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교 수필가.

연하늘색 도자기 떡살이 하나 있다. 잡다한 것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던 때 내게 온 물건이다. 떡살의 밑면 중앙에는 동전 크기로 원을 사등분 해놓았고, 그 안에는 빗금이 십오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그어져 있다.

손잡이를 대신하는 낮은 굽 한쪽에 구멍을 내어 매듭을 엮어 달아놓은 점이 특이하다. 빨간 매듭은 떡살 주인이 누구인가를 나타내는 표시임에 틀림없다. 떡살이 만들어진 때가 얼마나 됐는지 세월과 함께 부대낀 이력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맨 가장자리 쪽에 조금 깨어져나간 부분도 있고 뒤쪽에는 약간 실금이 간 부분도 보인다. 수많았던 기제사와 명절을 함께 했으며 집안 잔치에도 어김없이 떡에 모습을 드러냈을 터니 그럴 만도 했다.

요즈음 이런 떡살은 별로 쓸 일이 없다. 전부 방앗간에 가서 떡을 해오기에 쓸모가 없는 셈이다. 특별한 경우에 일부러 절편을 해먹고 싶다면 쓰일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쓰임새 없는 떡살을 달리 이용하기로 하였다. 긴 매듭과 끈이 달려 있어 벽에 걸어두기로 하였다. 수납장에 갇혀 있다가 매양 쳐다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벽면에 걸어두고 적당히 몇 걸음 물러나서 쳐다보니 제법 그럴듯하다. 옛 아낙네들은 이런 걸 상상이나 했을까. 부엌 선반에 있어야할 물건이 장식품이 되어 벽에 걸릴 줄을.

떡살은 멥쌀로 만드는 절편 떡에 주로 쓰인다. 쌀가루를 쪄내어 수없이 치대어야 쫄깃한 떡이 된다고 한다. 천연색감을 넣어 만든 절편에 온갖 예쁜 문양이 찍힌 것을 떡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떡살을 나무나 실리콘으로 만든다 하니 도자기 떡살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이 떡살로 절편을 만들어 무늬를 찍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과연 무늬가 선명하게 나타날지 의문이기는 하다. 머릿속으로 떡을 만들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멥쌀을 씻어 물에 불린 다음 건져서 물을 뺀 뒤 방앗간에 가져간다고 하자. 떡 방앗간 주인은 소금을 적당히 넣은 뒤 기계에 쌀을 분쇄해 내릴 것이다. 체에 쳐 가루를 더 곱게 한 다음 사각 시루에 대자리와 광목천을 깔고 가루를 부어 익힌다. 김이 폭 나면 떡시루를 들어내 내용물을 쏟아 붓고 치댈 것은 분명하다. 그런 다음 떡 뭉치를 또 다른 기계 속에 넣고 압력을 가한다. 절편 틀을 끼운 기계의 마지막 출구로 잘 빚어진 절편이 줄줄이 나와 물속으로 빠질 즈음 적당한 길이로 잘라준다.

내 의도대로 떡이 잘 빚어졌다면 물에서 건져낸 뒤 참기름을 발라 줄 것 같다. 그런 다음 떡살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도장을 찍어주면 될 것이다. 입 속으로 쫄깃쫄깃한 떡이 들어가는 것을 연상하다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만다. 직접 만들지는 못해도 떡 방앗간에서 전 과정을 지켜보고 싶어진다.

떡살을 가만히 쳐다본다. 옛날, 어느 부잣집 부엌에 자리 잡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없이 거쳐 갔을 옛 여인들의 체온은 사라졌지만 그 속에 나의 체온도 덧입히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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