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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정치에 대한 분노는 사회제도 개혁으로 이어져”

연암 박지원 학술대회 열려
안의현감 시절 행적과 문학
주제발표로 실학사상 되새겨

안의는 ‘열하일기’에 기록한
실용적 문명 실천하는 과정

조선후기의 실학자이자 대문장가인 연암을 기리는 ‘함양연암문화제’에서 ‘안의현감 시절 박지원의 행적과 문학작품’ 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 연암은 1791~1796년까지 안의현감을 지냈으며, 이곳 안의에서 ‘열하일기’에 기록한 수차·베틀·물레방아 등 실용적인 문명을 실천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대문장가인 연암 박지원(1737~1805).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당시 허위의식에 빠진 세태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또한 당시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였던 북학의 선두주자였다.

연암은 30세가 넘어 초시에 장원급제하고 영조의 주목을 받았으나, 그 후 시험에서는 백지 답안지를 제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연암이란 호는 주거지에서 따왔다.

박지원의 대표작 ‘열하일기’는 1780년(정조 4) 음력 5월말 압록강을 건넌 뒤 북경을 거쳐 열하, 그리고 다시 북경을 거쳐 10월말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약 5개월의 기간 동안 청나라의 실상을 직접 목격하고, 이를 생생하게 기록한 여행기다.

열하일기가 수많은 연행록들 가운데 우수한 작품으로 꼽히는 이유는 단순히 날짜별 여행일지가 아닌 인물, 사건 등을 중심으로 시화·잡록·필담 등 다양하게 구성됐기 때문이다. 연암은 열하일기를 통해 상업이 발달한 청나라의 문물을 다각도로 증언하며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개혁할 구체적 방안들을 제시했다.

박지원은 1786년에 뒤늦게 음사(蔭仕)로 선공감감역에 제수된 것을 필두로 55세인 1791년(정조 15) 음력 12월 22일 경상도 안의현감에 제수되어 1월 임지에 도착했다. 1796년 3월 안의현감에서 물러난 박지원은 61세에 면천군수(충청도), 64세에 양양부사(강원도)를 지냈지만 그의 모든 업적은 안의에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6년 5월 옛 안의현의 동헌이었던 안의초등학교에 박지원 선생의 사적비를 건립했다.

안의현감으로 재직하던 당시 고을 내 노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베풀어 효의식을 고양시키고, 옥사를 관대하게 처리했으며, 백성들의 구휼에도 주력했다. 특히 각종 수차·베틀·물레방아 등을 제작하여 사용했고, 하풍죽로당·연상각·공작관 등의 중국식 건물을 지었다. 안의는 연암이 ‘열하일기’에 기록한 중국의 실용적인 문명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안의라는 작은 마을의 현감이란 자리에 만족했다. 연암은 “나는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마치 중국 어느 시대의 제후가 된 기분이다. 이 고장에는 관심을 가져야할 가구가 5000가구나 된다. 넉넉한 것은 덜어 부족한 것을 채우고 부족한 것은 궁리하고 갈고닦아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있단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 같은 부족한 사람도 감히 제후를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함양에서는 박지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연암문화제를 열고 있다. 올해로 19회째를 맞이하는 ‘함양연암문화제’는 지난달 27일 함양군 안의면 봄날센터에서 ‘안의현감 시절 박지원의 행적과 문학작품’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김윤수 지리산문학관장이 사회를 보고, 김영진 성균관대 학문학과 교수가 주제 발표했다.

토론회에는 연암 선생의 반남박씨 종중을 비롯해 이창규 함양연암문화제 위원장, 정광석 사무국장, 김윤수 학술위원장, 신왕용 안의향교 전교, 김경두 성균관유도회 안의지부장, 조대형·백원택 전 전교, 이동원 전 안의중학교 교장, 정은남 안의초등학교 교장, 윤학송 함양평통위원장, 정대훈 전 함양군 기획감사실장, 전일옥 함양군 문화관광과장, 정우석 안의면장 등 50여명이 참여했다.

이창규 연암문화제 위원장은 “연암문화제는 지난 2020년부터 함양군 행사로 격상되어 치루고 있다”며 “이곳 안의에서 이용후생의 정신과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다양한 실학사상을 펼친 그의 업적을 이어받고자 기념관 사업을 위한 ‘연암기념사업추진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학술발표 대회에서 있었던 김영진 성균관대 학문학과 교수의 주제발표를 발췌해 게재한다.

박지원의 안의현감 시절

연암 박지원 초상. 박지원의 손자인 박주수 그림. 경기문화재단 소장.

