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사건은 1951년 군법회의서
학살부대 지휘관에게 유죄판결
전국 최초로 판결 이끈 대표사건
신중목 국회의원 노력이 작용

산청·함양사건은 통비분자 규정
2월 7일 기록은 빠져 있어
국회 진상요구에도 대응 못하며
40년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1951년 2월 7일부터 11일까지 산청·함양과 거창에서 11사단 9연대 3대대는 ‘견벽청야’라는 작전명으로 민간인학살사건을 자행했다. 1951년 3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거창 출신 신중목 의원을 통해 사건이 폭로되고, 7월 27일 군 당국은 민간인학살 당사자들을 법정에 세웠지만, 산청·함양사건은 은폐한 채 거창사건만 조사하고 선고했다. 이로 인해 동일 부대, 동일 작전에 따라 시간적 순서대로 진행된 사건이 거창사건, 산청·함양사건으로 불리게 됐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이 개편된 야권 중 가장 강력한 당이 조병옥과 김준연이 있는 민국당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게 되고 이곳저곳에서 원성이 높아지자 이승만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거국내각 형식을 취하게 된다. 조병옥과 김준연을 각각 내무, 법무의 요직에 앉힘과 동시에 자신의 수족인 신성모를 국방부장관에 임명했다. 전시에 있어 국방부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거창사건이 부산 피난 정부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사건이 난지 보름 정도 뒤인 2월 하순께 제보는 국방부, 내무부, 법무부에 제각기 날아들어 왔으며 그리고 조사 또한 각 부처에서 행해졌다. 문제는 점점 커져 국회로까지 비화되었다. 여기에는 거창 출신 국회의원 신중목(愼重穆) 씨의 힘이 크게 작용하였는데, 신중목 씨에게 부산 피난 국회로 처음 소식을 가지고 온 사람은 대한 청년단 거창군 부단장 함차산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신중목 씨는 신원면 쪽이 작전지역이라 들어가지도 못한 채 평소 알고 지내던 사찰주임 유봉순을 만나게 된다. 그는 모든 자료와 사실을 함구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학살 현장 사진과 사망자 명단까지 보여주게 되지만, 사진과 명단을 가지고 가려는 것만큼은 끝내 거부하여 신중목 씨는 서둘러 명단을 베낀 채 부산으로 돌아왔다.

1951년 3월 29일 54차 국회 본회의에서 신중목 씨에 의해 양민학살 사건이 폭로되어 다음날 30일 국회진상 조사단을 구성하여 특별조사위원회에 참가할 의원으로 김종순, 박정규, 김의준, 이충환, 김정실, 이병흥, 노기용 의원을 선출했다. 국회조사단이 현지 조사를 나온다는 일정이 확정되자 군 당국은 그중 어린이로 확인될 수 있는 시체를 골라내 현장에서 약 2㎞ 떨어진 홍동골 계곡으로 옮겨 암매장하여 은폐하고, 4월 7일 그 유명한 국회조사단 방해 사건을 일으켰다.

거창읍에서 10리쯤 지나 신원면으로 들어가는 작은 계곡 앞에 이르렀을 때 5~6m 정도의 교각하나가 톱으로 잘린 채 있었다. 그곳에서 한 30리쯤 전진하여 차들이 조심조심 고갯길 커브를 도는 순간, 따발총과 소련식 보총 소리가 짧은 동안 콩을 튀기듯 몇 발 울렸다. 돌과 흙이 튀자 조사단 차량은 일시에 멈춰 섰다.

4월 24일 사건의 소문은 외국 신문에까지 크게 보도되자 정부는 국방부 신성모, 내무부 조병옥, 법무부 김준연, 3부 장관을 해임하면서도 “군은 용공분자 187명을 처형했다”고 허위 담화문을 발표하게 되고, 5월 14일 담화문이 왜곡된 허위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져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게 되자, 국회에서 ‘양민학살 관력책임자 처벌에 관한 결의문’을 채택키로 의결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영국 신문들이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다리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논평하게끔 했다.

양민학살이 발생된 지 4개월이 지난 7월 27일 양민학살 사실을 군 당국은 거창군 신원면만으로 축소한 채 지휘관들을 법정에 세웠다. 당시 대구 고등군법회의 재판장 강영훈 준장(전 국무총리)의 주재하의 재판에서 ‘변영탁 외 187명의 통비분자 처형’에 대한 거창 양민학살 최고 책임선으로 오익경 9연대장을, 국회조사단 방해 사건은 김종원 계엄사부장선에서 매듭짓기로 하고 1951년 12월 16일 그들에 대한 선고를 내렸다.

