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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과 일몰, 월출이 솟아나는 지리산 천왕봉 ‘일월대’

일원대는 상봉, 천주와 더불어
천왕봉을 일컫는 다른 이름

1643년 유두류산기에 처음 등장
1924년 두류록에 기록 남아

일월대 석각은 죽헌 정태현 글씨
일두 정여창 선생의 14대 후손

임인년 새해 1월 1일 지리산 천왕봉 일월대를 찾은 산악인들이 죽헌 정태현 선생의 글씨를 감상하고 있다. 일월대는 일출과 일몰, 월출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상봉(上峰), 천주(天柱)와 더불어 천왕봉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다. <사진: 이영규>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 남쪽 경사진 바위 면에 일월대(日月臺) 석각이 있다. 일월대는 글자 그대로 일출과 일몰, 월출을 완상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상봉(上峯), 천주(天柱)와 더불어 천왕봉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다.

선인들의 유람록에 일월대의 기록은 1643년 박장원의 유두류산기에 처음 등장한다. 1719년 신명구의 유두류일록, 1724년 조구명의 유두류산기, 1724년 정식의 두류록에도 보이는데, 지리산 천왕봉 정상을 가리킨다.

일월대 석각은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에 “봉우리 남쪽은 일월대인데 오르면 일출과 일몰, 월출을 볼 수 있는 까닭으로 지어진 이름이며 새로 새긴 대의 이름자는 크기가 팔뚝만한데 정죽헌이 쓴 글씨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죽헌(竹軒)은 정태현(鄭泰鉉, 1858 ~1919)의 호이다. 文獻公)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의 14대 후손이다. 대한제국기(1901년) 충북관찰사,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관료이다.

합양읍 상림공원에 관찰정태현영세불망비(觀察鄭泰鉉永世不忘碑, 1904)와 마천면 가흥리 자연 암석에 새긴 승지정태현영세불망비(承㫖鄭泰鉉永世不忘碑, 1906)가 있다. 만석꾼의 부호로 수해와 흉년이 들면 백성들을 구휼하여 여러 곳(함양 휴천면, 충북 음성)에 영세불망비가 있다. 1901년 충북관찰사로 부임하여 해를 이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자 함양 본가에서 수천 석의 곡식을 운반하여 도민들을 구휼했다.

바위에 선명하게 각인된 천주(天柱).

지리산 천왕봉 천주(天柱) 석각은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우뚝하게 솟아 있다는 의미로 와황석(媧皇石)이라고도 한다. 와황(媧皇)은 상고 시대 제왕(帝王)인 여와씨(女媧氏)를 가리키는데, 일찍이 공공씨(共工氏)가 축융(祝融)과 싸우다 부러뜨린 천주를 “여와씨가 오색의 돌을 구워 보수하고 자라의 발을 잘라 사방을 지탱할 기둥으로 세웠다”고 한다.

중국의 오악(五岳)인 형산(衡山)에도 천주봉이 있다. 한유(韓愈)의 시에 “자개봉은 길게 뻗어 천주봉에 닿았고, 석름봉은 솟아올라 축륭봉을 쌓았다네”라는 시구에 천주가 등장한다. 김종직은 1472년 8월 14일 천왕봉에서 한가위 달맞이를 천주(천왕봉)의 즐거운 놀이(승유천주·勝遊天柱)로 표현하고 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일월대와 같은 정태현의 필획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9월 10일 일월대 정태현 공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남계서원을 찾았고, 12월 중순 정효순·정순구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죽헌 정태현 선생의 후손들을 만났다. 죽헌집은 숭산정사의 화재로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지 않아 경상대학교 도서관장 기근도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하였다. 

기근도 교수는 죽헌집 영인본 2권을 하동정씨 문헌공파 종회장 정천상 대표에게 보내주었다. 12월 30일 죽헌집에서 일월대의 석각 시기를 확인하기 위해 함양 지곡에 내려왔고, 정천상 종회장의 안내로 죽헌공의 묘소를 찾았다. 그리고 죽헌집의 가장(家狀)과 행장(行狀)에서 죽헌 정태현 공이 28세 때에 두류산을 유람하고 천왕봉에 석각한 기록을 확인했다.

죽헌공은 1883년 7월 25세에 동몽교관에 제수되어 출사한다. 1886년 한성부 주부(전환국위원)가 된다. 전환국은 지금의 조폐공사이다. 그해 죽헌은 지리산을 유람한다. 가장과 행장에 그 기록이 있는데, 글자 몇 자만 다르고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간진천만첩지구(看盡千萬疊之句)’는 일두 정여창이 탁영 김일손과 두류산을 유람하고 남긴 ‘유두류도화개현(遊頭流到花開縣, 두류산을 유람하고 화개현에 이르러)’의 3구를 가리키는 듯하다. 

