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들었다. 김 대통령은 이제 달이 되고, 별이 되어 역사의 안길로 사라졌지만 그의 업적과 정책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유지를 잇는 일은 남은 자들의 몫이 되었다.

독재와 맞선 야당 정치인으로, 민주화를 앞당긴 대통령으로, 평화와 인권을 지킨 큰 지도자로 숱한 죽음의 고비에서 85년간 ‘인동초’ 같은 삶을 살아오며 그간 남긴 유지는 “화해와 용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 달라”는 것이었다.

국민적 애도와 추모 물결 속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묘역에 안장되는 날,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많은 국민이 커다란 슬픔과 상실감으로 옷깃을 여몄다. 또 김 대통령의 삶을 되새기고 명복을 빌었다.

세계인의 기억 속에도 그는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남아 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그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한 위대한 인물’이라고 했고, 미국 보수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을 군부독재 체제에서 민주주의의 본고장으로 만든 사람’이라고 꼽았다.

그러나 나라 안팎을 막론하고 그의 이런 영웅적 삶을 떠받쳐온 것이 바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소망하고 자신을 낮추는 삶의 자세였음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자신을 사형대에 세우려는 이들을 저주하고 보복하기는커녕, 그들을 용서하고 화해했다. 이를 위해 그는 늘 자신의 하느님께 용서를 위한 용기와 힘을 간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장은 잠자던 우리 사회를 새로이 일깨우고 있다. 그가 평생 추구해온 민주주의와 남북화해는 이제 온 국민의 가슴 속에 밀쳐놓을 수 없는 화두로 재 부상했다. 정파와 이념을 떠나 질식할 듯한 민주주의를 다시 꽃피우고, 허우적거리는 민생을 보듬으며, 얼어붙은 남북관계는 해빙을 맞는 계기가 되고 있다.

별이 지면 신 새벽이 멀지 않고, 달이 지면 여명이 다가올 것임을 우리는 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로 시작된 우리의 이 비통한 마음은 간절한 사모의 정에서 비롯된 것일 뿐, 절망과 좌절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저마다 가진 힘과 역량과 지혜를 모아 민주주의 새로운 행진을 시작할 것이다. 도도한 행진은 정의가 되어 강물을 이룰 것이다.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한다는 그가 남긴 유지, 이것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서부경남신문  webmaster@seobunews.com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