대부분의 연암 연구자들은 박지원의 생애구분을 보통 4시기로 하지만, 크게 보자면 재야지식인으로서의 시기와 1786년 음직으로 선공감 감역에 첫 출사를 한 이래 지방관(안의현감, 면천군수, 양양부사)의 삶으로 대변할 수 있겠다.

연암이 1767~1773년 30대 초반 백탑주변에 10여명의 제자, 10여명의 불우한 후배 지식인들과 의기투합하여 이른바 ‘연암그룹’을 형성하여 박제가·이서구·유득공·홍대용·이덕무 등과 열렬한 학술문학의 토론을 벌이던 때와 안의현이라는 조선 최고의 풍광 좋은 고을에서 자신의 평생 지식을 펼쳐보였던 때, 이 두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안의현감 시절 박지원에게 가장 큰 행적은 자신의 시문 잡록들을 성책(成冊)하여 정리한 것을 들 수 있다. 연암은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산문을 소집(小集) 형태로 꽤 많이 만들었고, 지인들 사이에서 유통·열독 되었다.

연암이 안의현감에 부임한지 1년이 되던 즈음에 국왕 정조로부터 열하일기가 문체반정의 주 표적이 되었다. 정조는 “열하일기는 내가 이미 읽어보았다. 다시 아정(雅正)한 글을 짓되 편질이 열하일기와 비슷하고, 열하일기처럼 회자될 수 있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벌을 내릴 것이다”고 했다.

유득공은 이때의 상황을 자신의 필기 속에 남겨 놓았지만, 당시 어전에서 남공철은 정조의 말을 직접 듣고 곧바로 연암에게 우려를 표하고 대책을 빨리 마련하라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연암은 그 답장에서 정중한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그동안의 상황은 박종채의 ‘과정록’에도 쓰여 있다. 어쨌거나 연암은 자송(自訟)으로서의 글을 바치지 않았으나 불시에 문집을 드리라는 정조의 명을 우려하여 이때, 그에 대비한 산문선집을 만들었고 그것이 ‘연상각집’이다.

‘연상각집’은 연암이 스스로 총정리해서 뽑은 문집이다. 1793~1794년 여러 벗들이 안의를 방문했을 때 바로 ‘연상각집’ 계열의 필사본들을 열람하고, 거기에 직접 평하는 말들을 남긴 것이다.

박지원의 문집 ‘연암집’은 문체별 분류가 아니 소집(小集)별 분류로 되어있는 아주 특이한 구성인데 이는 연암 본인이 만년에 스스로 순정작 또는 득의작이라고 여긴 작품들을 위주로 뽑아놓은 것이기에 그 사후 아들들이 ‘연상각집’의 비중을 고려해 소집을 해체, 재편하지 않은 채 그대로 소집별로 묶은 것이다.

생명과 인간에 대한 존중

김영진 성균관대 학문학과 교수의 ‘안의현감 시절 박지원의 행적과 문학작품’ 주제강연. <사진: 서부경남신문>

‘연암집’은 박지원의 사후 차남 박종채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문이 수습, 편차되는데 아버지의 일생을 기술한 ‘과정록’이 집필되던 1822~1826년 즈음에는 ‘연암집’의 편차가 거의 갖추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829년 가을 효명세자의 명에 응하여 ‘연암집’ 55권(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을 올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늦어도 1829년 이전에 편찬이 1차 완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

후손가장본(後孫家藏本) ‘연암집’에는 권 56에 고반당비장(考槃堂秘藏), 권 57에 암화계수일(庵畵溪蒐逸)이 더 수록되어 있어 이 두 권은 1829년 이후에 추가 편집된 것임을 보여준다. 박종채의 ‘연암집’ 편찬 작업에는 ‘종북소선(鐘北小選)’을 비롯하여 박지원 당대에 편집, 필사된 책들이 이용되었으며, 그때 쓰인 서명(書名)을 박종채가 그대로 쓰면서 원(原) 소집(小集)에 없던 작품들을 추가하였음을 확인했다.

연암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30토에도 안의현에서의 일상과 소회도 늘어나고 있다. 심노숭이 1798년 채록한 숙분별세(宿忿別世)의 일화는 연암이 초·장년기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부조리한 현실 세태에 대한 분노가 결코 사그라지지 않은 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가 그토록 분노한 현실은 결국 민생으로부터 여러 가지 사회제도에 대한 개혁, 생명과 인간에 대한 존중, 국제정세에 대한 열린 시각이었고, 근대로 향하는 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영철 기자  achimst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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