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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국경의 도시에서 내려오는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양희용 르네상스 아카데미 대표이사

백제와 신라의 국경에 위치한 곳
영승마을과 갈지마을, 취우령에
선화공주와 서동 이야기 전해져

300만원으로 만들어 낸 창작극
첫걸음이 큰 발자취 되도록
지역콘텐츠 개발 필요한 시대

거창윈드오케스트라는 지난달 29일 거창문화센터에서 마리면 영승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를 창작뮤지컬로 올렸다. 1400여년 전 거창은 지정학적으로 백제와 신라의 국경에 위치한 곳이었다. <사진: 이현완 작가>

시월의 어느 날, 거창문화센터 공연장 무대 위에서 거창의 설화 속 주인공 선화공주가 환생했다.

1400여년 전 거창은 지정학적으로 백제와 신라의 국경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래서 신라와 백제 사람들은 국가 간의 대치 상황과는 별개로 이곳 거창을 넘나들며 물건을 사고팔고, 정답게 이야기 나누며, 또 때로는 사랑도 꽃피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거창에는 영승마을과 취우령, 갈지마을 등에서 선화공주와 서동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영승마을에서 채록된 설화는 선화공주가 서동을 만나러 갔다가 도중에 죽고, 그 눈물이 비가 되어 취우령에 흩뿌린다는 이야기다. 선화공주가 서동을 만나러 갔다가 갈지마을에서 생을 다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백제의 왕자 서동과 신라의 선화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우리 고장에서 피어났던 오랜 선조의 사랑 얘기를 지인들과 차를 마시고, 술 한 잔 기울이며 자주 나누었던 터라, 필자는 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연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많았다.

무대가 정비되고, 공연이 시작되면서, 울려 퍼지는 잔잔하고 구슬픈 멜로디가 감동의 순간으로 내 마음을 이끌었다. 무대의 장막이 올라가고 내려지듯 단락 구분이 되면서 공연이 진행 된다. 무대 양쪽 상단의 모니터를 통해서 선화공주와 서동의 설화가 문자로 재생되고 성우가 내레이션으로 낭송한다. 남녀 성악가 두 명이 번갈아 대사를 주고받듯이 공연은 이어졌다.

선화공주 역을 맡은 정은선 소프라노. <사진: 이현완 작가>

공연이 끝나고 참석했던 많은 분들이 필자의 마음과 같이 공감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거창에서 1400여년 전 있었던 이루지 못한 아름다운 사랑의 얘기가 세기를 넘어 다시 피어난 모습에도 감동이 있었지만, 늘 목말라했던 우리 고장의 얘기로도 이렇게 뮤지컬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데서 희망과 감동이 있었을 것이다.

이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한 사단법인 거창윈드오케스트라는 십여 년 전 거창에 만들어진 공연팀이다. 경남문예진흥원의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 지원금으로 공연을 올렸다고 하는데, 제작비 액수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더욱더 생각보다 길었던 창작곡, 공연시간, 참여한 예술가들의 면면에서 공연 팀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선화공주의 사랑’은 창작 뮤지컬이다. 곡을 창작하고, 연습하고, 기획하고, 공연장 무대에 올리기까지 긴 시간과 노고를 쏟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하며 감탄했다.

호동왕자 역을 맡은 테너 이창훈. <사진: 이현완 작가>

지난해 여름 치러진 제33회 거창국제연극제가 종료된 후 평가보고회 등을 통해 나온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들은 거창의 역사나 설화를 소재로 한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 지역의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 창작 뮤지컬 ‘선화공주의 사랑’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규모나 완성도, 철저한 역사적 고증 등 좋은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건들이 많이 있지만, 말로만 필요하다면서 시도하지도 않고, 엄두도 못 내는 상황에서 경남문예진흥원의 300만원 제작비로 만들어진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한 편의 뮤지컬이 완성되려면 곡을 창작하고, 희곡을 쓰고, 무대가 만들어지고, 연극이 펼쳐지고, 합창이 이뤄지고, 협주곡이 울려 퍼져야 한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거창윈드오케스트라라는 작은 단체에서 시작한 창작 뮤지컬이었지만, 앞으로 가까운 시일에는 예술총연합회와 같은 전문 예술단체와 협업 형태의 작품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한류, K퓨전, K-Pop이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리라고 누가 상상을 했을까. 지금 지구촌은 대한민국의 콘텐츠에 열광하고,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문화와 예술이 시대를 선도하고, 먹거리가 되고, 돈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화와 예술의 힘이 중요해진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할까?

