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영 산청군 삼장면 거주.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보이지 않아 망설였다. 진주고등학교냐? 진주사범병설고등학교냐? 신문배달료와 먹던 쌀을 팔아 두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필기시험 합격통지서를 두 학교 모두 받았다. 그런데 왜 하필 같은 날 면접시험을 본단 말이야! 물어볼 사람도 없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다. 안식처였던 형님이 합천으로 사업장을 옮겨갔다. 친척집 문간방을 하나 얻어 자취하며 공부를 하였다. 진주중학교 3학년 때 다른 친구들은 영어, 수학, 국어 과외공부를 하는데 나는 기차역에서 신문을 수령하고 접었다. 100여 곳 시내 전반을 누비며 3시간을 배달하고 나면 밤 12시가 가까웠다. 고단한 몸으로 촛불을 켜고 공부하다 잠이 들어 불을 낼 뻔한 일도 있었다.

겨우 마련한 돈으로 두 곳에 원서를 사서 시험을 치렀다. 합격은 했건만 반기는 이는 없었다. 형편이 어려운 형님이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물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진주고등학교로 진학을 희망하였다. 형님은 취직도 어렵고 대학 갈 돈도 없으니 5년제 사범학교가 된다는 소문만 듣고 진주사범병설고등학교를 추천했고, 나도 동의했다. 2년 동안 스승 사(師)를 붙인 모자를 쓰고 사범학교 2, 3학년과 함께 같은 건물 같은 선생님에게 초등교사 교육과정을 배웠다.

사범학교 막내들이 졸업한 날 우리 학교는 ‘경남실업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고 모포도 ‘고(高)’자로 바뀌었다. 졸업할 때는 경남실업고등학교(인문계) 졸업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졸업장을 받았다. 3년간 진주사범학교에서 사범교육만 받았는데 실업학교는 무엇이며, 실업고교에 인문계 졸업이 또 무엇이란 말인가?

교육대학이 새로이 생겨서 경실고 졸업생 80%는 교육대학에 진학하여 교사가 되었다. 알고 보니 진주사범과 진주공고 사이 실고라는 임시간판을 단 기형학교를 만들어 놓았던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교육정책이었다.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 사범 병설 고등학생은 인근 인문고등학교로 전부 전학조치하였는데 진주와 같은 소도시 사범병설고등학교는 실업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끌어갔던 것이다. 1963학년도 졸업생이 단 1회뿐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1년 뒤 진주공고로 인가가 났다. 1961년 군사정권 초창기 교육정책 오류와 난맥으로 인문계 실업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사범학교는 3년 교육으로 교사를 하였고 교육대학은 2년 교육으로 교사가 되었다. 우리 경실고 학생은 사범 3년, 교대 2년으로 총 5년간 사범교육을 받고 교사에 임하였다. 어느 누구보다 교사 생활에 뒤처지지 않는 교사가 되었고, 충실하게 아동을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되었다.

‘스승이 되기 전에 먼저 참된 사람이 돼라’는 돌탑에 새겨진 교육목표 아래 교사 교육을 배웠다. 10년이 지난 후 진주 거주 동기들이 학적부가 보관된 진주기계공고에 1회 졸업생 자리를 양보받아, 진주기계공고 졸업생으로 변신했다. 기계공고 후배들은 1회 대선배 대접을 깍듯이 해준다. 아직도 부산동문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후배들을 격려하고 있다.

교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진주사범병설고등학교를 선택했다. 학제 개편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교대를 졸업하여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내 인생의 보람이었다. 즐겁고 행복한 날들로 정년까지 무사히 잘 마친 것도 다른 교사보다 교육과정 3년을 더 받은 덕택으로 생각한다. 그때 진주고등학교를 선택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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