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때 마산유업 감사 은퇴 후
지금껏 줄곧 보험설계사로 일해

대한민국 야구 역사의 산증인
마산야구장에서 ‘회갑연’ 개최

2013년 4월 2일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프로야구 NC다이노스의 첫 홈경기 시타자로 나선 김성길 옹.

사람이 사는 동안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 가운데 생일과 결혼기념일만큼 개인적인 의미를 두는 날이 있을까? 지난날 우리의 생일기념은 아침부터 술과 떡을 먹으며 하루 종일 일손을 놓는 ‘먹자판’이었으나 요즘은 서양의 좋은 풍습을 본받아 간편하고 의미 있게 한다. 생일 기념은 거의 모두 저녁에 케이크를 준비하여 분수에 맞게 한다. 케이크에 나이에 맞추어 조그만 촛불을 켜고 축하자리에 참석한 가족과 친지들이 생일축하노래를 부른다.

결혼기념일은 결혼 후 부부의 건재함을 축하하는 날로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지금은 세계전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결혼 후 5년째가 나무(木), 15년째가 동(銅), 25년째가 은(銀), 50년째가 금(金), 60년째를 다이아몬드로 기념하고 있다. 이러한 기념풍습은 점차 사치해져서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나, 은혼식과 금혼식이 주(主)가 되고, 그 밖의 경우는 하고 싶은 사람만이 조촐하게 베풀고 있다. 특히 다이아몬드 식으로 기념하는 결혼 60년째에는 해로한 부부의 자손들이 그 부모를 위해 회혼례(回婚禮)를 올려드리기도 한다.

결혼 66주년을 맞은 김성길 옹의 부부는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김옹은 1926년생이고 할머니 이성순은 1931년생으로 1951년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 1남3녀, 손주 4남3녀, 증손주 2남2녀를 두었다. 92살의 김옹은 아직도 현역이다. 롯데화재보험 마산지점에 근무하고 있는 국내 최고령 보험설계사다. 이성순 할머니는 무릎이 아파 걸음을 빨리 걷지 못하지만 매일 집안의 무사와 안녕을 위해 기도시간을 갖고 금강경을 독송하신다.

불로장생이 허용되지 않기에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건강하게, 잘 나이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도 건강한 몸으로 활기차게 생활하고 계시는 김성길 옹이 좋은 예이다. 그의 하루는 즐겁다. 갈 곳이 있고 만나는 사람이 많다. 넥타이차림으로 출근하는 김옹을 바라보는 이성순 할머니는, 영감이 젊어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밤늦게까지 술 먹는 등 애를 많이 먹였는데 지금은 조금 맘에 든다고 웃으신다. 구십이 넘은 나이에 건강하고 출근하는 일터가 있고 점심·저녁을 해결하고 오는 경우가 많아 식사준비를 하지 않아 좋다고 하신다.

평생을 살아온 부부이기에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고 웃으면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도 멋진 일이다. 김옹이 보험업에 뛰어든 것은 30여년 동안 근무하던 주정회사인 마산 유원산업 감사로 은퇴한 55세 때부터다. 1980년부터 1989년까지 10년간 소장으로 근무한 후 지금은 보험설계사로 근무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건강하여 할 수만 있다면 오래 근무하기를 희망한다.

마산상고 출신인 김옹은 친구를 비롯하여 동문들이 마산지역에서 건물을 많이 소유하고 있어 화재보험계약이 많았다. 한창 때는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할 경우 전국 1·2위를 수차례 하는 등 실적이 좋아 우수보험설계사로 선정되어 본사에서 실시하는 유럽 등 해외여행 특전을 여러 차례 받기도 하였다. 이 같이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건강이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는 강건하여 80대라 하여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자세도 꼿꼿하고 걸음걸이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빠르다. 새벽이면 집근처 목욕탕을 들렸다가 월영동 어판장(魚板場)에 나가 지인들과 어울려 회와 소주 한잔씩 한다. 자주 어울리는 지인들은 김옹보다 나이가 한참 적음에도 동년배처럼 보인다며 누가 나이를 물으면 이제 80이라 하라고 당부를 한다.

