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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세계도 ‘지정생존자’를 지명해야 하나
노청한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내가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는 미드 ‘지정생존자’다.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는 미국에서 중대한 재난이나 테러 등 비상사태로 대통령과 대통령직 승계자들이 사고를 당하는 사태에 대비하여 행정부 각료 한 명을 지정해 안전장소에 대기하는 조치를 말한다.

지정생존자로 지명되어 얼떨결에 대통령에 취임한 무소속 대통령 커크먼은 온갖 비리와 위선, 가식의 정치판에서 오직 정직과 성실, 그리고 진실만을 추구하는 지도자상으로 국민들 마음을 움직인다.

시즌2-9는 매월 백악관으로 오는 수많은 편지 중 세 개를 뽑아 대통령이 직접 문제를 해결해 주는 ‘편지의 날’ 얘기다. 편지 중 하나는 내가 부쩍 관심을 갖는 ‘꿀벌 실종 사건’이다. 부부가 키우는 벌통의 벌들이 사라진다. 남편은 비행기 소음과 공중 전파 때문에 벌들이 놀라 사라졌다며 연방항공우주국에 민원을 제기하지만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한다. 급기야 백악관으로 편지를 보낸다.

대통령은 “벌이 죽으면 식물도, 사람도 모두 죽는다. 식물 중 80%가 벌의 수분에 의해 열매를 맺는다”며 참모 둘에게 중책을 맡긴다. 이들이 양봉 농가에서 감춰둔 로얄젤리 덩어리를 찾아내자 장본인인 부인이 실토한다. 남편이 벌에게 시간을 다 뺏겨 남편을 찾고자 벌들의 먹이를 빼앗아단다. 한편 남편은 사슴이 맛있는 여러 먹이 중 장미만 먹어치워 장미에게 살충제를 뿌렸다던가.

‘꿀벌의 실종 사건’을 집단지성에 호소하는 작가의 시도는 창대했으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듯 부부 갈등으로 종결한 작가의 얄미움이 밉지는 않았다.

‘슬퍼할 겨를도 없는, 부지런한 꿀벌’이 줄어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꿀벌에 기생하는 천적 해충인 응애가 급증해 일부 양봉 농가에서 살충제를 많이 뿌린데다 겨울 날씨까지 따뜻해지면서 꿀벌의 생존환경이 열악해졌다. 최대 밀원인 아카시아 꽃이 피는 시기인 5~6월에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부는 저온현상이 나타났다.

벌 하는 사람들은 5월 5~6일쯤 피는 꽃을 제일 좋아한다. 벌은 밖이 따뜻하면 본능적으로 벌통 밖으로 나와 일을 하려고 한다. 따뜻한 줄 알고 나왔는데 기온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아침에 보면 벌이 꽃 속에서 자고 있다가 죽고…. 벌은 너무나도 약해, 조금만 추워도 못 날게 된다. 결국 이상기상→면역 약화→병해충→이상기상이라는 ‘악재의 연결고리’가 꿀벌 실종 사건을 초래한 것이다.

이렇게 얽혀있는 고리 중 하나만 끊어줘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끊을 수 있는 고리는 ‘응애 방재’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꿀벌이 폐사하는 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기후변화로 꿀벌이 실종되는 환경에서는 인간도 잘 살기 어렵다. 모든 위기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꿀벌 감소를 막기 위해 꿀벌호텔과 정류장을 도입했다. 서울도 도심 곳곳에 곤충호텔을 만들어 보급중이고 코스타리카는 꿀벌에게 시민권을 주고 도심 녹지공간을 꿀벌의 안식처와 통로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독일은 곤충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야간 조명을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고, 영국은 야생화를 심어서 꿀벌 친화적인 생태통로를 만들었다. 충청남도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밀월수를 600만 그루 넘게 심었다. 이렇듯 전 세계가 꿀벌을 돕는다.

앞서 벌들은 5월 5~6일쯤 피는 꽃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마침 5월 10일 취임하는 새 정부 대통령은 “오는 5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벌의 날’입니다. 해마다 사라지는 벌들을 살리기 위해 남북 공동대응이 절실 합니다”며 북한에 먼저 손을 내미는 건 어떨 런지요. 이러다가 설마 꿀벌 세계에도 ‘지정생존자’를 지명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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