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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국을 끓이다가
배정희 수필가.

가마솥에 곰국이 일곱 시간째 끓고 있다.

이글거리며 타는 불꽃을 나는 오래도록 멍하니 바라본다. 사그라지는 불꽃에 두툼한 장작 두어 개를 집어넣는 순간 화르르 불꽃이 다시 일어나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다. 십이월의 마당에서 느끼는 한기에 등이 썰렁하다가 아궁이 열기가 온몸을 데운다.

곰국을 끓일 때마다 친정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가족에게 곰국을 자주 내어주셨다. 연탄불에 솥을 얹고 오랜 시간 진한 국물이 우러나오게 거듭 끓였다. 사골과 잡뼈가 으스러지도록 끓이고 또 끓이셨다. 불순물 걷어낸 뽀얀 국물에 대파 송송 썰어 넣고 소금 간해서 밥을 말아먹으면 종일 배가 든든했다. 몇 끼 먹고 나서 국물에 질릴 때쯤이면 우리는 국그릇을 통째 물리기도 했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남긴 국물을 한 방울도 버리지 않으셨다. 곰국을 맛나게 드시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던 그 모습이 엊그제같이 선하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라서인지 나도 일 년에 두어 번은 꼭 곰국을 끓였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면 큰맘 먹고 소뼈를 사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끓여 온가족이 넉넉히 먹었다. 요즘은 아이들이 독립해 나가고 집에 둘만 남았으니 곰국 끓일 일도 줄었지만.

나에겐 잊을 수 없는 곰국이 있다. 오래 전 시어머님이 대학병원에서 병마와 싸우고 계실 때였다. 시어머님은 당신의 마지막을 감지하셨는지 자꾸만 퇴원을 독촉하셨다. 자식들 설득도 통하지 않았고 결국 퇴원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어머님이 퇴원하시면 드시게 곰국을 준비했다. 시댁에 먼저 와서 핏물을 뺀 우족과 잡뼈를 가마솥에 넣어 끓였다. 앰뷸런스를 타고 집으로 오신 어머님은 삼십여 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임종하셨다.

병마와 씨름하는 오랜 병실생활에서 얼마나 집에 오고 싶으셨을까. 가족과 함께 평생을 함께한 내 집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으셨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어머님은 가마솥에서 펄펄 끓던 곰국을 한 모금도 드시지 못하고 먼 길을 떠나셨고, 그날 끓인 곰국은 조문 오신 손님들께 대접하게 되었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님은 동갑이셨다. 사돈 간이지만 서로 편하게 지내셨고 서로 우대하셨다. 여장부같이 매사에 대범하신 친정어머니와 달리 시어머니는 체구가 작으셨고 조용한 분이셨다. 시어머님의 작고를 친정어머니는 누구보다 아쉬워하고 슬퍼하셨다.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시니 세월의 무상함에 안타까울 뿐이다.

돌이켜보면 곰국은 두 분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진한 사랑이다. 먹는 사람은 단순한 한 그릇이지만 준비하는 사람은 불 앞에서 시간과 노력에 정성을 쏟아야 진국이 우러나온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두 번째 고는 작업이 끝나간다. 먼저 끓여낸 국물과 섞어 식힐 것이다. 겨울방학을 맞은 외손녀가 우리 만날 날을 손꼽으며 기다린다니 절로 행복해진다. 가마솥 곰국과 함께 내 오랜 생각도 뭉근히 끓고 있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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