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모 - 경북일보, 청와대 출입기자

국가위기에 당리당략 생각 말라

보수와 민주화세력 종언할 수도

야 3당은 총리 후보 추천해서

정국 수습에 적극 나서야한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다. 미 대선은 어느 때나 한국에 끼치는 영향이 크지만, 트럼프 후보의 예측 불가능한 스타일로 대한(對韓)정책의 불투명성 때문에 이번에는 사뭇 다르다. 그중 가장 돌발변수는 언급하는 자체만 해도 휘발성이 강한 주한미군 철수 문제다.

트럼프가 당선되자 한국의 증권과 외환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코스피와 코스닥은 나란히 폭락해 발표 당일인 9일 1950선과 600선이 붕괴됐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50원대로 하루 새 20원 가까이 급등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은 미국 대선 결과와 관련한 긴급회의를 개최 했으나 뾰족한 대처방안을 찾지 못했다.

올해 한국경제가 거듭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가 경제를 관리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특히 국회의 한 축인 야당의 경제 관리에 관한 한 그 능력은 더욱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 위기를 맞아 현 야당이라도 이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하길 바라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 앞에 섰다. 다음 대선에서 집권 의욕이 너무 앞선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국회에 새 총리를 추천하면 임명해서 실질적인 통할권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시큰둥하다. ‘통할’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

헌법 86조에 따르면 총리는 국회의 동의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박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은 했지만 국회에서 총리를 먼저 추천하는 것은 헌정사상 박 대통령이 처음이다. 청와대와 야권이 정국을 풀어나갈 해법을 놓고 ‘샅바싸움’을 벌이는 동안 국방이나 안보부문에서 무슨 일이라도 터진다면 그 결과는 예측하기도 끔찍하다.

국민이 정치판을 완전히 갈아엎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운 국면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5공을 흉내 내는 박 대통령 세력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내세워 정치를 해온 ‘87년 체제’의 민주화세력도 함께 종언을 고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트럼프와 세계 각국에 고개를 쳐드는 히틀러식의 망령이 남의 일이 아니다.

여야 특히 야3당은 당파에 휘둘리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할 줄 아는 유능한 총리 후보를 대통령에게 추천해 정국 수습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은 9일 박 대통령의 전날 국회 추천 총리 제안을 당장 거부했다. 야 3당 대표는 강력한 검찰수사 촉구 및 별도특검과 국정조사 신속 추진 등 6개 사항에 합의하고, 주말인 12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더 세게 밀어붙여 박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전략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현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1987년 반(反)독재를 표방한 보수야당(통일민주당)에서 분당한 최초의 지역주의를 근간으로 한 평화민주당이 사실상 뿌리고, 정의당은 87년 대선 때의 백기완 후보 때부터 국민승리21을 거쳐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의 후신인 진보주의 정당이다.

이 과정에서 수없는 이합집산을 통해 권력 유지와 확대에는 성공했지만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는 결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실 이번 최순실사태에 이르기까지 야당의 정부 견제 비판이 예리했다면 가능했겠는가. 다만 지난 4월 총선에서 친박이 분탕질을 쳐주고 이번 최순실 사태가 터져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맞고 있다. 지금도 여당은 박 대통령의 치마폭으로 국회의원을 몇 번씩 한 비박계가 박 대통령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으니 물실호기(勿失好機)다.

‘최순실 정국’으로 가계·기업 경제심리가 얼음판이다. 기업들은 저마다 투자를 유보하고 있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노무현 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는 “이명박 박근혜 두 정권에서 부자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으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 됐다. 서민과 중소기업이 너무 어려워졌다”며 서민들이 살기 어려운 사회를 걱정했다.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경제위기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위기 상황을 뚫고 나갈 리더십이 정부나 기업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기능 오작동 사태라는 비상시국이다. 야당에게 대안과 책임 정치의 희망을 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과 함께 미국 금리 인상과 보호무역주의 강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Brexit) 등 국제적 악조건이라는 풍랑을 헤쳐 나가야 한다.

박 대통령은 여당을 탈당하고 차기 대권 창출에서 손을 떼야 한다. 박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서는 것은 국민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다. 대통령의 명령이 먹혀들지 않아 행정부를 이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게 돼 있는 현행 헌법 취지대로 여야가 동의하는 책임 총리가 외교 국방 통일 장관을 제외한 중립내각을 구성해 내정(內政)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조치 뒤에 여야는 무당쟁(無黨爭)선언을 하고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 그리고 경제위기해법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외환위기와 87년 6월 항쟁과 같은 정국 혼란 속에 국민은 또 다른 고통과 직면할지도 모른다. 결단은 박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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