정태현 선생은 1886년 한성부주부 전환국 위원이 되었다. 다시 두류산과 덕유산을 유람하여 선조 문헌공이 머물렀던 곳마다 두루 방문했다. 두류산 상봉에 이르러 감동을 노래하였는데, 시를 지어 바위에 새긴 것은 문헌공의 ‘간진천만첩(看盡千萬疊, 두류산 천만 첩을 다 구경하고)’라는 시구를 더욱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中秋天王峯不見月 (중추천왕봉불견월)

- 중추절에 천왕봉에서 달을 보지 못하다 -

- 김종직(金宗直)

抽身簿領陟崔嵬 추신부령척최외 
剛被良辰造物猜 강피양진조물시
霧漲寰區八紘海 무창환구팔굉해
風掀巖石萬搥雷 풍흔암석만추뢰
勝遊天柱知難繼 승유천주지난계  
淸夢瓊臺未擬回 청몽경대미의회
時有頑雲暫成罅 시유완운잠성하  
誰能取月滿懷來 수능취월만회래 
 

공무에서 잠시 벗어나 높은 산에 올랐는데
좋은 날 조물주 강한 새암을 받는구나
운무는 천지에 넘쳐서 팔방이 바다이고
바람이 바위에 몰아쳐 뇌성벽력을 치네.
천왕봉 달맞이 놀이 
경대의 맑은 꿈 다시 함을 헤아리지 못하겠네
때때로 무지막지한 구름 잠시 틈을 만들지만
누가 보름달을 취해 가슴에 품고 올 수 있으리.

 

頭流到花開縣 (두류도화개현)

- 두류산을 유람하고 화개현에 이르러 -

- 정여창(鄭汝昌)

風蒲獵獵弄輕柔 풍포렵렵롱경유
四月花開麥已秋 사월화개맥이추
看盡頭流千萬疊 간진두류천만첩
扁舟又下大江流 편주우하대강류

바람이 하늘하늘 부들 풀을 부드럽게 희롱하는데
4월 화개 고을은 보리 이미 거둘 때였네.
두류산 천만 첩을 다 구경하고 나서는
한 척의 돛단배로 또 큰 강 따라 내려간다네.

 

눈 덮인 겨울 일월대 모습.

필자는 12월 31일 마천 광점동에서 점필재의 아홉모랭이길 방장문을 지나 영랑대로 올라갔다. 청이당터에서 영하 10도, 영랑대에 오르니 영하 17도로 기온이 곤두박질쳤다. 날씨는 쾌청했지만 바람이 매서웠다. 차가운 공기가 기도로 들어갈 때의 느낌은 머리가 아프고 숨이 막히는 고통이다. 콧물이 국수 가닥처럼 흘러내렸다. 동공이 얼어붙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내리자 밤새도록 바람이 몰아쳤다. 지리 동부의 정령들이 포효하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아침 바람이 잦아들고 고요한 새해가 밝았다. 본래 세석연못까지 가기로 하였으나, 영랑대에서 새해의 일출과 조망을 여유 있게 즐겼다. 어떤 일이든 포기를 하면 마음이 금방 편해진다. 사람도 그렇다. 중봉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눈이 적었다. 오늘의 목적지를 바꾸었으니 급할 것이 없었다.

일월대(日月臺) 석각에 이르러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술을 한 잔 올렸다. 석각의 시기는 1886년 병술년으로 죽헌공 28세 때의 일이다. 죽헌 정태현이 일두의 발자취를 좇아 두류산을 유람하고 상봉에 올라 시를 짓고 각을 하였다. 일월대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지만, 가장(家狀)에 있는 내용대로라면 그렇다.

강계형의 유두류록에 ‘새로 새겼다(신각·新刻)’라는 기록은 본래 있던 석각이 마모되어 다시 새로 새겼을 가능성도 있다. 1891년에 부친(양부)상을 당하고, 1893년에는 친부상을 당한다. 정태현 공은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 받았지만, 이런 연유로 사직소를 올리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1901년 충청관찰사로 나갔다가 1905년 벼슬에서 물러나 도숭산 아래 숭산정사(崇山精舍)를 짓고 후진을 양성한다. 개평 마을에 관찰사댁이 있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빈터만 남아있다.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있는 죽헌 정태헌의 생가. <사진: 이영규>

죽헌공이 태어난 생가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후손인 종손자(從孫子, 하동정씨 문헌공파 종회장) 솔송주 정천상 대표가 살고 있다. 일월대 석각 우측 암벽에 있는 정근상(鄭近相, 1893∼1934 하동정씨 문헌공파 16대 종손)의 인명 석각도 확인했다. 정근상은 1926년 문헌공 일두 정여창 선생 신도비를 중건(重建)한 인물로 이 신도비각은 구충각 옆에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라는 의미이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천왕봉 일월대 석각 필획의 주인공 관찰사 죽헌 정태현 공은 당시 부와 학문, 권력과 명성을 가진 사회의 지도층으로 한말 격변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하동정씨 문헌공파 전 종회장 정운상 님과 죽헌 정태현 공의 종손자(從孫子) 현 종회장 정천상 님, 그리고 하동정씨 문헌공파 18대 종손(宗孫) 정의균 님께 감사드린다.

/글=이영규 마천면지 집필위원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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