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논단
인생이라는 여정(旅程)
박동소 독림가.

여보게 벗님! 열두 장이든 달력이 벽에 한 장만 걸려있네. 한해의 끝자락에 선 이맘때의 마음이 자네나 나나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싶네. 누가 쏜살같은 세월이라지만 쏜살은 궁사가 쏜 줄이나 알고 순간 포착이라도 되지.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초등학교 졸업노래 불렀든 때가 오십여년 세월이라 보면 그깟 열두 달쯤이야 싶네. 칠십 축하화한을 보내든 일 또한 바로 어제 같다 싶은데 여기 어느새 다섯을 더하려 하고 있네. 제동장치가 풀려 버린 열차이든가? 세월이 무섭다 싶다네. 젊을 땐 뜨고 지는 해를 아무런 두려움 없이 대했지만, 이젠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론 아침을 열어주는 눈부신 태양이 참 감사하기도 하다네.

여보게, 내 생각이 어떤가? 이제 우린 가을들녘에 선 진인사대천명의 농심을 후회 없는 우리의 여정을 위해 늘 지녀야 할 것이라 싶네. 젊은이들의 효에 대한 인식도 우리들 때와는 많이 다르다 싶네. 어쩌랴, 이고 살아 온 하늘이 다를 진데 다른 것이 어디 그뿐이랴. 너무 서러워 말게, 화가의 화폭에 담기는 노송의 멎진 자태나 산삼의 신비한 향기를 어찌 젊은 소나무나 풋 삼에서 찾을 수 있으랴!

자넨 요즘 아카디온을 배운다고 했지? 참 잘했네. 그러고 보니 자넨 아카디온에 만추의 여정을 담아내는 멎진 노신사네. 난 기타를 배우고 있다네. 치매예방이 된다는 말에 시작했네. 텃밭에 몇 가지 채소도 있다네. 생각 가는 데로 심었다네. 아침에 가보면 많이 자라있었네. 거두어가면서 나는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자연은 그것을 바라지도 않았네.

그곳에는 사랑과 감동, 삶의 지혜가 있었고, 과학이 있고, 탄생의 비밀과 태초의 소리도 있다네. 하여 나에게 자연과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최고의 스승을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다네. 또한 가슴으로만 나누는 얘기로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네. 젊을 적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네. 찾아보면 이곳저곳에 많을 상 싶네. 바쁘면 또한 좋을 것이 아닌가?

여보게! 이젠 우리가 찾아야 할 삶의 지혜와 해답은 자연의 섭리와 내안에 있다고 보네. 물 흐르듯 둔해진 순발력은 경험으로 대신하세. 말하기보다 듣는 쪽을 택하세. 그게 이 시대에 상대가 우리를 찾게 하는 지혜라 싶네. 또한 가슴으로 말하면 젊은이가 들으리라 싶네.

여보게! 나이가 들면 왜 새벽잠이 없는지 자넨 아는가? 뉘우치고 감사할 시간을 주기위한 창조주의 깊은 배려가 아닐까 싶다네. 그래서 난 새벽시간을 좀 더 많이 가지려하고 있네. 따끈한 차 한 잔 놓고 앉으면 어느새 심신이 경건해지고, 새벽에 깨워 준 창조주의 배려가 매양 감사하다 싶다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만남은 이미 헤어짐의 약속이라든가? 언젠가는 자네와도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만 슬프지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고 읊은 야은 길재 선생의 시가 특별히 와 닿네.

빛의 속도로 가도 200억년이 걸린다는 별도 있다는 광활한 우주. 그 속에서 수많은 삶들이 명멸해 갔다 싶으니 나에게 허락된 시간과 공간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네. 지난 한해 고마웠네, 새해에는 더욱 힘이 실린 자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네. 만나보세.

자네와 나 순수시절의 자취가 있는 그곳, 엄마의 가슴과 아버지의 회초리가 있든 그곳, 할머니의 옛이야기가 있었고, 할아버지 잠들어 계신 고향이 아니더냐. 수억년의 시간이 멈춰있는 우포하늘에 이맘때면 백설이 날리고 기러기 울어 예든 그곳! 그곳에서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여는 눈부신 태양을 함께 맞이하게. 지리산 능선에 신이 연출하는 석양이 이쯤 따라 장관일세.

- 저무는 신축년에, 지리산 자락에 사는 벗이.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부경남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