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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문학상 신정민 시인 선정, 최치원문학상은 최은여

신정민 ‘확보’ 등 4편 확정
고른 수준과 안정감 돋보여

최은여 ‘머그컵’ 등 4편 응모
아주 오래된 서정을 끌어올려

올해로 17회째를 맞는 ‘지리산문학제’ 시상식이 22일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시상금 1000만원인 지리산문학상은 신정민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했고, 최치원신인문학상에는 최은여 시인이 뽑혔다. <사진: 지리산문학회>

올해로 17회째를 맞는 지리산문학상에 신정민 시인이 선정됐다.

지리산문학회와 계간 ‘시산맥’은 지난 22일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제17회 ‘지리산문학제’에서 시상할 지리산문학상에 신정민(61·여) 시인이 선정됐으며, 수상작으로 ‘확보’ 등 5편이 최종 확정됐다고 밝혔다.

계간 ‘시산맥’과 ‘지리산문학회’가 공동 주관하는 지리산문학상은 시상금이 1000만원으로, 전국 시인들이 선망하는 대표 문학상으로 도약하고 있다.

이번 제17회 지리산문학상은 안도현 시인 등 심사위원들이 오랜 검토와 격론 끝에 신정민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했다.

신정민 시인은 전북 전주 출신으로 현재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 ‘저녁은 안녕이란 인사를 하지 않는다’ 외 4권이 있다. 2020년 최계락 문학상 수상,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현재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심사위원들은 “신정민 시인의 시집 한 권 분량은 고른 수준과 안정감이 돋보였으며 ‘대상을 묵묵히 견인해내는 인내력’은 모범의 것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시들 한편 진심을 다해 썼다는 미덕이 있었다. 일테면 ‘실존은 몸으로 익힌 건 잊히질 않는 것’이었고 ‘시는 결국 삶으로부터 발생하고 삶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고 심사배경을 밝혔다.

박철 지리산문학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지리산문학회>

모두 340여명이 응모한 최치원신인문학상에는 ‘머그컵’ 외 4편을 응모한 최은여(52·여) 시인이 수상했다. 최은여 시인은 이번 수상으로 계간 ‘시산맥’ 등단자로 인정된다. 최 시인은 경남 진주 출생으로 경상대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본심은 안도현 시인과 김륭, 유홍준 시인 등이 맡았으며 수상작품과 수상소감, 심사평 등은 계간 ‘시산맥’ 가을호와 지리산문학 동인지에 소개된다.

한편 지리산문학상은 시상 전년도 발표된 기성 시인들의 작품 및 시집을 대상으로 하는 심사제로 운영된다. 지리산문학상은 함양군과 ‘지리산문학회’가 제정해 첫해 정병근 시인으로부터 유종인 김왕노 정호승 최승자 이경림 고영민 홍일표 김륭 류인서 박지웅 김상미 정윤천 조정인 김참 오늘 시인 등이 수상했으며 엄정한 객관성 확보를 통해 전국적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리산문학제’를 주관해온 지리산문학회는 올해로 결성 60년을 맞는 중량감 있는 동인회로 성장했다. 함양과 지리산 지역을 중심으로 문학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며 매년 ‘지리산문학’ 동인지를 발행해왔다. 문학회는 그동안 문병우 정태화 권갑점 박철 등의 시인과 노가원 곽성근 작가, 정종화 동화작가, 박환일 문학평론가 등을 배출했다.

확보

- 신정민
 

고라니가 지나갔다

진흙은 발자국의 깊이를 가늠하고 있었고 나는
깨진 체온계의 수은이 구슬처럼 굴러다니던 아침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주워 담을 수 없게 된 날이었다

혹, 고라니의 발자국을 지워버린 곳곳의 웅덩이가 사라진 숲의 홀로그램이라면

그날 아침 숲에서 사라진 건 고라니인가 알 수 없는 슬픔인가 그날 그 숲의 흔적이 숲의 체온이라면 숲은 어떤 속도로 회복되는가
흙탕물이 가라앉는다
늪에 던져진 돌멩이를 잠시 피했다 모여드는 개구리밥처럼

그러니까 이미 지나가 버린 고라니의 발자국은 알 수 없는 이곳과 저곳 사이에서 나타나는 간섭무늬
그래서 고라니는 비가 내린 숲 여기저기 발자국을 남겼던 것

밟힌 풀들이 일어서는
그만큼의 발자국 아직도 고라니인가
생각에 잠긴 진흙 한 줌

그날은
삼백 년 전 한 남자가
한 소녀의 꿈에 나타나 자신이 묻혀 있는 곳을 상세히 알려주던 날이었는데 나는 체온을 재다 말고 까르르 까르르 달아나는 구슬을 따라다녔다

붙잡을 수 없는 아침 숲 어딘가에 본 적 없는 고라니가 있었다

 

<수상소감>

신정민 시인.

수상자가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고향에 갈 때마다 바라보았던 지리산의 이름으로 큰 상을 받게 되어 더욱 영광스러웠습니다. ‘‘내게도 이런 영광이 올 수 있을까’ 품었던 마음이 있었기에 이 뜻 깊은 상이 뜻밖의 결과라고 하면 조금은 거짓말일 수도 있겠습니다. 혹시나, 하고 바랬던 꿈같은 일, 분에 넘치는 이 상이 제게 주어져서 감사하고, 기쁘고, 살짝 두렵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시 앞에선 언제나 쩔쩔매지만 시 또한 더불어 사는 삶이니 세상을 향해 무엇을 외칠 것인지 고민해보겠습니다. 보답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그랬듯 시작해보겠습니다. 이번 저의 수상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줄 문우들, 끌 동인들과도 이 기쁨을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머그컵

- 최은여


앵두를 줍는다

나와 앵두는 소나기를 맞았다
앵두는 떨어지고 나는 떨어지지 않았다

앵두는 깨끗해졌다
우리의 이마는 닮았다
빗줄기 하나가 앵두를 겨냥해 때릴 때
저항 없이 공중에서 조금 머물다 내려앉는다
푸른 잎을 끌어안고 내려앉는다

낙하의 끝은 안전하다
공처럼 튀어 오르지 않고 공처럼 구른다
시멘트 바닥은 나쁘지 않다
외상을 입지 않았다

앵두를 따라가던 내 무릎이 깨졌다
빨간 빗물이 짓물러 고였고
앵두처럼 통통해졌다

가득 찬 것은 주물러 터트리고 싶어진다
차오른 빗물을 세차게 밟는다
고였던 앵두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바닥이 앵두를 줍는다고 정신없이 내달린다

 

<수상소감>

최은여 시인.

시를 쓰는 몇 해 동안 제가 사는 작은 도시 서북쪽 우리 동네 하천가에는 벚꽃과 접시꽃이 여러 번 피고 지고 수양버들이 새로 심어졌습니다.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을 때 저는 예민해졌습니다. 하천 둑길에 서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시를 묻고 새가 불러주는 답을 받아 적었습니다. 자괴감에 빠져 있기도 하고 가끔 시적 흥분 상태에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남원시 운봉읍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에 다녀왔습니다. 서늘하고 고요한 시를 쓰겠습니다. 성실하고 미련한 글 노동자로 살겠습니다. 외롭고 고달픈 누군가가 서어나무 같은 시를 만나 편안히 쉬었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허물어 시인으로 빚어주신 ‘수요반’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시를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 안도현 선생님, 김륭 선생님, 유홍준 선생님께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씀드립니다. 시를 더 공부해도 된다는 허락으로 여기겠습니다.

 

이은정 기자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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