 산 아래 있어서 영취봉이다”고 말했다. 영취봉, 수리덤 등의 이름은 불교에서 지혜로움을 상징하는 금시조와 맥락을 같이하며, 바위봉우리가 뾰족하여 사람들이 근접할 수 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송계사 무애스님과 본지 허광 이사장이 차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극락보전은 정면 5칸으로 2014년 기존에 있던 건물을 확장해 중수했다. 이곳에는 108부처님을 모시고 있는데 확 트인 남쪽을 향해 있다. 부처님 한분 한분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켜켜이 쌓여 있는 셈이다. 송계사는 거창군 관내와 북상면을 중심으로 서울·부산·마산에서 약 600세대의 신도가 함께 하고 있다.

무애스님은 문각에 계신 비로자나 부처님에 대한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400년 동안 땅속에서 묻혀있던 부처님을 2년 전, 송계사로 모셔 봉안하고 있다는 것. 비로자나 부처님은 ‘화엄경’의 주불로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에 진신(眞身) 또는 법신(法身)이라 부른다. 부처님의 광명이 어디에나 비춘다는 의미다.

문각에 모셔진 비로자나 부처님. <사진: 서부경남신문>

이곳의 절경인 삼성각을 향해 올라갈 참이었다. 삼성각은 대웅전 뒤편 오솔길로 이어져 50미터 가량 걸어가야 했다. 송계사에 가면 꼭 잊지 않고 들려야할 곳이 삼성각이다. 이곳에 올라야 고요하고 적막한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른편 멀리 수리덤 봉우리가 보이고, 사찰이 앉은 자리를 한 눈에 볼 수 있어서이다. 앞은 확 터여 있고, 마을과도 떨어져 고요하기만 하다.

삼성각 주변에는 200~300년은 됨직한 소나무가 곳곳에 서 있다. 길을 다 오르면 삼성각보다 먼저 하늘을 향해서가 아니라 가로로 휘어 있는 소나무가 반갑게 맞아준다. 길게 휘어져 있는 소나무는 이색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혀 낯설지 않고 주변과도 잘 어울려 마치 문지기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정면을 보면, 산중이 어떤 곳인지 실감하게 된다.

송계사의 절경인 삼성각 올라가는 길. <사진: 서부경남신문>

내려오는 길에 벤치라도 있으면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느끼고 듣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묵상에 잠길 수 있을 텐데, 올라갔다 바로 내려와야 하는 그 점은 아쉽다. 그냥 지나가기에는 이 광경이 몹시도 아까운 연유이기도 하다. 푸른산이 눈앞에 맞닿은 그 순간이 어쩌면 해탈의 경지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주지스님인 반야스님은 요즘 출타하실 때가 많다. 초하루가 아니면 뵙기가 힘들다. 그래서 주지스님은 뵙지 못했지만 ‘목탁만이 불공드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반야스님의 말씀이 계속 떠오른다. “하루에 일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는 옛 선현들의 말씀처럼 실천하고 생활하는 불교 포교에 힘쓰겠다. 부처님의 실천행 원력을 이행한다며 세상이 좀 더 밝아지지 않겠느냐”는 말씀이 귓전을 울린다. 종교가 생활이 되고, 실천이 될 때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마음 속 가득 청량함이 채워졌다.

허광 본지 이사장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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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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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형묵 2021-03-26 14:34:06

    좋은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송계사를 이렇게 소개해주시니 더 자주 가보고 싶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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