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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의 유두류록, 550년전 역사의 현장을 되돌아 본다4. 김종직의 ‘유두류록’ 길
  • 이철우 본지 회장
  • 승인 2024.02.23 21:43
  • 호수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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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추석 전날 유두류록 탐구팀과 함께 베일에 가려있던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코스를 따라 지리산을 올라보았다. 유두류록 탐구팀의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보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550년전 역사의 현장을 더듬어 볼 수 있으며 그때의 문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종직 선생의 지리산 유두류록 탐방로는 함양군 휴천면 운서마을 적조암에서 시작해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13.3㎞구간이다. 석굴 안에서 바라본 고열암터. <사진: 지리99>

함양은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 뼈대 있는 곳이라 하여 ‘좌 안동 우 함양’이라 불렀다. 경복궁 근정전에 앉아 멀리 내다보면 낙동강 동쪽에는 안동, 낙동강 서쪽에는 함양이 보이는데, 이 두 곳은 서원과 정자가 많고 유학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지역으로 단연 으뜸이라는 긍지를 나타낸 것이다.

함양이 양반문화를 꽃피우며 사림파의 본거지로 주목받게 된 데는 점필재 김종직의 공이 크다. 함양군수를 지낸 그 쟁쟁한 인물 가운데 유독 김종직 이름 아래에 “고을 사람이 추모하여 생사당(生祠堂)을 세웠다”는 사실이 특기되어 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위해 사당을 짓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는 일은 엄청난 영예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김종직만이 유일하게 이은당(生祠堂)이 건립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정유재란 때 불탔다. 부산대학교에는 ‘점필재연구소’가 있어 점필재 김종직 선생 연구를 하고 있다. 점필재의 본관은 선산이고 밀양 출신으로 1453년 문과에 합격하였다. 점필재는 세조가 집현전을 없애고 글 잘하는 선비 10명을 선발하여 예문(藝文)을 겸하게 할 적에 백형(伯兄) 김종석과 함께 선발되어 들어갔다. 성종이 즉위하고 집현전의 경연관을 겸하게 하였는데, 公이 수찬(修撰)이 되어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어버이가 연로함으로 인하여 지방에 나아가 함양군수가 되었다. 이어 선산부사, 전라도 관찰사, 한성부윤, 도승지, 이조참판, 형조판서, 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점필재는 조선조 초기 사림파의 거두다. 그를 사림파의 거두라 일컫는 것은 그가 조선 초기 제일의 문인이라거나 조선조 시조(詩祖)라고 일컬어지는 문학적 성취만 두고 칭송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후학을 양성하여 효제충신(孝弟忠信)의 이념을 전파함으로서 정몽주로부터 시작된 조선조 도학문명 이념의 가치를 내걸었던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함양태수(1471~1475)를 재직하면서 선정을 베풀고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점필재가 함양군수로 재직하면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당대와 후대에 조선의 사상과 학술과 문학을 선도한 많은 인재를 문하에 거두어 차례로 성취함으로써 조선조 학문과 사상 및 문학사에 일대 전환기를 이루어 냈다는 점이다. 점필재는 수시로 향교에 나가 학도들을 격려하는 한편, 각지에서 풍문을 듣고 찾아오는 학자들을 받아들여 다방면으로 인재를 키웠다. 조위, 표연말, 유호인, 임정숙, 박명지, 김굉필, 김일손, 정여창, 한인효 등이었다.

점필재가 함양군수로서 인재를 성취시킨 성과에 대하여는 당대의 명현으로 함양에 연고가 있었던 사숙재 강희맹의 증언이 있다. 강희맹은 성종 갑진년(1484년) 함양 출신의 명사 뇌계 유호인이 지방관으로 나갈 적에 글 한 편을 지어 주었다. 그 글에 “함양고을은 지리산의 여러 산골 사이에 있어서 매우 궁벽한 곳이다. 나는 갑자년(1454년) 겨울 제계리의 시골집에 우거하고 있었다. 나는 마침 학업을 닦으면서 함께 강론할 선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 뒤 20년이 지난 갑오년(1474년) 여름에 나는 양부(養父)의 상(喪)을 당하여 그해 겨울 가솔을 인솔하여 함양으로 돌아갔다. 그때 사또가 김종직이었으며 고을의 부로(父老)들이 번갈아 칭송하기를 사또가 문교(文敎)를 숭상하여 문화와 교육이 크게 일어났으며, 이웃 여러 고을의 의관(衣冠) 자제들로서 양식을 싸가지고 배우러 오는 자가 무려 수십이다 고 하였다. 하루는 사또가 유호인과 함께 왔기에 내가 보니 비범한 인사임을 알고는 김 사또가 교양한 공력을 만분 알게 되었다.”

