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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고의 맛
신복희 산청군 단성면 거주.

나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맛있게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다. 과자류는 잘 체하기도 하여 되도록 먹지 않는다. 하지만 생애 최고 맛있게 먹었던 밀가루 음식이 있다.

마이카시대가 도래하던 1990년대 그 즈음이었다. 좀 이르게 자가용을 구매한 지인이 같이 놀러가자고 제안했다. 산을 좋아하는 우리는 속리산에 가기로 했다. 처음 가보는 자동차여행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침 이른 시간에 출발했다.

단풍이 다 져버린 11월 말경이었다. 텅 빈 들판과 낙엽 진 앙상한 풍경이었지만 여행은 즐거웠다. 한참을 달리다가 경치 좋은 곳에 차를 세웠다. 맑게 흐르는 강물과 갈대가 잘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가져간 음식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속리산 초입을 오후에 도착하여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차고 상쾌한 공기와 투명한 가을햇살을 받아가며 중간쯤 오르니 휴게소가 보였다. 한숨 돌리며 쉬는데 남편이 컵라면을 사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파는 물품은 비싸게 받을 텐데 왜 하필 라면을 사냐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컵라면을 사서 배낭에 넣었다.

우린 다시 열심히 걸어서 정상에 도착했다. 초겨울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남편은 정상 바위에서 버너에 불을 붙였다. 날씨가 추워서 물이 끓을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일행이 빙 둘러앉아 바람을 막고 손바닥으로 차가워진 휴대용가스를 문지르며 데웠다. 가까스로 끓인 물을 컵라면에 붓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추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겨우 익힌 컵라면을 한입 먹었다.

“음!”

국물 한 입 머금고는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어! 와! 음!”을 연발했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던 황홀한 맛이었다. 따끈한 국물은 몸속에서 바로 흡수되는 듯했다. 어찌나 맛있던지 차마 그 맛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옆을 돌아볼 틈 없이 폭풍 흡입하느라 네 명의 젓가락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순식간에 한 방울의 국물까지 남김없이 비워졌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붉은 노을이 하늘 가득이었다.

평소에는 소화가 되지 않아 입에 대지 않던 라면인데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후로 산이나 야외에 갈 때면 내가 먼저 라면을 챙긴다. 여러 번 산행에서 라면을 먹었지만 그때의 그 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날 먹었던 라면만큼 더 맛있는 음식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바람 불고 추웠던 속리산 정상에서 바라본 저녁노을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날의 라면 맛과 함께 내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있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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