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들의 숙엄함 모습

역설적인 침공서 미래 배워

온전한 지도를 향한 집념

<고산자 : 대동여지도>

고산자는 김정호의 호다. 대동여지도는 한국의 모습을 제대로 그린 특별한 지도다. 한국영화의 대표 감독인 강우석 감독이 오랜만에 연출한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당시 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지도에 목숨 거는 평범한 미초 김정호의 모습을 그려냈다. 가족도 소홀히 한 채 올바른 지도를 그리기 위해 조선 8도를 떠도는 정호는 몇 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만난 딸의 얼굴도 제대로 못 알아본다.

그런 아비를 그리워하는 딸 순실은 김정호에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김정호가 공들여 만드는 지도는 오차범위를 최소화하는 정확성을 중히 여긴다. 지도의 불명확성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가 지도 철학은 만인이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지도를 목적으로 하는 데.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정신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당시 지도를 보는 눈은 관점에 따라 달랐다. 야욕이 있는 쪽은 세세하게 그려진 지도가 길잡이에 다름 아니다. 정보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지도를 손에 넣기 위해 대립하는 모습은 지도의 의미를 부각한다. 흥선대원군과 조선말기 세도정치를 했던 안동 김씨 세력의 대립은 지도가 갖는 복합성을 드러낸다.

지도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과 충돌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지도가 권력의 도구로 작용할 수 있는 시대에 김정호의 정신은 독점보다는 공유다. 독점은 권력의 욕심을 의미하지만 공유는 보편적인 민중의 삶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흥선대원군이나 안동 김씨 모두 김정호의 지도 철학과는 맞지 않는 인물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정보 공유와 정보 독점으로 이해되는 구성이다. 무엇이든 홀로 차지하고 싶은 세력은 독점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고 그 권력은 오만해 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정신을 지켜내는 것.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짤막하게 몇 줄 안 남은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그의 삶을 정보에 맞춰 그려낸다. 험난했던 시기 국가의 핵심적인 정보를 유출한다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정확하고 바른 지도를 위해 애쓴 김정호의 삶은 영화에 오롯이 담겨 있다.

다만 인물들이 소모적으로 그려지고 지도를 그리기 위해 전국을 떠도는 과정에서 보여 지는 김정호의 에피소드들에서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영화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이다. 합천 황매산과 백두산 천지, 얼어붙은 북한강 등이 수려한 우리 땅의 모습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독립에 의문을 표하던 시대 목숨 걸고 싸웠던 의열단

<밀정>

조선총독부 경무국 경부 이정출은 전형적인 친일 민족반역자다. 상해 임시정부의 일을 돕기도 했지만 조선으로 돌아와 그가 하는 일은 독립운동 세력의 색출이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한다. 옛 친구인 독립운동가 김장옥이 자금을 구하려다 일경에 포위에 결려 위기를 맞는 순간, 그는 친구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앞서 애써보기도 하지만 “독립이 될 것 같냐?”고 묻는 이정출에게 김장옥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렬히 산화한다.

경성에서 사진관을 하는 김우진은 의열단의 중심인물이다. 하지만 밀정에 의해 활동이 노출되면서 황급히 상해를 피신한다. 그에 앞서 이정출과 만나는 자리는 정체를 숨긴 창과 방패와 같은 만남이다. 의열단 세력을 색출하기 위해 접근하는 이정출의 정체를 알면서도 태연하게 만나고 이를 고리로 엮는다.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기 위해 경성에 폭탄을 반입하려는 의열단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상해로 파견된 이정출 등 일본 경찰. 긴장은 높아지는 가운데 폭탄을 실은 열차는 경성을 향해 출발한다. 밀정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뒤쫓는 일본 경찰과 의열단은 기차 안에서 조우하게 된다. 경성에서 계획하는 의열단 거사 앞에 장애물은 계속된다. 의열단의 거사는 성공할 수 있을까?