오익경 무기(구형 사형), 한동석 징역 10년(구형 사형), 김종원 징역 3년(구형 7년)이 당시 형량이었다. 그러나 김종원은 이듬해 3월에, 오익경은 9월에, 한동석은 1년 6개월 뒤 각각 풀려 나와 김종원은 경찰간부에, 오익경와 한동석은 군에 복직됐다. 그후 11사단장 최덕신은 외무장관 및 천도교 교령을 지내다 월북하여 북한군 대남전력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신원면민들의 맺히고 맺힌 원한은 1960년 4·19와 함께 터져 나왔다. 1960년 5월 박산 합동묘소 석물 운반 작업 중 사건 당시 주민성분검사에 참여했던 ‘면장타살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날의 우발적 사고로 대검찰청에서 면장타살 사건 관련자들을 연행 조사하게 되자, 묻혔던 거창 사건의 내막이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국회에서 양민학살사건 조사위원회가 구성되기에 이른다.

이후 5·16군사정변으로 유족회 간부 18명이 반국가단체혐의로 구속되고, 6월 당시 경남도지사 최갑증의 ‘합동묘지 개장명령서’ 하달이란 이름으로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진 묘소는 군사정권에 의하여 파헤쳐지고, 위령비문은 정으로 지워져 땅에 파묻히는 수난을 당했다.

1967년이 되어서야 5·16 당시 완전히 파헤쳐졌던 박산 합동묘소 봉분은 복구했지만, 위령비는 복원 못하고 그대로 땅속에 방치되었다.

이후 1988년 2월 15일 유족들은 신원면사무소 앞에서 ‘거창양민학살 희생자 위령 추진위원회 발족 및 궐기대회’를 갖고 합동묘소까지 가두 행진하며 전국의 양심 있는 국민에게 호소문을 발송하고, 27년 만에 땅 밑에 박힌 위령비를 파냈다.

유족들은 1988년 여소야대 정국이 전개되던 시점 국회 앞에서 연일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당시 통일민주당 거창 지역구 고(故) 김동영 의원의 소개(紹介)로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하여, 1989년 10월 ‘거창사건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배상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을 발의했고, 1996년 1월 5일 사건발생 45년 만에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공포됐다. 하지만 유족에 대한 배·보상안이 빠지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태호 국회의원이 지난해 12월 거창사건 등 관련자 배상법안을 마련하고 유족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한편 ‘거창사건’이 매스컴 등에서 대대적으로 부각되는 동안에도 1988년까지 산청·함양사건이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거창 출신 신중목 2대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진상요구 대변을 하였으나 전후 당시 산청군 출신 2대 이병흥 국회의원은 와병 중으로 국회에서 진상조사 요구대변을 하지 못한 원인으로 산청·함양 지역의 양민학살 사건은 국회차원 조사가 못되어 40년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왔기 때문이다.

둘째, 이런 과정에서 1960년 4·19이후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이 지역 도의원에 당선된 민치재(85년 작고)씨가 처음으로 도의회에서 ‘억울한 희생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정식 발의했으나 5·16 군사정변 이후 투옥당하는 수난과 군사정권에 의해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셋째, 거창사건 당사자들은 합동묘를 마련했고 이로 인해 똑같은 장소에 모일 수가 있었지만 산청·함양의 피해자들은 시체들이 산짐승들에 의해 마구 찢겨지고 없어졌기 때문에 묘를 만들 수도 없어 자연히 같이 모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0년 함양군 4대 국회의원 박상길 의원의 제안으로 ‘거창(居昌)·함양(咸陽)·산청(山靑) 등지의 양민학살 사건 진상조사에 관한 긴급결의안’이 있었으며, 이것을 발단으로 함평(咸平) 양민학살 사건, 통영(統營), 남원(南原), 문경(聞慶) 지구 양민학살 사건 조사에 관한 긴급 결의안을 제안하게 된다.

이와 같이 거창은 가해자 3명이 군법회의에서 형이 확정돼 군의 과오가 인정됐고, 산청·함양은 사후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동일 부대, 동일 작전에 따라 시간적 순서대로 자행된 산청·함양·거창 민간인학살사건이 거창사건, 산청·함양사건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영철 기자  achimst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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