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근 산청군 단성면 석대마을 거주, 한국국토정보공사 산청지사장 퇴임.

미사 전례에는 신부님 강론시간이 있는데, 보통 그 주(week) 성경말씀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도록 풀어서 말씀하시는 시간입니다.

어느 날 강론 시간에 신부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저의 고백성사를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물론 여러분께 죄를 사함을 받으려는 뜻은 아닙니다. 고질화된 잘못을 여러분께 직접 말하지 않고는 도저히 고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준비를 해왔습니다."

60중반이 넘으신 노신부님의 표정은 다소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오늘 여기 미사에 오신 분 중에도 계시겠지만 이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에게 상처 받으신 분들은 '아, 내 얘기구나!'하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그동안 여러분들과 성당의 작고 큰일을 하면서 마찰이 있을 때마다 사제의 권위로 상대를 누르려 했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꺼내고선 많은 사례를 나열했습니다.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차마 말하기도 부끄러운 자신의 단점과 치부도 드러냈습니다. 30분 동안 계속된 고해성사 내내 얼굴이 붉게 물들어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강론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가 잠시 묵상을 마치고는 나머지 미사집전을 계속하였습니다. 미사 내내 감정을 추스르시느라 애를 먹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강론이 준 감동은 참으로 큰 것이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대신(對神) 관계라고 합니다.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과연 신(神)도 속일 수 있을까요. 아무리 내 허물을 감추려고 애쓰지만 신 앞에서는 바보 같은 짓이겠지요. 내가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고백성사를 교회가 말하는 원칙을 지켜서 보는 것이 정말 힘이 듭니다. 성사를 보려면 먼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용서를 받고 나서 보아야 된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근무 당시 내가 한 업무를 검사하는 공무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횡포가 심해 오랫동안 법적으로까지 싸운 일이 있었습니다. 몇 년 뒤 그 분이 정년을 하자마자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듣고는 한편으로 자업자득이라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용서해야지 했는데도 돌아서서 보면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습니다. 말로는 수도 없이 용서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대화중에 살다가 어려운 일을 당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또 다시 그 분을 소환하고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신부님의 강권은 잘 고쳐지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조금은 나아졌지만요. 하지만 우리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분이 밉기는커녕 정말 크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나 역시 이 글이 신부님의 용기를 빌어 그 분을 진정으로 용서하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내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고 같이 울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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