삼시세끼를 꼭꼭 챙겨 드시는데 소식을 하는 한편 식탁에 오른 반찬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골고루 젓가락이 간다. 눈귀도 밝고 말씀도 시원시원하시다. 두뇌 조킹도 열심히 하신다.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와 국내 일간지를 구독하는데 신문사에서는 신규구독자 확보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장기 구독자에게 음악회나 영화 관람권이라도 선물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제안도 한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거동이 불편한 50년 지기(志氣)인 이형규 마산대학 이사장을 만나 말벗이 되어 주기도 한다. 마산이 낳은 애국지사 허당 명도석 선생 기념비 건립 추진위원으로도 활동하셨다. 그는 매사에 흥미와 관심을 보여 여행을 즐겨 다닌다. 취미는 미지의 땅을 찾아 국내외 여행을 하는 것이다. 어느 지역의 축제가 좋다고 하면 혼자서라도 찾아간다. 일본과 중국을 매년 2~3차례 다녀오고 있다.

김성길(가운데) 옹이 ‘마산야구 100년 기념비’ 앞에서 동료들과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그는 야구를 위해 태어났고 평생을 야구를 위해 살아온 분이다. 마산상고 재학시절에는 투수로 활동하였다. 유원산업 등에서 선수로 활약하면서 마산 대표팀(1940~1958년)의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2년간 무보수로 무학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직을 맡아 어린야구선수들을 길렀으며 56년 전국 초등학교 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까지 올려놓았다. 경남야구협회장을 지내는 등 지방야구의 활성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인 지역야구계의 대들보역할을 하신 분으로 마산 문화시민상을 수상하였다. 야구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있다.

1986년 회갑을 맞은 김옹은 마산야구장에서 1951년 4대도시 대항야구경기 때 입은 35년 전의 빛바랜 백색 광목 유니폼을 입고 회갑연을 가졌다. 4대도시 야구대항전은 해방이 되면서 한국야구계의 새로운 장을 열자는 취지로 개최된 야구가 강했던 서울, 대구, 인천, 마산의 야구대항전이다.

운동장에는 화랑기 쟁탈예선전이 열려 야구관계자와 마산고, 마산상고, 현대공고. 청강고의 야구선수 등 500여명이 회갑연을 축하했다. 그는 대한민국야구 역사의 산증인이다. 천국 갈 때 가져갈 것이라며 소중히 간직해온 야구용품들을 2012년 대한야구협회에 기증하였다. 기증품은 1950년대의 스파이크, 유니폼, 야구공, 야구방망이, 4대도시 야구선수권대회기념메달 등이다.

특히 4대도시 야구선수권대회 기념메달은 대한야구협회에도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대한야구협회관계자는 밝혔다. 그가 기증한 야구 애장품들은 한국전쟁 등 숱한 격변과 잦은 이사에도 불구하고 고이 간직해왔을 만큼 야구 사랑이 지극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옹의 야구 이야기는 2012년 2월 21일 MBC의 ‘생방송전국시대’에 방송되기도 하였다. 이 방송을 본 박찬호 선수가 혹여 소장하고 계신 남아있는 야구용품이 있는지 연락이 오기도 하였다. 매년 연말 서울에서 개최되는 “야구인의 밤”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신다. 생존한 원로 야구인을 나이순으로 일렬로 세우면 세 번째이다.

2013년 4월 2일 오후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프로야구 NC다이너스가 역사적인 1군 개막행사를 가졌다. 팬들은 NC첫 홈경기의 시타자가 누구인지에 관심을 보였다. 예의 유명연예인이나 정치인이 나오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상과 달리 등번호 ‘1926’의 유니폼을 입은 88세의 원로 야구인이 나타나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NC는 길이 남을 역사적인 첫 시타자와 시구자를 연고인 창원 야구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인물로 하였다. 시타자는 원로 야구인 김성길(88)옹을, 시구자 역시 야구 유망주인 사파초 야구부 주장 이지원(13)군을 초대하였다.

90세 때인 2015년 6월에는 창원 문화시민상 수상자 25명과 함께 민족혼과 독립군의 숨결이 서려있는 간도(間島)와 백두산을 다녀왔다. 91세 때인 2016년 5월에는 지인 아들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 나이 많다는 핑계로 극구 사양했음에도 건강과 다복의 상징이라며 간청하여 거절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아직도 장년 같은 느낌이 들만큼 건강한 모습이다. 백살 줄에 앉은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삶을 누리고 계신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을 하겠다는 김성길 옹의 ‘은퇴잔치상’에 약주 한잔을 올리자면 우리 또한 힘내어 살아야 할 것 같다.

/이철우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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