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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세월이 익어가고 있다
백을순 산청 시천면 예치골 거주.

아내는 저녁 찬거리를 가지러 채반을 들고 텃밭으로 갔다. 텃밭에는 시어머님 기일에 쓰려고 남겨둔 시금치가 자라고 있다. 그 옆에는 무가 자라고 있다. 우선 작은 칼을 이용해 시금치부터 뜯었다. 시금치 사이사이 실한 냉이가 보여 땅속 깊이 칼을 넣어 몇 뿌리 캐서 보탰다. 시금치와 냉이를 한 채반 채워 놓고 뭇국을 끓이려고 무를 뽑았다. 처음 싹을 틔울 때 솎아준 이후로 물 몇 번 준 것밖에 없는데 기특하게도 제법 통통하게 살이 붙었다.

주방에서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편 트럭이 비탈진 길을 후진으로 올라와 좁은 마당에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미끄러지듯 안착했다. 아내의 시선은 주방 창 너머 운전석 차문에 고정되었다. 하루를 끙끙 앓은 남편은 쉬라는 아내의 권유에도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출근했다. 마스크를 쓰고 차에서 내리는 남편의 모습이 잎을 모두 떨군 겨울나무를 닮았다. 잔뜩 웅크린 몸을 휘청거리며 주방문을 연 남편이 “욕조에 물 좀 받아줘!” 한 마디를 들이밀었다. 아내는 말없이 안방 화장실로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어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기 시작했다.

겨울만 되면 남편의 발뒤꿈치는 긴 가뭄을 만난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졌다. 심하게는 피까지 나왔다. 겨울만 되면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보던 아내는 반신욕을 권했다. 아내도 발뒤꿈치가 갈라져 고생하다가 반신욕을 하면서 좋아졌기에 권했는데 남편은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무시했었다. 그러더니 어쩐 일로 욕조에 물을 받아달라고 한다.

직업이 목수인 남편이 어제저녁 흠뻑 젖은 몸으로 퇴근했다. 세차게 내리는 비와 거칠게 불어대는 바람을 견디며 일을 했다고 했다. 아내는 미련하게 비를 맞으며 일을 했다고 따발총을 쏘아댔다. 몸을 녹이려면 반신욕이 최고라고 권했지만 괜찮다며 무시했다. 몸이 녹지 않아 오들오들 떨며 웅크리고 있는 남편을 위해 저녁으로 뜨끈한 국물에 몸을 녹이라고 떡만둣국을 끓였다. 떡만둣국이라면 배가 터져도 먹는 남편인데 입맛이 없다며 먹는 둥 마는 둥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하루 쉬라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코맹맹이를 데리고 출근했다. 그런 몸 상태로 하루 종일 공사장에서 일을 했으니 몸 상태는 더 나빠졌으리라. 남편은 물을 받아 놓은 욕실로 들어갔다.

남편이 반신욕을 하는 동안 아내는 시금치와 냉이를 끓는 물에 데쳐 집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시금치는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다. 무는 채로 썰어 들기름에 달달 볶았다. 쌀뜨물을 붓고 소고기도 듬뿍 넣어 은근하게 끓였다.

욕조에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던 남편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나왔다. 식탁에 앉아 뜨끈한 뭇국에 밥공기를 들어 그대로 쏟아 넣고 수저로 밥알을 꾹꾹 헤쳐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얼굴에선 땀이 소나기가 내리듯 흘러내렸다. 수건으로 땀을 쓱쓱 닦아낸 남편은 그대로 안방 침대에 누웠다.

언제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푸르디푸를 것만 같던 남편의 세월이 어느덧 익어가고 있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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