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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공공미술관 건립으로 품격 있는 도시 만들자”권진상 미학박사

전문적인 미술관 시설이 전무
원활한 전시회 가질 수 없어
높은 안목을 갖춘 군민들의
감상욕구 충족에 모자란 상황

거창에 공공미술관이 건립되면
문화·예술·역사·사회에 대한
인식과 통찰력 심어줄 수 있어

백악관 앞에서 권진상 미학박사.

미국의 심장부이자 수도인 워싱턴DC는 백악관을 중심으로 공원화된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국립미술관과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그리고 이곳은 중세의 작품으로부터 르네상스 시대와 인상주의 그리고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컬렉션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21세기 글로컬리즘(glocalism·세계화와 지역화의 장점을 한데 버무린 개념)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의 주인으로서 거창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는 앞으로 어떤 미래의 거창을 생각할 수 있는가.

문화가 도시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문화예술이 곧 혁신의 주요 기능으로서 문화민주주의 지평을 넓혀간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전 지구적으로 경쟁력 있는 도시를 발전시키기 위해 시민사회와 행정기관이 소통하여 문화예술을 통해 도시와 국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분주한 분위기다.

메트로미술관은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곳이며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리하고 있다. 뉴욕 여행의 필수 명소이다. 이곳에는 세계 각 지역의 유물과 예술품이 약 200만점 전시되어 있다. <사진: 권진상>

필자는 이러한 세계적인 문화민주주의의 거대한 흐름 속에 우리 지역의 도시문화 발전 방향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동시대는 문화예술 진흥을 통해 국가와 지방정부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정책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문화민주주의의 철학이 일상에 스며든 상황에서 문화도시, 창조도시, 컬쳐노믹스(culturenomics·문화가 갖고 있는 경제적인 가치)라는 개념으로 문화예술을 통해 도시와 국가의 가치를 제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거대한 도시 계획과 발전에 대한 이해보다는 우리 거창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그 도시를 지탱하는 인문학적인 가치이듯이 거창은 거창의 지역문화와 예술 자원이 결합하여 경쟁력 있는 도시로 탈바꿈하고 재생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원형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통해 거창이 간직하고 있는 고유한 예술문화의 원형가치와 정체성을 발굴해야 한다. 그것은 전통과 풍물 그리고 생활, 나아가 예술과 인문지리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지역문화의 원형을 발굴하고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문화행정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문화창조자와 소비자, 그리고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정책 입안으로 수립된 문화정책을 도시문화 발전을 위한 탄력적인 행정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워싱턴 국립미술관.
로댕 ‘칼레의 시민’.

행정은 문화예술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한 지역 간 균등한 보급과 문화예술 분야의 우수한 창작을 지원하고 문화의 가치를 높여나가야 한다. 정부의 행정에 관리감독을 받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탄력적인 자율성을 기반으로 지역주민의 문화복지가 어떠한지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할 시점이다. 지역의 청소년부터 시니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전문가와 예술애호가들을 위한 인프라와 문화복지가 그들의 욕구에 부응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전국적으로 진행되던 예술문화 공간을 재창조하는 프로젝트가 우리 지역에서도 한창 진행 중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지역의 특성과 어느 정도의 한계를 감안할 때 다행스러운 일이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시작되고 거창이 예술문화의 도시를 표방한 지 27년이 경과하고 있는 시점이다. 그리고 지역의 문화예술 인적 인프라가 어느 시·군보다도 월등히 잘 갖춰진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미술관 건립이 요청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분위기일 것이다. 공공미술관 건립을 위해 수렴해야 할 관계자들은 주민과 창작자, 미술단체와 교육기관 그리고 지역의 구성원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공공미술관 건립의 목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지역의 예술문화자산으로서 예술작품의 컬렉션을 소장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예술작품에 대한 가치를 발굴하고 학술적으로 정립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전문강좌 세미나 개최 등 교육의 기능과 국내 국외의 작가들이 작품 전시회를 할 수 있고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품격 있는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거창군민과 거창을 찾는 국민 누구나 이곳을 찾고 교육과 감상 그리고 문화예술 토론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최근 들어 미술관은 사회적 접촉의 공간, 사회적 정의의 중심지, 심지어는 방문자들의 학습과 관계되어 실험, 발명, 혁신을 위한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 미술관은 친구, 가족, 직장동료 등이 함께 와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소통하는 공론의 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들어 문화자본 권력에 의한 차별화된 사회를 비판했다. 말하자면 부르디외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재생산하는 문화권력을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문화민주주의 개념에서 모든 사람에 의해 누구든 능동적인 주체로 참여하고, 문화예술의 향유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다시 현실로 돌아가 거창지역의 전문 전시공간 인프라에 대해 살펴보자. 거창은 전문적인 미술관 시설이 전무하고, 전공인과 생활예술인들이 원활하게 전시회를 가질 수 없으며 높은 안목을 갖춘 군민들의 감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다.

거창문화센터에 있는 전시장은 작품 반입과 반출이 지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둥이 공간을 분할시키고 있으므로 전문 갤러리 기능을 하지 못한다. 거창의 다양한 미술단체와 미술동아리와 미술작가, 문학작가, 사진작가 그리고 생활예술인들이 연간 창작한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으로 카페나 찻집을 임대하여 전시회를 하는 실정이다.

멀리 외국의 경우를 차지하더라도 한국의 강원도 영월군의 문화예술 정책을 살펴보자. 영월군은 1990년대 광산과 발전소 폐쇄에 따라 2010년 ‘꿈과 희망이 있는 창조도시 영월’을 표방하였다. 인구 4만명 남짓 안되는 영월군이 2008년부터 박물관 고을 특구사업을 추진하여 폐교 및 폐건물을 활용한 인도박물관, 아프리카박물관, 김삿갓박물관 등 박물관 사업을 추진하였고 2016년 당시 26개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영월군은 왜 박물관과 미술관을 짓고 있는가.

뮤지엄은 예술적인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고전과 현대 예술의 다양성을 일반대중에게 제공하고 예술의 심미안을 높일 수 있는 장이다. 그리고 창조와 감수성 교육의 장으로서 예술 활동을 통해 창작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또 시민교양강좌, 체험 실습 참여프로그램, 문예아카데미 등도 개설할 수 있다.

거창에 공공미술관이 건립된다면 초·중·고 및 대학교와 연계하여 청소년 교육에 힘쓰고 주기적으로 교사와 교수를 초빙하여 뮤지엄의 소장품과 학교의 교과과정을 연계하여 문화와 예술,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인식과 통찰력을 심어줄 수 있다.

노엘 캐럴 교수의 심포지엄.

필자는 몇 년 전 여름 국제미학자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f Aes-thetics·ICA)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미학자 노엘 캐럴 교수(뉴욕시립대)를 만난 적이 있다. 서적을 통해서 그의 예술철학을 읽었을 뿐이었지만 학회에서 자유롭게 미학과 예술의 세계에 대하여 식견을 듣고 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캐럴 교수는 어느 미학자의 발제에 대한 질문을 겸하여 클래식 아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오리지넬리티의 영원함과 원본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작가의 예술철학이 담긴 작품은 아무리 영화와 인쇄가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영혼이 담긴 것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고 했다. 앞으로 거창에도 공공미술관이 건립되어 인간의 영혼과 예술성이 담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얼마나 좋을까?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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