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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여행
홍혜정 산청 생비량면 거주, 산청지리산도서관 글쓰기 회원.

내 삶에 있어 소중하면서도 감사한 여행이 있다.

해마다 남편과 떠나는 여행이다. 8월말에서 9월초 사이에 우리는 아버지 산소에 벌초하러 간다. 남편과 결혼하고 30년간 벌초여행을 하고 있다. 산소가 서해안에 있어 1박2일로 다녀와야 한다. 늦은 밤에 출발하면 이른 새벽녘에야 도착한다.

아버지 산소는 충남 서산군 고북면이라는 곳에 있다. 서산은 외가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외가 친지들 모두 세상을 떠나 찾아가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이 돼버렸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돌아가셨다.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 모습은 김 서린 거울에 비치는 것처럼 흐릿하다. 어렴풋하게나마 아버지가 목마를 태워주셨던 기억이 난다. 수염이 많은 아버지가 나를 목에 태우시고 고개를 돌리면 다리 사이에 까끌까끌한 수염이 스쳐서 참 싫었다. 한밤중에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서 일어나면 아버지가 나를 안아 쉬쉬 소리를 내시며 손수 오줌을 뉘어주던 기억도 난다. 아버지와의 기억은 그것뿐이다.

우리 가족은 서울에 살았는데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는 요양 차 외가인 서산에 내려가서 지내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시고 그곳에 묻히셨다. 그렇게 우리의 벌초여행이 시작되었다.

언젠가 가족모임에서 아버지 산소를 없애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반대했다. 어머니마저 화장해서 흩뿌린 마당에 유일하게 찾아갈 곳은 아버지 산소였다. 어쩌면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나마 아버지를 찾아뵐 수 있어서 좋다. 다행인 것은 남편이 흔쾌히 이 여행에 동참해준다는 것이다.

산소에 도착하면 남편은 벌초를 시작한다. 별초가 끝나면 간단하게 상을 차리고 아버지께 절을 올리고 내려온다. 말없이 꾸준히 그렇게 해주는 남편이 너무 고맙다.

돌아오는 길에 주변을 둘러보고 맛집을 찾아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노래가사로만 알던 만리포도 가봤고, 수덕사와 온양온천, 개심사도 가봤다. 바다 위에 섬처럼 떠있는 간월암과 천주교 성지인 해미읍성, 관촉사, 부여와 공주 등 셀 수 없는 곳을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로 인해 우리가족은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편은 장인어른 얼굴도 모르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항상 말한다. 작년에는 아들도 동행했다. 뭐, 여행이 좋은 것만 있겠나. 별초 가는 길도 여행 삼아 가면 좋은 여행이지.

산소가 멀리 있어서 1년에 한 번 떠난다. 이 여행이 언제까지 될지 모르지만 남편은 힘이 될 때까지는 하겠노라 한다. 우리의 벌초여행이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라본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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