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영 산청군 삼장면 거주, 지리산행복글쓰기 회원.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풍금 소리와 함께 5·6학년 열여섯 명 아이들 노래 소리가 조용한 섬 바다로 흘러들었다.

오십여 명의 작은 도서학교라 세 명의 교사가 두 학년씩 가르치는 복식학급이었다. 분교장으로 6학년 두 명을 5학년 열네 명과 한 교실에서 가르치다보니, 두서가 어려운 짬뽕 수업이 되었다. 6학년 두 명을 세워두고 졸업식을 하는데 졸업식 노래가 되지 않고 울음바다로 대신한 것 같았다.

운동회 때는 학생 한 번, 학부모 한 번 게임을 하였고 달리기는 함께 하였다. 소풍도 학생, 학부모, 교사가 삼위일체가 되는 그야말로 참교육이 이루어지는 섬 학교였다. 내 의지대로 자연과 더불어 마음껏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보람 있었다.

5학년 중에 말수가 적고 늘 혼자 노는 용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부산에서 살다가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사는 가덕도 섬마을 장항분교로 전학을 왔었다. 용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조그마한 배로 노를 저어 그물로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애지중지한 손자 용이가 삶의 낙이요, 희망이었다.

매주 월요일은 저금하는 날이었다. 반장이 돈을 거둬 통장과 명단을 저금 보자기에 넣어 교무실로 가져왔다. 서무실 아저씨가 ‘천가면 우체국’에 가서 저금을 했다. 용이는 날마다 조개도 잡고 갯지렁이를 잡아서 팔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주는 용돈은 모두 저금을 했다. 용이가 부지런히 노력해서 번 돈으로 저금한 돈이 많이 쌓였다. 용이는 ‘저축성공사례’ 발표에 참가하여 경남에서 일등을 하였고 전국대회에 추천되었다.

배 타고,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서울구경을 하게 되었다. 발표연습을 많이 하여 웅변 연사처럼 제법 촌티를 벗어갔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시도 대표들이 조명을 받으며 저마다 다른 ‘저축 성공사례’를 특색 있게 발표하였다. 용이는 초등부 전국 일등을 하여 재무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잘 살아보자고 국가 주도로 저축을 장려하던 때라 성공사례 발표 일등의 위력은 대단했다. 중앙신문사, 방송사 기자들이 앞 다투어 취재를 하는 통에 섬아이는 저축 왕이 되어 전국으로 날아 다녔다. ‘MBC의 아침을 달리다’ ‘KBS의 뉴우스’, ‘문화공보부의 대한늬우스’로 연일 신문과 방송을 도배하고 촬영팀이 섬을 누볐다.

어린이날 특집 프로그램으로 청와대에 초청되었다. 용이와 나는 공항 검색대 같은 곳에서 몸수색 후 으리으리한 푸른 기와집 앞에 들어섰다. 소나무아래 잔디밭에서 대통령과 영부인을 만나 인사하고, 사진 찍고 놀이하고 정갈한 음식도 먹었다. 그 일로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용이를 보고, 헤어져 살던 엄마가 찾아와 아버지와 재결합하여 행복한 가정이 되었다. 용이는 저축으로 더 큰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 시절 극장에 가면 영화 상영 전에 ‘대한뉘우스’가 먼저 나왔다. 우리반 아이들과 노래하고 공부하는 모습이 대한뉘우스에 실려 전국에 방영되었다. 내 친구들은 나를 도지사(島地師)라 부르며 놀려댔다.

두 학년을 묶어서 3년간 복식 담임을 하면서 소인수학교 ‘복식학급 운영 조직연구’로 석사학위 논문을 발표하였고, 야학으로 중등학교 교사자격을 취득했고, 특수학교 교사 자격도 취득했다. 가덕도가 부산으로 편입되어 사상초등학교로 상륙하였다.

섬마을 선생 3년 생활을 한 가덕도 장항분교가 내 생애의 유토피아였다. 조개 줍고 해삼 잡던 섬 아이들 떠드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지금까지 귓가에 맴돌고 있다. 부산 신항 건설로 고향을 바다에 묻고 너희는 어디서 갈매기로 살고 있느냐?

‘보고 싶다. 용아!’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