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시인)님이 보내주신 칼럼입니다.

<세까치>
세는 나무우게서 까치집을 만들었다
까치는 나무를 물고 집을 만들었다.
그 까치집을 만들면
세가 집에서 알을 낳다.
                   
위의 동시는 우리 반 희성이의 동시다. '세'는 새를 말하고, '나무우게서'는 '나무 위에서'를 말한다. 이 두 말만 고치면 희성이의 글은 별 무리없이 논리가 정연한 셈이다. 아직 책읽기도 글씨 쓰기도 서투른 희성이의 이 삐툴뻬툴한 글자로 쓴 동시를 보고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래, 드디어 희성이가 논리를 세웠다.'라고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어린이들의 글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꾸밈없는 어린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글 속에 꿈틀꿈틀 살아 숨쉬고 있고, 생명의 힘이 넘친다. 희성이가 우리 학교 운동장 가에 까치가 집을 짓고 사는 과정을 아주 잘 보아온 셈이다.

산과 들에, 그리고 언덕에 봄꽃들이 세상을 덮을 것처럼 피었다가 진다. 먼 산에 산 벚꽃이 피었다가 금세 진자리는 꿈같다. 봄날의 꽃은 꿈이다. 그래서 봄날을 일장춘몽이라 하지 않던가. 학교 운동장 가에 벚꽃이 꽃구름처럼 피었다가 금새 지더니, 새 잎이 돋는다.

우와! 저 새잎도 꽃이다. 화사하고 싱그러운 봄날 아침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을 돌다가 공을 찬다. 신이 난다. 아이들의 발소리가 땅을 울리고, 아이들의 거침없는 고함 소리가 쾌청한 하늘로 울려퍼진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늘 하늘을 날 것 같다.

저절로 심호흡이 나온다. 땅을 울리고, 하늘을 울리는 어린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몸짓과 목소리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지구 위에 이렇게 살아 있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와 아이들의 소리뿐이다. 그러나 자연이나 어린이나 자기들을 보호하고 지킬 힘이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상처받고, 파괴되는 것이 어린이와 자연이다. 힘이 없는 것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지킨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나는 날마다 2학년 우리 반 어린이들에게 동시를 써보자고 하며 제목을 정해준다. 이날의 동시 숙제는 '새'였다. 자기를 지킬 힘이 없는 희성이와 희성이의 새를 보호하자. 인류가 엄청난 진보를 거듭해왔다고 뻥치는 이 야만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희성이와 희성이의 새집은 우리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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