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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월정 너럭바위에 앉아 ‘바람을 읊고 달을 희롱하다’안의삼동 ‘팔담팔정(八潭八亭)’

영남 제일의 동천 ‘안의삼동’
화림동·심진동·원학동계곡 따라
선인들의 발자취가 즐비한 곳

물이 비단처럼 아름다운 금천
서상 저수지 준공되면서
진흙과 물때로 물길 망가져

시와 문을 주고받으며 우리나라 선비문화를 대표하는 정자 농월정. 이 정자는 안의삼동(安義三洞)의 ‘팔담팔정(八潭八亭)’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자연의 미를 갖춘 화림동(花林洞) 계곡에서, 달을 담아내고 있는 작은 웅덩이를 품고 있는 월연암을 내려다보며 소나무 숲을 등지고 세워졌다. <사진: 함양군 사진공모전>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 하지만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름 안의삼동(安義三洞). 햇빛에 바래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된 곳이다.

안의삼동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유람의 최고로 꼽았던 곳으로 화림동(花林洞), 심진동(尋眞洞), 원학동(猿鶴洞)을 일컫는 말이다. 이곳은 팔담팔정(八潭八亭)의 화려한 미를 갖추고 있으며, 백두대간 남덕유가 넘치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해 솟구친 산들과 깊게 파인 계곡으로 우리나라 정자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다.

화림동계곡은 안의면소재지 광풍루·제월당에서 서하면 봉전을 거쳐 서상면까지 20㎞의 경치 좋은 골짜기로 정자문화의 메카로 불리는 곳답게 농월정,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달빛은 맑은 물결에 일렁이며 정자에 기댄 선비와 농을 주고받는 곳이다.

심진동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라 하여 심진동으로 불렀다. 심원정과 15m 높이에서 떨어지는 용추폭포는 절경을 자랑한다. 용추사의 전신인 장수사는 해인사 창건(802년)보다 315년 앞서는 고찰로 지금은 일주문만 남아있다.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가 세상을 숨어 지냈다는 은신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학동계곡의 중심지는 지난 2008년 명승으로 지정된 수승대다. 암반 위를 흐르는 계류와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관수루와 요수정, 거북바위가 위치한다. 퇴계 이황 선생이 이곳의 풍경을 예찬했다. 수승대 위쪽으로 올라가면 갈계 숲이 자리하며, 분설담과 사선대의 경치도 절경이다. 원학동은 ‘정감록’에 소개된 피난 보신의 땅으로 ‘금빛 원숭이가 뛰놀던 산’이라는 의미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서일까. 안의삼동의 이름은 찾았지만, 그동안 팔담팔정의 위치는 연구자들에 따라 위치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다. 그런데 최근 향토사학자 이창규 전 안의면장과 백원택 안의향교 원임 두 분의 노고로 팔담팔정을 고증하게 되면서 빛을 보게 됐다.

코로나19가 기세를 부리는 올 여름, 비대면 여행지를 찾는다면 안의삼동의 팔담팔정을 찾아 한 여름 더위를 씻기에는 제격이다. 물과 어우러진 멋진 풍경 속에서 너럭바위에 앉아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쉬어가기에 그지없이 좋은 곳이다.

안의삼동 화림동계곡의 용추폭포. <사진: 함양군 사진공모전>

물길 따라 이어지는 선인들 탐방길 ‘이곳이 신선놀음’

함양과 거창에 거쳐 이어진
팔담팔정 제대로 알려져서
누각과 정자문화의 고장 살려야

용암정과 군자정 빠져 아쉬워
루(樓)와 강선대·사선대 8경 필요
새로운 관광문화루트 만들어지길

여름 한 낮에 계곡을 찾아 바람과 물소리를 들으며 한낮의 휴식을 취하고 있는 피서객들. 한 시절 나대며 살던 고관대작도, 은둔해 유유자적하던 선비들이 자연을 즐기던 곳이다. 선인들의 발자취가 즐비한 곳에 발을 담그니 이곳이 신선세계가 아닌가 한다. 사진은 용추사 일주문 옆 계곡 모습. <사진: 서부경남신문>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중 하나인 ‘안의삼동(安義三洞)’. 조선시대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으로 불렸던 안의삼동은 ‘안음삼동(安陰三洞)’에서 나온 말이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은 조선시대는 안의현이었고, 1914년 3월 1일까지는 안의군이었다. 일제강점기 강제적인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의군이 폐지되면서, 화림동·심진동은 함양군 안의면·서하면에, 원학동은 거창군 마리면·위천면·북상면에 속하게 됐다.

