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이 수필가.

아주 오래전 일이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가만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이제 한 달 지난 아기 때문에 지난밤 잠을 설쳤다. 새벽녘에 잠깐 눈을 붙였다가 그만 늦잠을 잤다. 밥을 짓기엔 어중간해서 라면이라도 끓여야지 하며 기지개를 켠 순간이었다. “이게 뭐야!” 못생긴 바퀴벌레였다. “여보, 보민아빠, 바퀴벌레! 바퀴벌레!” 소리쳤다. 남편이 달려와 내가 가리키는 천장을 쳐다보더니 빗자루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조용히 남편 손에 빗자루를 쥐여 주었다. 남편은 숨을 죽이고서 천천히 팔을 올려 녀석 앞에 빗자루를 들이댔다. 녀석도 뭔가 눈치를 챘는지 그 자리에서 꼼짝을 안 했다. 남편과 나, 쪽수로 밀렸다는 것을 감지한 게 분명했다. 남편은 “내가 딱 떨어뜨릴 테니 잘 보고 놓치지 말어”했다. “응, 알았어” 대답하기가 무섭게 남편이 빗자루로 녀석을 내려쳤다. 공중제비를 넘듯 바퀴벌레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녀석이 용케도 장롱 밑을 향해 속력을 내어 달리는 게 아닌가. 수영선수가 다이빙하여 쏜살같이 물 밖으로 솟구쳐 나오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그만 맨발로 녀석을 냅다 걷어찼다. 그러자 녀석이 뒤로 벌렁 나자빠져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집에 갓난아이가 있기에 내게 자비란 사치이다. 티슈를 한 장 뽑아서 손가락 한 마디로 녀석을 꾹 눌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녀석을 돌돌 말아서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버렸다. 통쾌했다. 잠을 설쳐 찌뿌둥하던 것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야, 무슨 여자가 그러냐? 응? 여자가 겁도 없나?” 갑자기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빨리 가서 손과 발을 씻고 오라며 소리쳤다. 화장지 한 장만 뽑아서 녀석을 잡은 것도 나무랐다. 거기다 맨발로 녀석을 걷어찬 것이 못마땅하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화장지는 급한 대로 뽑히는 만큼만 잡았을 뿐이다. 그 순간 맨발로 걷어차지 않았으면 녀석이 장롱 밑에 들어갔을 거 아닌가. “아기한테 그 발 닿지 않게 조심해!” 남편은 이렇게 소리를 치고 출근해 버렸다. 기가 딱 막혔다. 이런 일로 여자 남자를 따지니 말이다. 아침부터 나를 이상한 여자로 만들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시골이다.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옷에 붙은 송충이를 보면 나뭇가지로 가만히 떼어냈다. 모내기하다가 거머리가 다리에 달라붙어 있어도 손으로 떼어냈다. 괜한 호들갑을 떨어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 내 성격이 그렇다. 남편은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촌놈이다. 도시 촌놈한테는 여자다운 게 뭘까. 내가 내숭을 좀 떨어야 할까. 내숭은 내 체질이 아닌데 말이다. 도시 촌놈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앞이 캄캄했다. 그날 아침은 바퀴벌레보다 내가 더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은 앞장서서 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씩씩하고 당당한 촌놈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이후로 집안일은 다 내 몫이 되었다. 비린 생선 손질부터 웬만히 무거운 물건은 내가 나른다. 시골집에 가면 어머니가 나를 소대장이라며 반긴다. 못 말린다. 결혼 전에 동생들과 도시에서 자취할 때 동생들이 나를 졸졸 잘 따라서 붙은 별명이다. 남자처럼 가리지 않고 일을 잘해서 내숭도 떨 줄도 모른다. 여자는 꼬리 백 개를 달고 살아도 모자란다는데 나는 이미 틀렸다. 이럴 바엔 나답게 살기로 했다.

어머니는 오늘도 내가 한 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위에게 “이보게, 야가 거죽은 이래도 맘이 얼매나 깊고 보드라운지 몰라” 하신다. 내가 진짜 미친다. 어머니도 딸 인물이 별로라는 걸 인정하신 셈이다. 그래,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촌놈이다. 촌놈이면 어때. 촌스러워도 괜찮아.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