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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임미자
한우자 시인.

이십대 초반에 만나 사십여 년을 함께 한 내 친구 임미자! 나와 이름도 비슷하고 생일이 한 달 차이다. 그녀는 모과처럼 향기 있고 진실하며 사려 깊은 친구다. 스물두 살적 서울에서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의 손엔 항상 책이 들려있었고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늘 책을 읽었다. 그녀는 지금도 나에게 책을 선물한다. 보통 두 권을 사서 한 권을 내게 주곤 한다.

그녀는 요즘 보기 드문 한결같은 사람이다. 육십이 넘는 나이지만 소녀 같은 순수함을 지녔고 무엇보다도 칭찬하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을 결코 비난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가 누구를 나쁘게 말하는 걸 보거나 듣지 못했다. 흔히 있을법한 비난의 대상에 대해서도 침묵하며 말을 아끼고 상대의 좋은 것만 보고 칭찬했다. 그녀는 매사 긍정적이고 타인의 아픔과 기쁨에 마음을 다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긴 세월 동안 얼굴 한 번 붉힌 적이 없다.

스물일곱에 결혼하여 창원에 살게 된 그녀는 서울에 올라오면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퇴근 후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고 우린 인사동엘 자주 갔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그녀의 친정집에 가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곤 했다. 그때마다 함박웃음으로 반기시던 어머니와 동생 미순이도 참 보고 싶다. 지금은 어머니가 아흔이 훨씬 넘으셨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창원에 오셨을 때 두어 번 우리 집으로 모신 적이 있다. 그땐 많이 어설펐는데 지금은 좀 숙련되었으니 그때보다는 더 맛깔난 반찬과 살림 솜씨로 정성껏 모시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친구의 말을 들으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영상통화로 어머니를 뵐 때마다 이젠 많이 연로하셔서 마음 한 구석이 아프다. 친구와 만나면 거의 빠짐없이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그때마다 나를 바꿔주어 수십 년이 지나도 멀지 않게 어머니의 근황을 알고 있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우자야, 반갑다. 우리 미자 좀 잘 부탁한다. 미자와 형제처럼 잘 지내거라.’고 하셨다. 친구가 내게 어머니와 통화를 하도록 하는 것은 예전의 나처럼 ‘엄마, 걱정하지 마, 난 친구도 곁에 있어!’ 라는 의미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나도 친정어머니가 살아계실 땐 줄곧 친구의 목소리를 들려드리곤 했다. 그때 내 마음이 그랬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겐 친구가 곁에 있어요.’라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 말씀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고 이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많이 생각났다. 어머니가 부디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우리 곁에 계시면 좋겠다.

내가 창원으로 내려 온 것은 오로지 그녀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고 싶어 망설임 없이 내려왔다. 그녀의 심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부모님도 걱정하지 않고 허락하셨다. 사람을 쉽게 사귀진 않지만 좋은 만남은 아주 오래도록 맺어오는 내게 그녀는 귀한 보석 같은 존재다.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각자의 장점을 귀하게 인정하며 항상 가슴으로 만남이 우리사이 비결인 것 같다.

‘친구야, 고마워! 덕분에 잘 살았다. 남은 날들도 우리 행복하자.’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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