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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딜방아가 있던 집
이진숙 작가.

명절과 제사가 다가오면 어머니는 밤새 불린 떡쌀을 이고 나를 앞세워 동네에 유일하게 디딜방아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 집은 동네 뒷산 쪽에 외떨어져 있었다. 그 집으로 향하는 길 양쪽에는 탱자나무가 길게 늘어서있었다. 아이들은 학교 오가는 길에 샛노랗고 말랑한 탱자를 마치 제 것처럼 따서 시디신 탱자즙을 쪽쪽 빨아먹었다.

탱자나무는 대문 앞 돌계단까지 십여 미터나 늘어서 있고 돌계단은 지금 생각하니 꽤나 가팔랐던 것 같다. 아들만 아홉인 그 집에 들락거릴 일은 디딜방아를 빌려 쓰는 일 말고는 거의 없었다. 싸리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마치 작은 암자에 찾아든 느낌이었다. 아홉 명의 아들들은 하나둘 섬을 떠났고 남은 식구들도 낮이면 들로 바다로 나가서 그 집은 늘 비어있었다.

그 집 안채에서 기역자로 굽어진 헛간 옆에 디딜방아가 얌전히 놓여있었다. 집둘레엔 대나무가 바람막이처럼 둘러쳐 있어 건듯 부는 바람에도 댓잎이 수런거렸다. 디딜방아는 어린 나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어머니가 디딜방아 저 끝에서 발판을 밟으면 절굿공이가 머리를 바짝 치켜들었다. 그때 나는 잽싸게 손을 집어넣어 떡쌀을 고루 섞어야 했다. 절굿공이가 내 손을 찍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쌀가루가 다 빻아질 때까지 겁을 통째로 물고 있었다.

어머니가 다 알아서 디딜방아를 밟았을 거라는 생각을 그땐 왜 못했을까. 내가 겁을 먹고 있는 게 안됐던지 어머닌 기다란 나무주걱을 손에 쥐어주며 그걸로 섞어보라고 하셨다. 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데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찰나 나무주걱이 절굿공이에 뎅겅 부러지고 말았다. 떡쌀에 나무주걱가루가 뒤섞여서 아까운 쌀가루를 몇 움큼이나 들어내야 했다. 어머니는 쌀가루를 들어내며 화를 많이 내셨다. 나는 그 옆에서 죄인처럼 쪼그리고 앉아 차라리 내 손이 부러졌더라면 하며 자책을 했다. 그날 어머니가 화를 냈던 건 당신도 놀라서였을 것이다. 그 뒤론 어디서 구했는지 무쇠주걱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디딜방아가 있던 그 집은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서울로 이사를 해버렸다. 아홉 명의 아들 중에 내 또래가 하나 있는데 그 애가 막내였을 것이다. 서울 가기 전까지만 해도 별 관심을 끌지 못했던 그 아이가 어느 해 겨울방학에 섬에 들어왔다. 우린 그 아이를 위해 파티를 준비했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얇게 밀어 꽈배기 모양으로 빚었다. 그것을 기름에 튀겨서 설탕을 묻히면 꽈배기과자가 되었다. 아이들은 우리 집 사랑채에 둘러앉아 과자와 식혜를 먹으며 놀았다. 그 아이가 어느새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섬을 벗어나지 못했던 섬 아이들은 그 아이가 서울 말씨로 들려주는 도시이야기에 귀를 쫑긋했다. 흑백텔레비전으로만 보았던 시내버스와 공중전화와 영화관 같은 신기한 이야기들을 밤이 깊도록 들었다.

읍내에 최신식 기계가 갖춰진 방앗간이 생기자 어머닌 디딜방앗간에 가지 않았다. 어쩌다 간단하게 빻을 거리가 생겨도 나를 끌고 가지는 않았고 당신 혼자서 다녀오곤 하셨다. 그래서 까맣게 디딜방아와 그 집을 잊고 있었다.

이제 디딜방아가 있던 그 집은 허물어지고 돈 많은 누군가가 황토로 별장을 지었다. 정작 사라지고 나니 그곳이 너무나 그립다. 눈을 감으면 그 집 앞 노랗게 익은 탱자나무와 가파른 돌계단, 그리고 연초록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디딜방아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눈에 선하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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