<밀정>은 지난 여름 천만 관객을 돌파한 <암살>에 이어 의열단의 항일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다. 조국을 팔아먹은 것과 다름없는 민족반역자인 ‘밀정’을 강조하지만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술 걸고 싸우던 독립투사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기약 없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의열단의 활동은 무수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활동을 영화를 통해 주목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독립운동가 김장옥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 열사의 모습이고 일본이 쫓는 의열단장 정채산은 약산 김원봉 선생이다. 질곡의 시기 일본이 곳곳에 심어 놓은 밀정의 눈을 피해 애쓰지만 끝내 검거돼, 잔인한 고문을 당하다 순국하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은 숙연함을 갖게 만든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기만성과 이를 굴욕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부의 태도에 분노가 쌓이는 현실에서 밀정은 일제 강점기의 환기를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장면 장면이 의미 잇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밀정>은 음악이나 배경, 인물 등에 신경을 쓰며 빼어난 작품을 만들어 냈다. 잘 만든 첩보 영화기도 해서 극적 긴장감이 넘친다. 아쉬움의 역사를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통쾌함으로 바꿔 놓는 것 역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민족반역자들을 응징하는 것 이 역사의 당위임을 깨우쳐 주는 것도 이 영화가 안겨주는 미덕이다.

사회파 감독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

미국의 침략전쟁에 ‘마이클 무어’도 동참한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는 마이클 무어 감독이 미국의 입장으로 나선 해외 침공기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의 대표적 사회파 감독이다.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미국의 공포정치를 비판하고, <화씨 9/11>을 통해 9·11 테러에 의문을 제기하고, <식코>를 통해 미국 의료보험의 문제를 파헤치는 등 날카로운 시선을 유지하고 있기에 그가 해외 침공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특별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역설이 담겨 있다. 총성과 석유 약탈 없는 침공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침공해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오직 다른 나라의 장점만을 빼앗고 미국의 깃발을 꽂겠다는 것이 군사력으로 여러 나라들을 침공한 미국 정부와는 다른 마이클 무어 식 해외 침공이다. 그렇게 감독이 찾아간 곳은 이탈리아 프랑스, 핀란드, 슬로베니아, 독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9개국.

이 나라들을 침공해 감독이 성조기를 꽂고 얻어낸 것은 무엇인지 들여다보면 놀랍기까지 하다. 이탈리아에서는 8주의 유급휴가와 휴가를 즐길 수 있는 13번의 월급이 보장된 복지환경을, 프랑스에서는 최고 수준을 학교급식을. 핀란드에서는 숙제가 없는 학교를 미국으로 가져가겠다는 식이다. 대학생들이 무상교육을 받는 슬로베니아와, 과거사 반성을 제대로 가르치는 독일, 재소자의 사회복귀를 도우면서 재범 율이 최저 수준인 노르웨이의 감옥 환경과 여성인권 신장으로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루고 있는 아이슬란드 등은 마이클 무어가 침공을 통해 뺐어오고 싶은 결과물이다.

<다음 침공은 어디?>는 각 나라의 우수한 환경을 심도 있게 파악해 미국 사회와 비교하는데, 이게 굳이 미국사회만 본받자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 현실과 비교해도 영화는 곳곳에서 큰 여운을 남긴다. 2차 대전의 전쟁범죄를 통렬히 반성하는 독일은 같은 전범국가로서 역사마저 왜곡하는 일본과 비교되고, 아이들에게 최고의 급식을 주는 프랑스는 마치 아이들에게 밥 주는 것에 이념의 딱지를 붙이는 우리 현실을 부끄럽게 만든다. 무상교육이 이뤄지는 슬로베니아 역시 교육제도는 무상만 들어가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꼭 봐야할 장면이다.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각 나라의 장점들은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고나 할까?

재밌고 흥미롭게 만들어진 다큐는 보는 시각에 따라 아주 정치적이지만 마이클 무어 다큐의 진수를 보여준다. 저런 식의 침공이라며 우리도 따라하고 싶을 만큼.

성하훈 기자  seonghh@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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