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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시각으로 우리의 무대 이미지 이해하기

서부경남신문
승인 2005.09.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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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레베스레움 무대미술전'

거창국제연극제(8.1∼17) 기간 동안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독일 무대미술 전공 학생들의 '베를린 레베스레움 무대미술전'이 열렸다. 이 무대미술전은 "독일의 입장에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것으로 소설과 사진 속에서 보여진 한국과 직접 와서 부딪히는 한국에서의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 한국인들과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마련된 장으로 무대 전문가들의 호평을 얻었다. 이 기획전은 이수은씨의 도움을 얻었고, <한국연극> 9월호에 게재된 글을 계명대 김중효 교수의 허락을 받아 다시 싣는다. <편집자주>

무대미술비평

낯익은 것들이 생소하게 느껴질 때 뇌의 스멀거림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머리 뚜껑을 열고 긁을 수가 없으니 손가락부터 오그라든다. 베를린 예술 대학교의 무대미술 전공 학생들이 마련한 '베를린 레베스레움 무대미술전'(거창국제연극제 전시장 8.1∼17)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들의 아이디어와 표현방식 때문이라기보다 우리의 희곡, 소설, 시나리오, 신화 등 낯익은 내용들을 전혀 낯설게 표현하는 사고의 차이 때문이었다.

이들이 전시한 작품들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수잔느 야곱 Susanne Jakob) 디자인과 <금시조> (메를레 피륵 Merle Vierck), 함세덕의 <동승> (에밀리 라우만스 Emily Laumanns/마이케 스토르프 Maike Storf), 최인호의 <타인의 방> (니콜라 민센 Nicola Minssen), 배수아의 <검은 늑대들의 무리> (레나 파이 Lena Fay), 임철우의 <붉은 방> (레베카 도언헤게 Rebekka Domhege), 김주영의 <고기잡이는 갈대를 꺽지 않는다> (야냐 핀데킬레 Jana Findeklee),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 (이수은), 박철수의 <301/302> (유딧 필립 Judith Fhilipp), 그리고 <연오랑 세오녀> (안겔리키 콘티 Angeliki Konti), <심청전> (미리암 그림 Miriam Grimm) 등 총 11편이었다.

이들 중에서 <동승>, <301/302>, <심청전>이 눈 여겨 볼만했다. 주제해석과 공간활용, 색깔의 사용 등 무대언어를 이채롭게 적용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이방인의 시각과 사고의 접근으로 인상이 깊었기 때문이다. <검은 늑대들의 무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금시조>, <타인의 방>도 나름대로 해석한 주제를 바탕으로 독특한 색깔과 분위기로 작품을 재단하고 덧칠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동승

라우만스와 스토르프는 작품의 중심인물인,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사미승 도념의 성격분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듯하다. 어머니의 부재에 대한 외로움과 그리움, 절 밖의 세상에 대한 상상과 동경 등 복잡한 심경을 부각시킨다. 그러한 심경은 혼란과 혼돈으로 비쳐지며, 밀짚으로 무장한 모습의 도념으로 묘사된다. 자신의 운명에 대항하기 위한 의지는 마치 아프리카의 샤먼이나 오지의 전사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반면에 도념의 세속적 상념의 끈을 끊으려는 주지와 자식 잃은 미망인의 모습은 찾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디자이너들의 주관적 직관에 의해 작품을 이미지들을 편재시킨 경향이 강한 탓일 것이다. 비록 자기존재에 대한 의문, 구조화된 권위(권력), 전통과 충돌이라는 이미지를 추구하지만, 전체 레이아웃의 분위기에는 여성과 외로움, 그리고 약간의 몽환적 이미지가 도드라질 뿐이다.

301/302

아파트라는 거주형태 안에서 여성의 정체성과 역할, 그리고 이웃 간의 관계를 다루며, 섹스와 음식에 관한 담론이 핵심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유딧 필립은 유난히 붉은 색상에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다. 어쩌면 영화의 인육요리에서 강한 자극을 받은 탓인지 모르지만, 온통 붉은 색의 사진으로 도배를 했다. 붉은 색 옷차림의 301이 식칼을 들고 수박을 난도질한 후, 선글라스를 쓴 302에게 '쑤셔 넣는' 장면이라든가, 붉은 색 권투 글로브를 끼고 권총을 든 상대와 맞대결하는 모습에 시선이 쏠린다.

어릴 적 의붓아버지로부터 강간당한 기억으로 신경성 식욕부진증에 걸린 미혼녀(302)와 음식으로 남편에게 정성을 다하다 이혼당한 기혼녀(301), 이들은 과거의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도피하려거나, 남편으로부터 비롯된 현재의 생채기에서 벗어나려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벗어날 수 있는 통로는 없어 보인다. 개별 존재들이 끈으로 연결된 무대모형에는 한 개의 통로만 있다. 규브 안에서 존재들은 각자의 일만을 할 뿐 서로의 소통은 끈처럼 거의 엉켜있다. 에둘러 말하지 않아도 시각적으로 그 의도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사실 301과 302는 '외로움'이라는 교집합으로 얽혀 있는데, 붉은색에 의한 괴로움과 괴기함이 너무 튄다. 섹스와 음식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두 여자의 소외는 아쉽게도 필립의 디자인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심청전

동양의 문화를 유럽인의 입맛으로 '버무린' 또 다른 작품이다. 봉사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팔리는 심청의 이야기는 안네 유츠라는 무용가의 퍼포먼스로 재생되었다. 디자이어 미리암은 심청을 '유교사상이 고착된 가족구조의 모범적인 딸'로 해석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심청의 효심은 '당시 사회가 권고하는 부모 자식 간의 윤리도덕에 채워진 의무'로 비춰졌는가보다. 그러한 결과에 의해 우리의 고대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당수는 욕조로 변하고, 심청은 원피스를 입은 채 수면제를 가득 입에 물고 타일 위에 누워버렸다.

이상과 같이 이방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이야기는 이질적인 모습으로 시각화되었다. 거칠게 집약하자면,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읽어낼 '지식의 부족'과 '통로의 부재'에 기인한 탓으로 주제 접근이 다소 산만하고 전달하려는 이슈가 분명치 않아 이미지의 신뢰성은 미흡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뚱하고 기발한 묘사는 디자인의 다양함을 경험케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어쨌든 종래 흔치않은 이러한 무대미술전은 자주 개최되어야 한다. 우리 무대미술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일종의 전진(前震)이 되기 때문이다.

글. 김중효(무대미술가 · 계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