안의군이 폐지된 이유는 1597년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5일간 정유재란 당시 황석산성 전투에서 타격을 입은 일본이 부끄러운 역사적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한다. ‘백성의 전쟁’으로 불리는 황석산성 전투에는 안음·함양·거창·산음·합천·삼가·초계 인근 7개 군현의 일반백성과 부녀자들이 총포로 무장한 왜군의 정예부대 7만5300여명에 맞서 싸웠다.

안의삼동 가운데 가장 아쉬운 곳은 화림동이다. 2007년 서상저수지가 준공되면서 흘러내린 진흙으로 인해 돌과 바위에 물때가 끼면서 눈요기 계곡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남덕유산 참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물이 깨끗하지 않다고 입소문이 난 것이다. 너럭바위를 흐르는 청류에 발을 담그면 더위도 저만큼 물러나 앉고 시리도록 맑은 계곡의 물줄기를 가슴속으로 흐르는 것을 느끼며, 선비들의 풍류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 계곡이었기에 더욱 아쉬움이 많다.

화림동계곡은 안의에서 서상까지 곡선으로 굽이굽이 이어진 26번 국도를 직선으로 확포장하려고 하자 1970년대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계곡이 아름다우니 확장하지 말라’고 지시해 현재의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다. 농월정으로 흐르는 물이 비단처럼 아름답기 때문에 안의로 흘러내리는 물을 사람들은 비단내, 금천(錦川)이라 불렀다.

특히 안의삼동은 조선 최고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 선생이 계실 때는 우리나라 문화의 중심지가 된 곳이다. 연암은 쉰 살이 넘어 정조의 부름을 받고 1792년부터 5년간 안의현감을 지냈다. ‘열하일기’라는 불후의 명저를 남긴 연암은 안의현감을 지내면서 당시의 경험과 토대로 실험적 작업을 하게 된다. 그는 안의삼동 가운데 하나인 지금의 용추계곡 입구인 안심마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물레방아를 만들면서 이를 상용화시키는 등 실학을 실천하는데 앞장섰다.

안의삼동은 남덕유의 기세를 받아 깨끗한 물길과 수량이 풍부한 폭포들이 이어진다. 한 시절 나대며 살던 고관대작도, 은둔해 유유자적하던 선비도 낙향해 탐방하며 자연을 즐기던 곳이다. 선인들의 발자취가 즐비한 이곳에 발을 담그니 신선놀음이 아닌가 한다.

한편 안의삼동 가운데 함양군 안의면 광풍루(光風樓)와 거창군 위천면 관수루(觀水樓) 등 누각과 강선대·사선대 등의 8경 정리도 필요해 보인다. 이왕이면 누각과 정자의 관광문화루트로 만들어 명소가 되길 바란다. 조선 순조 1801년 용암 임석형 선생이 거창군 북상면 바위 위에 지은 용암정(龍巖亭)과 함양군 서하면 군자정(君子亭)이 빠진 것도 아쉽다. 용암정과 군자정은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고결한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팔담(八潭)

월연담(月淵潭) :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월연암이라고 부르는 농월정 앞 너럭바위 가운데 달과 같이 둥근 소가 있어 월연담이라고 한다. 월연담 위의 바위에는 힘차고 뛰어난 글씨로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 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금 떨어져서는 월연에 비친 달을 희롱한다는 농월정(弄月亭)이 있어 화림동 최고의 경관을 이루고 있다.

