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을 잃은 전쟁

민심을 잃은 국회의 탄핵으로 대통령도 직권을 잃고 온나라가 혼란스럽던 지난 20일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1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미국은 작년 5월 종전을 선포하고 승리는 우리 것이라 자신 있어 했으나 미군 및 연합군을 상대로 한 이라크 내 저항은 끊이지 않고 있어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전쟁의 강력한 동인으로 거론됐던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정보가 신뢰를 잃게 되자 세계의 반응은 점점 냉담해졌고 파병국 스페인의 폭탄테러를 분기점으로 파병철회 의사를 밝히는 국가들도 늘고 있다.

또한 이라크 내에서 미군은 이미 오래전에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인식돼 있어 미군은 이라크 평화와 안정을 위한 치안 유지는커녕 적대세력들로부터 자체 안전 방어에도 급급해 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치를 잃은 죽음

미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11일 현재까지 이라크 전쟁에서 숨진 미군은 554명이며 이 중 종전 이후 사망자가 416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전쟁 개시 이래 작전 중 다친 병사도 2744명에 달했으며, 미국으로 귀국한 후 자살한 미군 병사의 수도 7명이나 이른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최대의 희생자는 결국 민간인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군 당국은 이라크 민간인 피해자 수를 집계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조사 결과가 미군에게 이로울 게 없을 뿐더러 집계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IPPNW)의 영국 지부인 메드액트(Medact)는 지난 11일 전후 모든 매체와 웹사이트의 뉴스를 분석한 결과, 이라크 전쟁 발발 후 2월 20일까지 모두 2만1000∼5만5000명이 사망했으며 이중 약 7700∼9500명이 민간인이며 이라크군은 1만3500∼4만5000명 수준이라고 밝혔다.

지지를 잃은 미국

영국의 아랍 일간지 알 쿠드스 알 아라비는 18일 '아부 하프스 알 마스리·알 카에다 여단' 명의의 성명을 보도하며 "알 카에다가 새 공격을 준비중이며 일본과 미국, 이탈리아, 영국,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가운데 스페인은 물론, 스페인 사령부에 속해 있던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도 철군의사를 밝히고 있다. 더욱이 이라크 중남부에서 스페인군을 포함, 약 9500명 규모의 다국적군을 지휘했던 폴란드도 미국의 이라크 WMD 정보 조작에 속았다며 조기 철군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알렉산드르 크바스니예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18일 2400여명의 이라크 주둔 병력을 당초 예정보다 이른 내년 초부터 철수시킬 수도 있다고 밝혔다. 폴란드는 미국이 지난 해 9월 한국군 파병의 모델로 제시했던 국가이다.

갈 곳을 잃은 한국군파병

국제적인 여론도, 실제 파병국도 지지를 철회하고 철군의사를 밝히고 있는 시점에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미 양국은 한국군의 파병 예정지로 결정됐던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지역의 치안상황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이라크 내 한국군의 주둔지역을 변경하기로 합의해 파병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국방부 남대연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을 통해 "한미양국은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지역으로 선정되었던 키르쿠크주의 치안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파병지역의 변경이 불가피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이라크 전지역을 대상으로 한국의 파병 기본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책임지역을 재검토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 동안 국방부를 중심으로 정부는 한국군의 추가 파병 예정지로 키르쿠크가 결정된 이후, 언론과 시민사회단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지 상황이 점차 안정화돼 가고 있다며 모든 파병일정을 순조롭게 추진하고 있던 중이었다.

시민단체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반감은 미군의 이라크 침략과 점령정책에 반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며 "만약 스페인이 철군한 자리를 한국군이 이들보다 3배나 많은 전투병력을 이끌고 진주한다면 오히려 더욱 강력한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갈 곳을 잃은 한국군의 파병은 지지를 잃은 미국의 뜻에 따라 명분을 잃은 전쟁을 계속하여 가치 잃은 죽음을 양산하는데 일조를 할 것인지 탄핵정국의 혼란 속에서 이라크전쟁 1년을 되짚어본다.

한정희 기자  dalbit@seobunews.com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