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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사리마을
조만선 산청군 신등면장.

내 고향은 산청에서도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시천면 사리마을이다. 우리 집 마당에서 보면 서쪽으로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1915m)이 보인다. 마을 뒤쪽은 이방산(716m), 동쪽은 시무산(403m), 앞산은 조례산(324m)이다. 마을 옆으로 마근담 계곡이 있고 앞을 가로질러 덕천강이 흐르는 산수가 유려한 곳이다. 이렇듯 산이 높고 많으며 물이 맑은 그곳에서 나는 2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 시절에는 다들 땔감으로 난방을 하고 밥을 지어야 했기에 나무를 하고 농사짓느라 일손이 부족했다. 온가족이 농사일에 매달려야 했다. 이른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일을 했다. 특히 어머니는 우리 4남매와 고모, 삼촌까지 양육하며 집안일과 병행하느라 항상 바빴다. 어머니는 뽀얀 피부에 체력이 약했다. 힘든 일상으로 무척 피곤한 날의 연속이어서 푸성귀를 다듬거나 밭을 매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따뜻한 햇살이 잠시 동안이나마 머무는 겨울철에 콩을 가리다가 피곤함에 졸던 모습이 아직도 아릿하게 떠오른다.

어릴 적 나는 집에서는 말 잘 듣고 얌전한 아이였다. 채소를 다듬으라고 시키면 한 번도 일어서지 않고 꼼꼼하게 마무리를 잘해서 어른들이 대견해하셨다. 할머니가 시장에 가거나 외출을 하면서 나를 데려가지 않으면 한참동안을 울어댔다. 거의 ‘한나절’이나 징징거려서 어머니는 달래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여간해서는 그치지 않는 고집스런 면도 있었다. 싫다, 좋다는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고, 말도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머릿속은 생각이 많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도 많았다.

대청마루에 누워 따뜻한 봄 햇살을 쬐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든 적이 많았다. 저 하늘 끝까지 우주로 가고 싶다는 생각,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들이었다. 나는 아마도 유럽 어느 나라의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였을 거라는 망상(?)도 하며 잠이 든 적이 많았다. 어른들의 꾸중을 들을 때면 나만이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도시에 사는 부잣집 부모들이 찾으러 오지는 않을까? 외국에 사는 부모가 찾으러 오지는 않을까?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바람이 부는 선선한 날에는 가운데 방의 앞문과 뒷문을 열어놓고 엎드려 책을 읽었다. 뒷문을 열면 바로 대나무 숲이어서 여름에는 아주 시원했다. 연둣빛 대나무이파리에서 들리는 사각거리는 바람소리를 좋아했다. 그러나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는 댓잎이 바람에 스치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방문은 문고리만 살짝 걸친 창호지문으로 잠금장치가 허술했다. 밖에서 누구든지 문을 열 수 있기에 무서웠다. 어릴 적에는 할머니로부터 귀신얘기를 자주 들었다. 흑백텔레비전으로 ‘전설의 고향’을 무섭고도 재미있게 봤다. 그때는 화장실귀신, 대나무귀신, 우물귀신 등 귀신이 제일 무서웠다.

우리 집 뒤쪽으로 대나무가 둘러쳤고 뒷산은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가 자랐다. 옆산과 앞산에도 소나무와 이름 모를 잡목들이 우거져있었다. 봄에는 진달래꽃, 여름에는 싸리꽃이 사방에 피었다.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 겨울에는 새하얀 눈꽃이 뒤덮여서 사시사철 아름다웠다.

마을 앞, 꽃그늘이 드리운 덕천강은 세찬 물결에도 잔잔한 물결에도 쉼 없이 흐른다. 유유히 흐르는 세월 따라 반백이 된 이 마음도 따라 흐른다. 그 맑던 계곡과 어여쁜 꽃들과 시원한 바람이 그때의 것이 아니다. 계곡에는 온갖 풀들이 무성하고 그 사이로 작은 물줄기만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변함없이 따뜻한 내 고향이다.

그냥 그렇게 소소한 행복이 깃든 그때 그 시절의 내 고향 사리마을이 그립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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