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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에 올라
정동근 산청군 단성면 석대마을 거주, 한국국토정보공사 산청지사장 퇴임.

이층 다락방에 올라가 작은문을 열면 한 평 가량의 발코니가 있다. 거기 서서 별빛 가득한 밤하늘 먼 곳을 바라보며 나에게도 빛나는 저 별들처럼 화려한 날들이 있었는지 더듬어본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음악시간에 ‘나무’라는 동요를 앞에 나와서 불렀는데 노래를 들은 선생님께서 곧 바로 합창단에 넣어주셨다. 이후 5학년 때까지 교내는 물론 각종대회에 참가하여 상을 받았다. 어떤 대회 때는 하얀 셔츠에 까만 반바지를 입어야 했는데 선생님이 사주신 적도 있었다. 공납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 오자마자 거의 복도에서 손을 들고 벌을 섰다. 집에서는 학교 간다고 나와서 결석도 자주 했지만 노래만큼은 정말 하고 싶었다. 중학교 일학년 추수감사절에 열린 교내 합창대회에서 지휘자상을 받은 적도 있다.

성년이 되어 성당에 다니면서 성가대도 꾸준하게 했고, 지금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성지순례 도중 겟세마니 성당에 갔었다. 성당 내부 울림이 너무 좋아 성가의 효과가 배로 난다는 안내자의 말에 신부님 권유로 끌려 나갔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로 꽉 채워진 곳에서 떨면서 불렀던 성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음악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이론은 잘 알지 못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행운이고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친구들과 섬에 낚시를 갔다가 새벽에 수평선을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를 보았을 때다. 끝도 없는 이 바다와 하얀 파도, 내 뒤로는 단풍 가득한 붉은 산이 우뚝 서있다. 배를 타고 가는 옆에 돌고래 떼가 따라오면서 내게 인사를 한다. 넓고 쭉 뻗은 가로수, 웅장한 다리와 터널, 저 푸른 하늘과 구름과 바람, 아! 세상 모든 것이 오로지 나를 위한 세트장이었다. 달이 바뀌면 달력은 고스란히 새로운 한 달을 준비해서 내 앞에 내어놓는다. 나는 다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저녁이면 책속에서 다른 사람이 가르쳐주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알아간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어쩌면 나는 매일을 행복하게 살아온 주인공이었는지 모른다. 다만 슬픔을 걷어내는 일이 서툴러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가끔 옛 일을 떠올리다 보면 그때는 참 고생이었다 싶었는데도 지금에 와서는 그리운 시절이었음을 깨닫는다. 먼 훗날에는 지금 이 순간 또한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어느덧 해가 지고 다락방 불은 더 환해졌다. 지나간 시간들을 그리면서 지금의 행복을 만들어간다. 내일 아침에 이웃들과 멀리 월출산에 오를 계획이다. 그 기암괴석과 출렁다리에서 일어날 많은 일들도 먼 내일에 기억될 그리움이 될 것이기에 지치고 힘든 산행마저도 알찬 여행으로 만들어야겠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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