유두류록을 탐방하는 지리99팀이 산행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지리99>

함양군수로 재직하면서 실천한 시정(施政), 풍교(風敎), 강학(講學) 등에 관한 詩 320수가 <점필재집>에 수록되어 있다. ‘수령일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함양군수로 있으면서 겪었던 일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역대 지방관의 경험을 가진 문인 학자들이 적지 않음에도, 점필재처럼 계절마다 가뭄과 비와 바람의 자연재해와 민간의 사정을 자세히 점검하여 그 정황을 기록하여 남긴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는 민생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1474년에 휴천면 동호마을 엄천사에 관영차밭을 조성하여 차가 나지 않는 함양에서 차 공급을 하려고 전라도까지 가서 곡식을 주고 구매해서 공납해야 하는 민초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모습, 부역과 조세를 공정하게 부과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함양성의 나각을 기와로 바꾸어 해마다 지붕을 새로 이어야 하는 노고를 줄여주는 모습, 기로연을 베풀어 지역의 노인을 위로하는 모습 등 지방관의 임무 수행 모습이 역력하다. 우리는 점필재의 관영차밭이 있던 부근에 차밭을 조성하여 지방관의 백성을 다스리는 자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스토리를 전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재직 중 특기할 만한 사항은 성종 4년 여름에 제작된 ‘함양군지도’를 꼽을 수 있다. 아쉽게도 김종직이 그린 ‘함양지도’는 현재 일실 되고 없지만 ‘선산지도지’의 설명을 통해 그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호구의 숫자, 개간한 농토, 도로의 거리까지 상세하게 적어놓고 행정을 보살폈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사림파의 종조(宗祖)로, 성종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자신의 문인(門人)을 관직에 대거 등용시켜 기성세력인 훈구파와 심한 반목과 대립을 일으켰다. 일찍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은 바 있었는데 그의 사후인 연산군 4년(1498년) 제자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이것을 사초(史草)에 올린 것이 원인이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당상관 이극돈은 자신의 비행을 사초에 자세히 쓴 것을 보고 원한을 품었고, 유자광이 함양 학사루에 걸어둔 자신의 시를 함양군수로 부임한 김종직이 떼어낸 것에 대한 앙심이 조의제문 건을 통해 폭발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점필재는 부관참시를 당하고 많은 문집이 소각되었으며 그의 문인들이 모두 참화를 입었다.

점필재는 수시로 학도들을 데리고 인근 산과 계곡, 한적한 사찰을 찾아 시문을 논하였다. 김종직 선생은 함양군수 부임 다음해인 1472년 제자 조위, 유호인, 한인효 등과 음력 8월 14~18일까지 5일간 지리산을 탐방하고 유두류록(遊頭流錄)이란 산행기를 남겼다. 유두류록은 단순히 유람이 아닌 세세한 기록물이기도 하며, 지리산 산행기라는 문학적인 감성을 느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최근에 지리산 국립공원공단은 비지정 등산로였던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지리산 탐방로를 공식지정 등산로로 지정을 건의하였다. 함양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며 유적지와 선인들의 혼이 일렁이는 유두류록 코스의 의미를 되새기며 550년 전의 기행문을 따라 걸어보는 것은 등산의 묘미와 함께 시간여행을 해본다는 의미 있는 일중의 하나이다.

2020년 추석 전날 유두류록 탐구팀과 함께 베일에 가려있던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코스를 따라 지리산을 올라보았다. 유두류록 탐구팀의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보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550년전 역사의 현장을 더듬어 볼 수 있으며 그때의 문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종직 선생이 쉬어갔다는 고열암에서 바라본 지리산 능선의 구곡선경은 마음을 빼앗아 갔다. 함양군은 김종직 선생의 차밭 조성, 지리산 탐방로 정비 등 인문·문화적인 일에 힘을 보태는 것이 함양의 문화관광 진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지리산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함양군수를 역임했고 그의 유두류록은 기행문의 수작이다.

이철우 본지 회장  lc34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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