종담(種潭) :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우리나라 정자 예술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농월정에서 물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농월정 다리가 있다. 농월정 다리 바로 아래에 있는 소가 종담이다. 소나무 숲 반석 위로 흐르는 물과 농월정 다리가 종담과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움은 선조들의 풍류와 멋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 조각배를 띄어 유람객들이 경치를 즐기기도 했다. 바로 앞에는 농월정 오토캠핑장이 자리 잡고 있다.

심원담(尋源潭) :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용추계곡 심원정(尋源亭) 앞에 있는 깊은 소가 심원담이다. 소를 휘잡고 있는 바위가 거북이를 닮았다 하여 구암(龜巖)이라 하고, 건너편에 포개진 바위는 시루떡을 포개 놓은 것 같다하여 농암(籠巖)이라 한다. 이곳은 금원산 계곡과 기백산 계곡의 맑은 물이 합류하는 곳으로 물이 수정처럼 맑고 깊다하여 심원담(尋源潭) 또는 청심담(淸心潭)이라 한다.

설옥담(屑玉潭) :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용추폭포 위에 있는 소로서 비스듬히 누운 흰 바위 사이로 흐르며 떨어지는 물이 마치 구슬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옆에는 물소리가 마치 풍악을 울리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풍류암도 있다. 이곳은 해마다 곡우 때가 되면 곡우제가 열려 많은 행락객이 몰려와 곡우물을 마시고 계곡물에 머리를 감으려 하루를 즐겼다. 질굿내기라는 민요가 전해진다.

차일담(遮日潭) :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전체가 협소한 계곡이지만 동호정(東湖亭) 정자의 앞쪽은 수면이 비교적 넓은 호수와 같은 소가 있다. 이 소의 가운데 있는 바위섬은 하나의 편평한 바위로 300여평이나 되고 500여명이 들어설 수 있을 만큼 넓은 바위다. 옆으로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흐르며 물 가운데 차일암 등을 일컬어 차일담이라 불렀다.

학담(鶴潭) : 거창군 위천면 남산리

금원산 초입 부분 위천면 냇가에 있는 큰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능허정 아래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마을 서쪽에 금원산이 있고, 동쪽 위천에는 학담이 있어 원학동(猿鶴洞)이라고 불렀다. 예전에는 학담소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 위에 학이 서식하고 있어 여름철에는 소나무 위에 흰 꽃이 피어 있는 것 같은 풍경이 멀리까지 보여 수려한 경치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구연담(龜淵潭) :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수승대 중앙에 거북처럼 생긴 거대한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구연암이고, 그 앞에 있는 소가 구연담이다. 수승대의 명물 거북바위는 계곡의 맑은 물 가운데에 앉아 있는 모습이 거북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이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이다. 시인묵객 풍류가들의 글들이 바위 가득 남겨져 있다.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리는 관광지로 여름철 물놀이하기 좋은 장소다.

분설담(噴雪潭) : 거창군 북상면 창선리

분설담은 사선대, 강선대와 함께 12㎞ 길이의 월성계곡의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물줄기가 흩날리는 눈과 같다 하여 분설담(濆雪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거대한 너럭바위 위로 맑은 계곡수가 흐르면서 못을 형성하고, 계곡이 끼고 있는 한쪽 벼랑은 책을 켜켜이 쌓아 놓은 듯한 형상이어서 경치가 뛰어나다.

팔정(八亭)

농월정(弄月亭) :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정자는 깨끗한 물소리가 끊이지 않고, 솔 내음 품은 소슬한 바람이 항상 그윽해야 한다. 맑은 물에는 마음을 씻고, 소슬한 바람에는 땀을 씻어야 한다. 농월정이 우리나라 정자문화를 대표하는 이유다. 농월정은 조선중기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知足堂) 박명부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이다. 2003년 10월 화재로 전소됐다가 2015년 9월 복원됐다. 그래서 단청은 깨끗하다.