지금은 로컬리즘이 주목받는 시대다. 우리는 지역이 곧 중심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거창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다. 여기에 더해서 예술과 문화가 살아있는 거창이 된다면, 지금 지자체에서 고민하고 걱정하는 지역소멸·인구소멸과 같은 고민을 해결할 수 있으며 귀농·귀촌을 통해서 살아보고 싶은 거창, 가보고 싶은 거창으로 자리매김하여 매력 있는 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조금 오버해서 꿈을 꿔 본다면, 거창의 콘텐츠로 아름다운 창작 뮤지컬이 탄생하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수출이 되고, 세계로 수출되고, 거창국제연극제 개막작이나 폐막작에서 공연이 펼쳐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도 생각해본다.

거창다운 작품이 많이 창작되어, 예술 문화도시 거창의 첫걸음이 큰 발자취가 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문예술가들의 연구와 노력 등으로 훌륭한 지역의 예술적인 콘텐츠가 탄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양희용 약력
- 사단법인 거창예술총연합회 감사
- 사단법인 거창미술협회 이사
- 거창문화재단 선임이사
- 경남문예진흥원 심의위원

백제와 신라의 국경, 아홉산 취우령 넘지 못한

선화공주의 슬픈 사랑이야기 ‘설화로 전해져’

거창윈드오케스트라의 금관앙상블 협연 모습. <사진: 이현완 작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인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에는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설화와 역사 사이에 전해져 오던 ‘서동요’ 유래담이 지난 2009년 1월 문화재청이 국보 미륵사지 서탑을 해체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륵사가 백제인 왕후의 발원으로 건립된 사실이 확인됐다.

금판 앞뒷면에 194자로 된 사리 봉안 기록판에는 시주자의 신분이 무왕의 왕후로, 좌평(백제의 최고 관직)인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사실이 새겨져 있다. 또 미륵사 창건연대가 무왕 재위 40년인 기해년(639년)이라고 한자 고체로 선명하게 나와 있다.

이는 백제 서동 왕자(무왕)가 향가 ‘서동요’를 신라에 퍼뜨려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결혼했으며, 그 뒤 선화공주가 미륵사를 건립했다는 <삼국유사>의 내용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백제와 신라의 국경 경계였던 거창에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거창을 가로지르는 아홉산은 가야, 백제, 신라를 가르던 국경이었다. 그 후 가야와 백제가 망하고 통일신라가 되면서 국경이 없어진 이후에도 아홉산 끝자락인 건흥산에는 백제 유민들이 국경을 지키려고 거열산성을 쌓고는 신라와 격전을 벌였다.

1400여년 전 서동과 선화공주에 얽힌 설화는 마리면 영승마을 일대 행기숲과 그 강물을 따라 인근 마을에서 전해오는 솔이와 달래 설화, 취우령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 선화공주의 설화, 백제 거열왕자 설화, 건흥산 성터 안의 장군문 설화 등이 보물처럼 전해지고 있다.

아홉산을 가운데 놓고 보면 능선의 서쪽은 백제 땅, 동쪽은 신라 땅이었다. 지금의 영승(迎勝)마을은 원래 백제가 사신을 맞고 보내던 곳, 즉 영송(迎送)이었다. 당시 영송마을에는 이황의 처외삼촌인 전철 선생이 살고 있었는데, 1543년 퇴계 이황이 영송에 왔다가 영승마을로 고쳐주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승으로 부르고 있다.

영승마을에 전해져오는 서동과 선화공주에 대한 설화는 둘로 나뉘어 전해져 온다. 하나는 서동이 경주로 가서 서동요를 퍼뜨려 궁에서 쫓겨난 선화공주를 서동이 말 잔등에 태우고 넘어온 이야기다. 그리고는 자신은 백제의 왕자라고 말하고, 선화공주와 백제 땅으로 가서 무왕으로 오르고 선화공주는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서동요로 인해 궁중에서 쫓겨난 선화공주가 서동왕자를 만나기 위해 백제로 떠났지만 험준한 국경인 아홉산 취우령을 넘다가 서동왕자를 만나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다.

아홉산 고개 취우령에서 ‘취우’는 ‘소나기 또는 비를 취한다’는 뜻으로 ‘선화공주의 눈물이 비가 돼 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승마을 주민들은 지난 2013년부터 매년 아홉산 취우령제를 열어 선화공주와 백성의 한스러운 눈물을 닦고 그 넋을 위로하고 있다.

이번에 무대에 올린 창작뮤지컬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는 이같은 내용을 모티브로 담아 제작했다. 지역이 융성하고 사람들이 몰려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역사나 설화를 소재로 한 문화콘텐츠가 개발돼야 한다. 양희용 르네상스 아카데미 대표이사의 글은 앞으로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생산해 냈으면 하는 열망이기도 하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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