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새옹지마
휴대폰 고장 사건
한우자 시인.

3년 정도 사용한 휴대폰이 갑자기 고장이 났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서비스센터 창구에 가서 기사님께 휴대폰 현재 상태를 말했다. 기사님이 살펴보더니 수리비가 25만원쯤 나오니 그냥 새로 구입하는 게 낫겠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나도 동의해 수리하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 새로 사는 것까지는 좋은데 전혀 작동이 안 되니 전화기에 있는 사진이나 연락처를 새 폰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동안 많은 사진을 갤러리에 보관 중이었고 지인들 연락처도 모두 폰에 저장했을 뿐 다른 어디에도 없다.

나는 가끔 갤러리에 있는 사진을 즐겁게 들여다보곤 하는데 가슴 속 영원한 추억을 잃은 듯 상실감이 컸다. 지인들 연락처라도 알아내고 싶어 옛날 수첩을 모두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동안 잘 모아두었던 수첩도 이번에 이사를 오면서 다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옛것의 소중함이 느껴졌다. 나는 옷이나 오래 써서 낡은 기기 등은 미련없이 정리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휴대폰 고장을 계기로 그런 생활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쌓아둘 일은 아니지만 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기로 했다.

당장 폰을 사서 개통하고 싶었지만 딸아이가 토요일에 집에 갈 테니 함께 가서 사자고 해 나흘을 그냥 지냈다. 하루 이틀까지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흘째부터는 오히려 더 편안하기까지 했다. 외출할 때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되고 일상생활에서도 왠지 허전하기는 하나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휴대폰 없이 지내는 것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온갖 정보와의 차단은 물론 알고 싶은 지식의 욕구까지 접근이 금지된 상태다. 물론 컴퓨터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쉽게 꺼내서 보고 듣기에는 휴대폰만 못하다. 이미 휴대폰이라는 문명의 덫에 풍덩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옛 생활을 고집한다면 소통의 부재나 정보의 미충족으로 낙오자가 될 것이 뻔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미 우리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입증한다. 그동안 분신처럼 나를 따라다닌 휴대폰에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딸아이와 함께 가서 산 휴대폰은 전에 쓰던 것보다 일단 가벼워서 좋다. 나이가 드니 조금이라도 무거운 것은 부담스러워 지양하는 편이다. 폰 속에 있던 사진과 연락처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는데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고 딸아이가 종일 컴퓨터 앞에서 고군분투하더니 어렵사리 복원해놓았다. 기계치인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인데 고맙고 또 고마웠다. 딸아이 덕분에 내게 필요한 모든 기능이 바탕화면에 놓이고 만보기 앱까지 깔았으니 이제 편안히 사용만 하면 된다.

이번 일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을 실감하며 이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기에 사진은 컴퓨터에 저장하고 노트에 지인들의 연락처를 적어두기로 했다. 유비무환이다. 문득 있을 때 잘하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부경남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