동호정(東湖亭) :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임진왜란때 선조의 의주몽진을 도운 동호(東湖) 장만리(章萬里)가 소요하던 곳에 그의 9대손 장재헌이 1895년 건립한 정자다. 장만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몽진할 때 임금을 등에 업고 수십리 길을 달렸다. 이후 평양성 탈환 전투에서도 공을 세웠다. 동호정은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동호정이 들어선 차일암 앞 계곡에는 잘생긴 바위마다 이름이 하나씩 있다. 노래는 부르는 곳이라는 영가대(詠歌臺)와 거문고와 피리를 부는 곳 금적대(琴笛臺), 술잔을 기울이는 주가대(酒斝臺)가 있다.

거연정(居然亭) :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고려말 전오륜의 7대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전시서가 서산서원을 짓고 바로 옆에 거연정이라는 억새로 만든 정자를 1872년 전시서의 7대손인 전재학, 전민진이 중건했다. 주위 경관이 아름답고 흐르는 물, 우거진 숲, 걸쳐 놓은 구름다리 등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 같다. 햇살에 눈이 부신 거연정과 계곡의 암반 위를 흐르는 물소리는 청아하기 그지없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심원정(尋源亭) :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심원정은 용추계곡 입구의 매표소 바로 우측을 흐르는 지우천 계곡의 심원담의 거북바위 위에 세운 정자이다. 당시 거제부사였던 돈암 정지영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밤낮으로 후진양성에 힘썼는데 제자 정제현이 스승을 찬양하기 위해 1558년 창건했다. 심원정은 편평한 자연 암반 위에 뛰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어 경치를 즐기기에 알맞다.

사락정(四樂亭) :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

거창군 마리면 영승마을 앞 소나무 숲이 있는 곳의 정자로 동남쪽의 황새봉과 북동쪽의 뒤죽골을 양 날개로 하고 취우령을 배경으로 정자 앞을 흐르는 위천천을 유유히 바라보며 서 있다. 사락정은 권질이 사위 이황에게 편지를 부쳐 이 정자의 이름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이황은 시골에서 누릴 수 있는 네 가지 즐거움(농사·누에치기·나무하기·고기잡기)이라는 의미로 사락정(四樂亭)이라 이름 붙이고, 시(詩)를 지어 장인에게 보냈다.

능허정(凌虛亭) : 거창군 위천면 장기리

능허정은 ‘헛된 명리를 멀리 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정자로 단청을 하지 않아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검소하고 수수한 선비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정자이다. 조선 초기 학계 정옥견이 은거하였던 곳으로, 원래는 사마마을 불고대 앞 학담 위에 세웠으나 후에 소실되자 1839년 후손들이 지금의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전해진다. 한때는 벚꽃이 풍성하여 벚꽃공원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지금 능허정은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고, 문이 잠겨 있어서 가까이서 볼 수가 없어 아쉽다.

요수정(樂水亭) :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조선 전기의 학자 신권이 지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요수(樂水)는 신권의 호로, 요수정은 수승대(搜勝臺) 건너편 솔숲에 부속건물 없이 홀로 세워진 1동의 중층 정자이다. 마루 가운데에 판자로 한 칸의 온돌방을 만들어 놓고, 굴뚝을 뒤축 축대로 냄으로써 그 묘미를 더했다. 요수정이 자리한 곳은 너럭바위와 물, 그리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어 완벽한 삼합지로 풍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바로 앞에 거북바위가 있고, 그 뒤로 수승대 구연서원의 관문 관수로(觀水樓)가 있다.

도계정(道溪亭) :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도계정은 갈천 임훈 선생의 아우인 도계 임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것으로 가운데 방은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도계정은 갈계숲 안에 있는데 갈계마을에서 시냇물이 동과 서, 두 갈래로 나뉘면서 섬을 만들어 냈다. 이 자연섬에 수목이 우거져 200~300년생 나무가 모여 지금의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됐다. 갈계숲에는 도계정과 가선정, 병암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정자가 3개나 있다. 갈계숲과 갈계리는 모두 임훈의 호인 갈천에서 유래됐다.

※ 안의삼동 팔담팔정은 이창규 전 안의면장과 백원규 안의향교 원임 두 분이 연구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다.

이영철 기자  achimst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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