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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지간(父女之間)
노청한 재경 함양군 향우.

지난해 11월 첫째 딸이 “아빠! 나훈아 좋아 하제, 나훈아 콘서트 어때요?”라고 나를 떠보았다. 나도 모르게 “아빠 버킷리스트 10번쯤은 될 낀 데…” 라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동화가 따로 없듯 며칠 후 바람이 현실이 되었다. 딸 직장동료가 “그 정도 콘서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매진!’이라고 하는데. 올해 다 가기 전에 우리 운 빨 한번 시험해 보자”고 부추겼다. 둘이서 장난스럽게 ‘땅! 하는 순간’에 예매 접속했는데 우리 딸만 덜컥 걸렸다. 딸은 나에게 ‘나훈아 55주년 특별기획 콘서트 드림55, 2022년 12월 17일 토요일 오후 3시 올림픽체조경기장’ 딸 이름까지 박힌 플라스틱 티켓 2장을 보여주었다.

티켓 프로필을 보니 새삼스럽다. 우리 같은 70대의 아이돌 나훈아의 ‘상남자’ 이미지는 옛날 논산훈련소 ‘훈련병 나훈아’가 실내화를 들고 저녁 점호를 받던 그 나훈아와 다름이 없었다. 엊그제 방탄소년단(BTS) 진, ‘훈련병 김석진’ 군복차림 사진이 육군 5사단 공식 인터넷카페에 공개됐다. 이번에도 나는 신문 사진으로만 봤다. 두 사진의 공통점은?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팬들의 알권리, 성화를 달래는 소화기가 아니겠는가.

아내에게 딸의 분투를 보고했다. 입주하여 두 외손자를 돌보며 살림까지 도맡아 주말부부가 된 엄마 아빠에게 연말 선물로 콘서트 티켓을 어렵게 구했다며 ‘나훈아 구미’를 진지하게 물었다. 아내도 클래식 보다는 트롯이지만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꽥꽥 소리치는 콘서트는 질색’이라며 노탱큐, 사양했다. 하긴 지금도 외국영화나 미드만 고수하는 어부인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한담?’ 딸에게 ‘마음은 고맙지만 엄마아빠는 티켓 주인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1안으로 “애들은 우리가 봐 줄 테니 너희 부부가 다녀오느라”. 2안은 혼자 외롭게 사시는 바깥사돈을 아들이, 우리 사위가 모시고 가라. 부자지간에 저녁식사도 겸해 얼마나 좋으냐. 3안은 김포 사는 1살 아래 동생과 자매지간에 오랜만에 밖에서 뭉쳐봐라. 4안은 아빠와 큰아빠가… 어쩌고저쩌고.

분주하고 옥신각신한 나날 속에 공연일이 코앞이다. 몸을 쪼그라들게 하는 한파는 12년 전 내가 퇴직한 그때와 같다. 궁금하지만 “티켓 주인이 누가 되었냐?”고 물을 수기 없다. 겉으로는 담담했지만 불편한 심사를 알기라도 하듯 딸로부터 문자가 왔다. “아빠, 12월 17일 낮 12시 50분에 지하철역 타는 쪽에서 저랑 만나요. 점심 든든하게 드시고 오세요”

콘서트 끝나고 귀갓길에 딸이 신랑에게 시치미 뚝 떼고 “장인 모시고 당신이 콘서트 갔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웃돈 50만원을 얹어 줘도 그건 어렵다!”고 했다던가. ‘젊은 놈이…’ 하며 입안에 욕지거리가 돌았지만 어쩌겠는가. 나 역시도 그랬을 것이라며 꾸밈없이 속마음을 보인 사위에게 웃음이 나왔다. 나는 딸에게 “그놈이 오늘 장인 모시는 수고비 50만원에 기대이상의 콘서트 재미 50만원을 합해 100만원을 손해 봤다”고 했다. ‘친정 엄마’를 비롯하여 7곡의 신곡을 중간 중간 끼운 2시간 콘서트에 상기된 딸은 나보다도 후하게 10점 만점에 10점을 주었다. 나는 그날은 ‘급한 소변’ 기미도 없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콘서트는 중년 여성이 대세였다. ‘하하 호호’ 나누는 얘기들로 미루어 동창과 친구 사이가 많았다. 손녀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는 장면은 정겨웠다. 눈 씻고 봐도 ‘부녀지간’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막 40대가 되는 딸은 “트롯 공연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며 “캔 맥주를 한 모금씩 마시면 더 몰입했을 것”이라고 했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한건 아니지만 도둑 술은 규정에도 어긋나고, 소변도 겁나서… 이놈이 술까지도 아빠를 닮았구나!’

자녀들에게 ‘아빠, 아버지는 손님’이라고들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례를 옮겨본다. 유학간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내가 이렇게 유학까지 왔는데, 그동안 아버지께 제대로 감사해 본 적이 없다. 어머니만 부모 같았지 아버지는 늘 손님처럼 여겼다.

아들은 크게 후회하면서 오늘은 아버지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전화를 했다. 마침 아버지가 받았는데 받자마자 엄마 바꿔줄게 하신다. 밤낮 교환수 노릇만 했으니 자연스럽게 나온 대응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아니요, 오늘은 아버지하고 이야기하려고요. 그러자 아버지는 “왜, 돈 떨어졌냐?”고 묻더란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돈 주는 사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들은 다시 아버지께 큰 은혜를 받고도 너무 불효한 것 같아서 오늘은 아버지와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이에, 아버지는 “너, 술 마셨니?” 하더란다.

“딸아!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란한 연말에 아빠에게 설렘을 안겨주고, 시끄럽지 않게 아빠를 모시고 콘서트에 나선 그 쿨한 마음이 대견하구나. 오랜만에 부녀지간에 함께 외출하는 재미도 편안하더구나.”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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