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희 산청군 단성면 거주.

아련한 기억 속에 어릴 적 날들을 꺼내 보려한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그때 우리 마을은 100여 호가 되는 농촌마을이었다. 집집마다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대부분의 가정에서 소 돼지 닭 등을 키웠기에 아이들은 학교를 파하면 소 먹이러 가는 것이 하루일과였다.

소를 먹이는 장소는 인근 야산이었다. 그 당시에는 모든 가정에서 난방과 연료를 나무로 해결하는 바람에 인가의 산들은 벌거벗은 민둥산이었다. 동네아이들이 소를 몰고 산 초입에 풀어 놓으면 소들은 풀을 뜯으며 산을 올랐다. 우리는 소들이 어느 쪽으로 가는지 가끔씩 확인하며 신나게 놀았다. 만약에 소들이 인근 논밭으로 가서 농작물을 뜯어먹었다가는 꾸지람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래들과 소먹이며 놀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하다. 깔래(공기놀이),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사방치기, 오재미, 술래잡기, 얼음땡, 차치기 등 이름도 희미해진 놀이들이다.

그중에 우리는 깔래를 많이 하며 놀았다. 깔래는 돌멩이 5개로 하는 것과 돌멩이를 최대한 많이 가지고 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공깃돌 5개로 하는 놀이는 점수를 많이 내면 이기고, 공깃돌을 많이 흩어놓고 하는 건 돌을 많이 확보하면 이긴다. 신작로에 있는 그 많은 돌멩이를 치마에 주워 담아 와서 하다보면 손톱이 닳기도 했다. 땅따먹기는 돌멩이를 손가락으로 튕겨서 튕겨나간 거리만큼 뼘으로 재고, 그 뼘만큼 둥근 원 안의 땅을 한 뼘 두 뼘 확보해서 가장 많이 확보한 사람이 이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놀이들을 하다보면 금방 해는 저문다.

남자애들은 동생들한테 자기네 소를 보라하고 연못에 가서 멱 감고 실컷 놀았다. 그러다가 누구네 집 소가 힘이 센 지 소싸움을 붙여서 쇠뿔이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개구리나 물고기를 잡아 구워먹고, 콩 보리 밀도 구워서 같이 먹었다. 한번은 나한테 소를 보라고 해서 못한다고 했더니 주먹으로 때렸다. 너무 억울한 마음에 우리 소를 나무에 묶어두고 아버지한테 일러주러 간다며 울면서 산을 내려왔다. 중간쯤 내려왔을 때 분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져 다시 산으로 올라간 적이 있다. 그날은 우리 소도 배불리 먹지 못해 억울한 날이었다.

그렇게 뛰노는 사이 소들이 풀을 뜯으며 산등성이까지 올라가면 해는 뉘엿뉘엿 지고 집에 갈 채비를 한다. 소고삐를 걸리지 않게 뿔에 둘둘 감아두면 소들은 길을 알아 외양간까지 찾아갔다. 그땐 소들도 뛰고 우리도 같이 뛰었는데 검정고무신을 꿰신은 맨발이 미끄러운 흙탕물에 벗겨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고 종아리가 긁혀 상처도 났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펄쩍펄쩍 민둥산을 뛰어내려올 때 나는 듯 짜릿한 기분은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있다.

내 눈에는 우리집 소가 제일 잘 생겼고 제일 힘이 세보였다. 멋지고 잘 생긴 우리집 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그 송아지하고 장난을 쳤다. 송아지도 장난인줄 알고 좋아했다. 송아지가 중간 소가 되어 팔려가는 날이면 어미소는 그 큰 눈에 눈물을 담아 밤새 소리 내어 울고 또 며칠을 울었다. 어미소 울음소리를 들으며 같이 슬퍼했다.

그때 우리가 뛰놀던 민둥산은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울창한 숲으로 변했다. 어릴 적 펄펄 뛰면서 놀던 그 민둥산이 너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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